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11월 30일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19.8%)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20.6%), 이재명 경기지사(19.4%) 등과 함께 확실한 ‘3강’이었다. 홍준표 의원(5.1%),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3.5%), 유승민 전 의원(3.3%), 추미애 법무부 장관(3.1%) 등 다른 후보들은 모두 3~5%가량에 머물렀다.

윤 총장은 지난 10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지지율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10월 19일 추 장관은 라임 로비 의혹 사건 및 검찰총장과 가족 주변 관련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10월 22일에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총장이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추 장관에 맞서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한길리서치 조사(11월 7~9일)에서 윤 총장은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이 24.7%로 이 대표(22.2%)와 이 지사(18.4%)를 앞섰다. 윤 총장이 선두에 오른 첫 여론조사였다. 윈지코리아컨설팅(11월 15~16일) 조사에선 차기 대선 가상 양자대결에서 윤 총장과 이 대표는 42.5% 대 42.3%, 윤 총장과 이 지사는 41.9% 대 42.6%였다. 윤 총장을 야권 단일 후보로 가정하고 이 대표 및 이 지사와 각각 가상 대결을 했을 때 팽팽하게 맞선다는 결과였다.

‘정권에 저항하는 파이터’ 이미지

윤 총장의 지지 기반은 정부·여당에 불만을 지니고 있는 반문층(反文層)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못한다’는 반문층의 35.8%가 차기 대선주자로 윤 총장을 지지했고 다음은 홍준표 의원(8.0%), 안철수 대표(5.6%), 유승민 전 의원(5.4%), 오세훈 전 서울시장(4.5%) 등이었다. 지지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절반가량(44.6%)이 윤 총장에게 쏠렸고, 무당층에서도 윤 총장(18.5%)은 이 지사(13.7%)와 이 대표(7.0%)를 제치고 선두였다. 이념성향별로는 보수층과 중도층에서 각각 30.3%와 23.6%로 선두에 올랐다.

지역별로는 보수의 기반인 영남과 중도 색채가 짙은 서울과 충청에서도 윤 총장이 선두였다. 서울에선 윤 총장(20.6%), 이 지사(18.3%), 이 대표(17.9%) 순이었고 충청권에선 윤 총장(20.3%), 이 대표(17.5%), 이 지사(16.4%) 순이었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40대는 각각 이 대표와 이 지사가 앞섰지만, 50대 이상에선 윤 총장이 우세했다. 요약하면, 윤 총장은 반문 성향이 강한 보수층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중도·무당층에서도 여야 주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윤 총장이 언젠가는 ‘제3지대’ 중심 반문연대의 구심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윤석열 현상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조국·추미애 사태’를 거치면서 법치가 흔들린다는 위기의식이 주요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선두를 독주했던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이 연초의 40%대에서 20%가량으로 반토막 났고, 후발 주자로 상승세를 보이던 이재명 지사도 20% 안팎에 멈추면서 확장성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윤 총장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10월 말 갤럽 조사에서 윤 총장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39%였다”며 “그에게는 최소한 40%가량의 잠재 지지층이 있는 셈”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윤 총장 개인에 대한 호감도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반문층이 결집해서 윤 총장의 지지세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윤 총장이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란 인식이 강해지면서 그를 중심으로 반문층이 모였다”며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폭주를 거듭하는 여권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결과”라고 했다. 여권의 ‘윤석열 찍어내기’가 강해지면서 윤 총장에게 ‘정권에 저항하는 파이터’란 극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여당의 대선주자들을 위협하는 윤석열 현상은 야당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비(非)정치인’ 윤 총장이 정권의 대항마로 관심이 집중될수록 야당은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총장은 정부·여당 사람”, 주호영 원내대표는 “윤 총장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했다. 기존 야권 지지층이 윤 총장에게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경우 당의 존재감이 상실될 것을 우려한 발언이었다.

실제로 지난 한 달 동안 각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의 지지율은 급등했지만 야당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미래통합당에서 당명을 바꿨던 9월 초에 20%였고 최근인 11월 넷째 주도 22%로 비슷했다. 야권의 대선주자들 지지율도 큰 변화가 없다. 윈지코리아컨설팅 조사(11월 28〜29일)에선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가 차기 대권주자 양자대결에서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무소속 홍준표 의원 중 누구와 맞붙어도 10~15%포인트 우세했다.

국민의힘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반면 윤 총장에게는 권력 비리를 공정하게 파헤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것이란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는 구분되는 ‘윤석열 정당’이 반문층 사이에 심리적으로 존재하면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체 발광 못 하면 오래가기 힘들 것”

윤석열 현상의 지속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윤 총장의 강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는 측에선 “기존의 야당 후보들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낮기 때문에 일단 탄력을 받은 윤 총장에 대한 지지세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윤 총장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사람이지만, 영남·60대 이상 등 야당 핵심층에서도 지지가 높은 것은 그가 정권 교체의 희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반면 윤석열 현상의 지속성에 대해 회의적인 측에선 “여권의 압박만으로는 인기가 지속되기 어렵다”며 “스스로 발광(發光)하지 못한다면 오래가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과거에도 고건 현상, 반기문 현상 등 정치권 바깥에서 주목을 받다가 정치인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순간 존재감이 사라진 전례가 많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금 윤석열 현상의 지속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윤 총장으로 인해 수면 위로 솟구치고 있는 반문층의 정권 견제 심리를 야권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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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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