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의정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 결과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의정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 결과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추미애를 조국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천거한 사람은 이해찬으로 알려진다. 조국 사퇴 후 여권에서는 전해철 민주당 의원을 기용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됐고,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도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결론은 추미애였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거침없는 수사로 조국을 단명 장관으로 만든 윤석열을 다루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힌 것이다. 이해찬은 “추미애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추미애를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지난해 12월 5일은 조국이 물러난 지 53일째 되는 날이었다. 전날 검찰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당시 여권 관계자는 “지금은 청와대와 검찰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비상시국”이라며 “법무부 수장으로서 검찰의 폭주를 제어하고 정치권과 긴밀히 소통하는 중량급 인사가 필요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5선 국회의원에 여당 대표라는 중량감과 별도로 추미애가 선택된 이유가 있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윤석열을 지휘하려면 ‘정통 복서’보다는 ‘변칙 복서’로 가는 게 좋다”고 했다.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윤석열을 상대하는 데 ‘변칙 복서’ 추미애가 제격이라는 평가였다. 추미애가 여성이라는 점도 감안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남성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여성과의 싸움은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 정설로 공유되고 있다. ‘여자 변칙 복서’ 추미애는 윤석열이 분명 껄끄러워할 상대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권의 이러한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추미애는 올 1월 2일 취임하자마자 ‘윤석열 사단 대학살’ 인사를 단행하였다. 기존의 관행과 상식을 뒤엎는 추미애의 기행은 보는 이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인사위원회 30분 전에 인사안을 들고 장관실로 들어오라는 ‘명을 거역’한 윤석열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무부 정책보좌관에게 문자메시지로 “지휘·감독 권한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 징계 관련 법령을 찾아 놓으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윤석열은 추미애의 이러한 변칙 공격에 난감해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허〜참”이라는 감탄사를 반복했다고 한다. 70여년 검찰 역사에 수많은 칼잡이가 스쳐 갔지만, ‘추미애 권법(拳法)’은 못 보던 초식(招式)이었다. 기초를 튼튼히 다진 정통무술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막무가내 좌충우돌의 호흡이 짧은 권법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가장 위엄을 발휘한다. 침묵이 권력 행사의 무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추미애의 칼은 달랐다. 인사권 4회, 수사지휘권 3회, 감찰권 6회 등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시도 때도 없이 마구 휘둘렀다. 특히 구체적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행사 횟수는 제67대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가 역대 장관을 모두 합친 것보다 3배나 많았다. 그의 칼은 칼집에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공격은 최선의 수비라지만, 이 정도로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면 자기방어에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 당시 검사의 위증교사 의혹, ‘검·언유착’ 의혹 등 수사지휘 사건들은 기소는커녕 혐의 구성조차 힘든 상황이고, 정진웅은 한동훈을 잡으려다 본인이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장모 요양병원 사건 수사 당시 윤석열이 수사에 개입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건에 대해서도 추미애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는데 각하 처리되었다. 각하는 불기소 사유가 명백하거나 수사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사건을 그대로 종결하는 것으로, 수사할 필요성이 없을 때 내리는 처분이다.

이뿐만 아니다. ‘주머닛돈’ ‘쌈짓돈’ 같은 자극적 용어를 사용하며 감찰을 지시한 특활비 전용 건은 오히려 자신의 심복인 심재철의 부적절한 특활비 사용 의혹의 부메랑 효과를 낳았다.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만남 건의 경우, 전례가 없는 검찰총장 대면 감찰을 시도하다 자신이 임명한 류혁 감찰관의 반발과 법무부 감찰규정 위반 논란을 야기했다. 공익제보자라 치켜세운 김봉현의 폭로는 사실로 밝혀진 것이 아직 없다.

이처럼 추미애의 윤석열 제거 작전은 무리한 방식과 직권남용으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를 낳고 있다. 마침내 추미애는 지난 11월 24일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청구 및 직무정지라는 폭탄을 터뜨렸다. 그러나 징계청구 사유로 제시한 여섯 가지는 사실관계의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판사를 불법 사찰한 문건을 만들었는데, 윤석열이 추미애의 심복인 심재철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했다는 헛웃음이 나오는 수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형사사건이면 각하 사안이다.

추미애의 정치적 폭거는 각계각층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친여성향의 경향신문이 “명분도 약하고 절차도 아쉬운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라는 제하의 사설을 게재했을 정도다. 민주당의 소신파 의원인 조응천은 “징계 사유의 경중과 적정성에 대한 공감 여부와 별개로 과연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를 할 만한 일인지, 또 지금이 이럴 때인지,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추미애를 정면 비판하였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유신 때 야당 총재에 대해 직무를 정지한 것을 연상케 한다”고 했고, 노무현 정권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인사는 “윤석열 나가라는 것이 검찰개혁이냐, 헌법에 보장된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비밀번호 해제법’을 만들자는 장관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냐”고 일갈했다.

검찰 내부 동향도 심상치 않다. 릴레이 커밍아웃 댓글 행진을 촉발했던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검찰개혁의 이름을 참칭해 추 장관이 행한 정치적 폭거를 분명히 기억하고 역사 앞에 고발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헌정사에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며 추미애를 향해 “반드시 돌려받을 업보”라고 직격했다. 일선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검란(檢亂)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추미애의 마구잡이 칼 사용은 초기에 윤석열의 “허〜참”을 유발하며 변칙 복서 기용의 효능감을 입증하는 듯했으나, 지나친 권한 남용으로 정교함을 잃고 검찰 내부에서도 고립되고 있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은 윤석열 죽이기로 변질되면서 누더기가 되었다. 반면 추미애의 괴롭힘이 길어지면서 윤석열의 투지와 승부 근성은 강화되었다. 추미애의 무딘 칼로 윤석열을 깔끔히 제거하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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