‘윤석열’ 연관어 중 굵고 크게 표기될수록 강한 연관성을 보여줌.
‘윤석열’ 연관어 중 굵고 크게 표기될수록 강한 연관성을 보여줌.

“추미애가 ‘윤석열 현상’을 만들었다”라는 세평은 데이터로 어느 정도 입증된다. ‘윤석열 현상’은 현직 검찰총장이 사회 쟁점이 된 데 이어 선두 대선주자군에 오른 일이다.

지난 8월 17일부터 11월 17일까지 3개월 동안 54개 매체에서 ‘윤석열’에 관한 1만420개 기사가 보도됐다. 이 기사들에 대해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의 ‘연관어 분석’을 해봤다. 윤석열과 연관성이 높은 글자들은 연관어에 오르고 이 중 더 연관성이 높은 글자는 더 크고 굵게 표시된다.

<그림1>에서 보이는 것처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는 ‘윤석열’과 가장 높은 연관성을 보인 단어였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의 ‘라임’ 사건 수사지휘를 막으면서 윤 총장을 견제했는데, ‘라임’ ‘라임자산운용’ ‘김봉현’(라임 사건의 핵심인물·전 스타모빌리티 회장)도 연관어로 포함됐다.

또 <그림1>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나땡(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나오면 땡큐)’ 등으로 윤석열을 조롱하거나 비난한 것이 오히려 ‘윤석열’ 이슈의 폭증을 불러왔다는 점도 보여준다. 추 장관이 글을 올릴 때 이용한 ‘페이스북’도 연관어에 올랐다.

추 장관에 대항해 윤 총장은 지난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중상모략이라는 말은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고 반박했다. 이 자리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 총장의 정의를 “선택적 정의”라고 공격하자 윤 총장은 “그 또한 선택적 의심이 아니냐”고 대응했다. 추 장관을 비롯한 여권의 이러한 윤석열 때리기는 ‘대검찰청 국정감사’ ‘중상모략’ ‘선택적 정의’라는 연관어에 반영되어 윤석열 현상에 일조했다.

상관계수란 두 키워드의 그래프 값이 동시에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비례관계를 의미.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강한 비례관계임.
상관계수란 두 키워드의 그래프 값이 동시에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비례관계를 의미.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강한 비례관계임.

‘추미애’ ‘윤석열’ 피어슨 상관계수 0.3965

‘추미애’와 ‘윤석열’ 간 높은 상관성은 키워드 트렌드 분석 <그림2>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9월 추미애 장관 관련 보도량은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건 등으로 9000건 가까이 치솟다가 9월 28일 서울동부지검의 무혐의 처분을 정점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10월, 추 장관 관련 보도량은 여전히 6400여건이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동시에 9월 1000여건에 불과하던 윤 총장 관련 보도량은 10월 5000여건으로 5배 급증한다. 아들 사건 무혐의 이후 추미애의 윤석열 견제가 이어지면서 추미애 보도량과 윤석열 보도량이 함께 많아진 것이다. 11월 들어 추·윤 보도량은 각각 3600여건과 3200여건으로 동반 하락한다. 추미애의 윤석열 공격이 다소 주춤해진 탓이다.

두 변수 간 관련성을 보여주는 피어슨 상관계수에서 ‘추미애’와 ‘윤석열’은 0.3965라는 값을 보였다. 이 수치는 ‘뚜렷한 양적 선형관계’(어느 한쪽의 증감이 다른 쪽의 증감을 비례적으로 이끄는 관계)에 해당한다. <그림2>

이러한 결과들은 “추미애 장관의 잦은 윤석열 공격이 역설적으로 윤석열을 국가적 이슈로 만들었고 유력 대선주자로 키웠다”라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지난 11월 7~9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은 오차범위 내에서 지지율 1위(24.7%)에 올랐다.

그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게 다 추미애 덕”이라고 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추 장관의 고집과 오기가 윤 총장을 1위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이 조사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각각 22.2%와 18.4%의 지지도를 얻었다.

지난 11월 15~16일 아시아경제-윈지코리아컨설팅의 양자 대결 조사에서 윤석열은 이낙연·이재명과 박빙(이재명 42.6% vs 윤석열 41.9%, 이낙연 42.3% vs 윤석열 42.5%)을 이뤘다. 이쯤 되면 누구도 윤석열 현상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윤석열이 뜨는 이유로는 △실제로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아진 점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지탱해 나가는 점 △보수 야권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점 △충청 출신 주자로서 기대를 받는 점 등이 꼽힌다.

윤 총장은 국정감사에서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 후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봉사) 방법에 정치도 들어가느냐”는 직접적 질문에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다”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그의 총장 임기는 2022년 7월 24일까지다. 윤석열의 정계 입문 및 대선 출마 가능성은 국감 이후 상당히 높아졌다.

그는 울산 부정선거 의혹 수사, 탈원전 수사 등 현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를 끌고 가고 있다. 지난 11월 3일 신임 부장검사 대상 강의에서 “국민이 진짜 원하는 검찰개혁은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안 보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 댓글 수사를 강행하다 좌천됐기에 그의 언행은 일관성이 있어 보였다.

보수성향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그 당 대선주자들은 지지율 정체에 빠져 있다. 그 사이 이른바 ‘반문(反文) 정서’는 윤석열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인다. 윤석열이야말로 화살을 맞아가면서 현 정권의 권력형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싸움다운 싸움’을 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은 윤석열을 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값싸고 부정직한 말로 중병 앓는 한국 정치

김종필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충청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이지만 결국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선친이 충청 출신인 윤석열은 이 지역에서 특히 기대를 받는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윤석열은 충청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우리나라 대권주자의 필수 지참물인 ‘지역 연고’까지 스멀스멀 생기는 셈이다.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동남풍’을 언급한 적이 있다. 충청과 영남의 결합은 ‘대선을 결정지을 제대로 된 동남풍’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론 윤석열 급부상을 설명하기엔 불충분하다. 윤석열은 대중이 갈망하는 어떤 것을 일부나마 충족시켜주고 있는지 모른다. 필자의 책 ‘정치수사학’을 빌려서 설명하자면, 우리 국민은 지금 정치지도자들의 막말, 궤변, 위선, 식언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한국 정치는 값싸고 부정직한 말로 중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혐오와 사회적 피로는 점점 누적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중은 지도자에게서 행동과 합일되는 진실하고 의로운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지도자의 꾸밈없는 솔직함과 정의로움이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초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검찰총장 윤석열이 선택한 말과 행동은 대중의 이런 정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부패추방운동(마니폴리테·깨끗한 손)’을 벌여 깊은 인상을 남긴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를 떠올린다.

한나절 넘게 이어진 국정감사에서 거구의 윤석열은 ‘윤색된 정치적 언변’ 대신 ‘평범하지만 진솔해 보이는 말’을 했다. “그냥 편하게 살지 왜 이렇게까지 살아왔는지”라는 그의 탄식은 ‘서민적인 언어’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고충’을 표현했다.

“임기를 다하라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있었다”라는 거침없는 말은 자신을 향한 거센 사퇴 압력을 일축했다. 시원시원하게 자기 의사를 다 표현하면서도 ‘항명’이나 ‘품위손상’으로 책잡히지 않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어록은 지금 어떤 법학 이론보다 ‘법치(法治)’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윤석열은 우리 정치가 결핍한 ‘소탈한 정의감’을 일깨운다. 대중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여기에서 윤석열 현상이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 계산한다. 부정적 전망도 적지 않다. 2012년의 안철수 안랩 이사회 의장과 2017년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시기 대선에서 실패했다. 정치는 진입장벽이 높다. 정계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웬만한 주자는 많은 자산을 잃는다. 윤석열은 “정무적 감각이 없다”라고 자평한다. 그도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석열에 대해 냉랭한 편이다. “이 정부에 소속된 검찰총장” “야당 사람이 아니다”(김종인 비대위원장)라고 했다. 대선에 출마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말까지 나온다. 윤석열 현상에 대한 당혹감과 견제 심리가 느껴진다.

지난 10월 22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2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 ⓒphoto 뉴시스

윤석열이 일깨우는 ‘소탈한 정의감’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윤석열 현상’을 수용하거나 환영하는 정치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야권을 재편하자”라면서 “윤 총장도 함께하자”라고 했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김치찌개를 함께 먹으면서 윤석열 현상을 꺼냈다. “국가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윤석열을 뺀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소속 주자들의 지지율은 변함없이 낮다. 윤석열은 야권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반문재인 정서는 구심점이 없이 흩어질 수 있다. 윤석열이 이를 잡아주고 있다. 윤석열 현상은 일방적 국정 독주를 견제한다.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석열 현상을 격하하는 것은 단견이라는 것이다.

“현 국정운영 기조에 반대하는 진영의 텐트 안으로 양심적 진보지식인, 노동자, 청년들이 들어와야 한다. 윤석열이 말하는 ‘법치와 정의의 정신’은 이 통합을 위한 아말감이 될 수 있다.” 윤석열과 관련해 앞으로 어떤 이슈가 등장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는 현 국정에 실망하는 이들에게 변화의 기대감을 준다고 한다.

여권은 윤석열 현상이 윤석열 사퇴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듯하다. “정치하려면 검찰총장 그만두고 하라”는 식의 요구가 잦아지고 있다.

윤석열의 최근 언행을 ‘정치’로 ‘해석’할 순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 해임·탄핵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임기를 다 채우겠다”라고 공언한 윤 총장이 귀책사유 없이 스스로 사퇴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여권으로선 윤석열이 못마땅할 수 있겠지만, 윤석열 현상에 담긴 민의를 읽고 적절히 반영할 필요도 있다. 이 현상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것이 보궐선거와 대선에서 여권이 낙승하는 길일 수 있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전 신동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