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화상 국무회의에 참석한 추미애 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일 화상 국무회의에 참석한 추미애 장관. ⓒphoto 뉴시스

영화 ‘스타워즈’에서 쉬브 팰퍼틴은 나부 행성을 대표하는 의원이다. 온화한 의회주의자인 그는 은하공화국의 최고 서열인 챈슬러(chancellor·수상 또는 의장)에 오른다. 이후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공화정을 제정(帝政)으로 바꿔 은하제국의 황제가 된다. 이어 자신의 제자가 된 다스 베이더를 내세워 공포정치를 펼친다.

다스 베이더도 원래는 은하계의 정의(正義)를 수호하는 엘리트 공권력인 제다이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배신한 뒤 제다이 조직 전체를 괴멸시킨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와 권력욕으로 물든 인간세계의 실상을 잘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은하공화국처럼 민주주의에서 전체주의로 바뀐 나라는 실제로 많다. 요즘 특히 재조명되는 사례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다.

1930년대 독일은 여러 경제적 문제가 있었지만, 분권형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3년 3월 선거에서 나치당이 40%대 초반 득표율로 집권한 후 상황이 돌변했다.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를 설치하는 법이 통과되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행정부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전체주의국가로 변해 갔다.

나치 집권 초기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은 이 흐름을 막지 못했다. 집권한 히틀러는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의 주장이 일부 성과로 입증되자 국민은 열광적 지지를 보냈다. 그의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했다. 언론과 여론주도층은 히틀러의 전횡에 침묵했다. 처음엔 히틀러의 높은 대중적 인기로 인해 침묵했다. 독재가 너무 진행된 뒤에는 두려워서 입을 닫게 됐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유명한 이론이 ‘침묵의 나선’이다. “히틀러의 오른팔인 괴벨스 선전 장관은 미디어와 여론을 장악했다. 학자 노엘레 노이만에 따르면, 이 상황에선 히틀러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은 발설 시 고립될 것을 우려해 침묵한다. 즉 ‘침묵의 나선’이 작동한다. 결국 독재를 막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지한다.”(‘정치수사학’ 중)

이 사례는 ‘행정부 수장 세력이 입법부에 이어 준사법기관인 검찰과 사법부까지 사실상 지배하고 언론을 계속해 자기 편에 둔다면, 민주주의가 서서히 기능을 멈추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럴 경우, 국민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신체, 재산, 자유에 관한 이들의 권리는 권력층의 처분에 좌우된다. 권력자가 오판해 나라를 잘못된 길로 끌고 가더라도 누구도 견제하지 못한다. 그 피해도 국민이 본다.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인 550만명이 사망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가 비민주적 체제에서 민주적 체제로 계속해 ‘우상향’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들의 신념에 반하는 증거는 꽤 많다. 고대 로마는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헤게모니(주도권)를 쥔 쪽은 민주주의 아테네가 아니라 전체주의 스파르타였다. 오늘날 대통령제는 지구적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정작 남미·동유럽·아프리카 대통령 중 상당수는 독재자다.

고도의 민주주의를 누려온 수백만 홍콩 시민들은 2019~2020년 하루아침에 중국 체제에 편입돼 기본권을 억압받고 있다. 이제 홍콩은 베이징의 공산당이 무력을 동원해 직접 통치하는 경찰국가와 다름없다. 같은 가치를 공유해온 민주주의국가의 친구 중 누구도 홍콩인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나아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혁명의 장애물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보수진영을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보수진영으로의 정권교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자기 편이 영원히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여긴다. 결국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선한 독재를 용인한다. 어쨌거나 독재인 것은 분명하고, 비판과 정권교체가 자유로운 상식적인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

민주주의의 정점에 있는 서방국가도 여러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시기를 거치면서 전국 단위 폭동, 이념적 분열과 증오, 대선 불복 등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역사는 비민주에서 민주로 일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만 예외적으로 무조건 유지·발전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국가적 쟁점이 된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은 ‘법치주의’를 걱정한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민주적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으므로, 법치주의 구현은 민주주의 구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역으로 법치주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 위기다.

윤석열 총장 직무정지는 ‘반법치주의’로 틀 지어지기도 하는데, 사실관계만 놓고 봤을 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 직무배제 명령을 내렸지만, 서울행정법원은 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직무배제 명령을 “검찰 중립성 보장을 위해 총장 임기를 2년으로 정한 법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봤다.

법무부 감찰위원회도 “윤 총장 징계 청구, 직무정지, 수사 의뢰는 부정적”이라며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있다”라고 했다.

6가지로 알려진 윤 총장 비위의 근거도 불충분하다. 이는 총장 직무를 대행한 조남관 대검 차장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총장이라고 재임 기간 중 어찌 흠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저를 포함한 대다수 검사는 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쫓겨날 만큼 중대한 비위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전국 59개 검찰청의 대다수 평검사, 검사장, 고검장은 “법치 파괴”라며 들고일어났다. 대한변협과 법학 교수 2000여명도 “헌법과 법치 훼손”이라는 성명을 냈다.

지난 12월 2일 신임 대사 신임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2일 신임 대사 신임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법무부의 윤석열 감찰 및 수사 의뢰 과정에서 수사권이 없는 법무부가 대검 압수수색을 지휘했다는 정황, 감찰 책임자인 법무부 감찰관이 감찰에서 배제된 사실, 법무부 핵심 간부 결재가 생략됐다는 논란, 감찰 담당 이정화 검사가 작성한 ‘죄가 안 된다’는 보고서가 삭제됐다는 의혹(공문서 변조)도 나왔다.

적지 않은 언론에선 “윤석열 쫓아내기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월성원전 1호기 평가조작 의혹 등 정권의 불법혐의에 관한 검찰수사를 막기 위한 무리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 최고책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쯤 됐으면, 윤석열 징계는 즉시 철회되는 게 상식적이다. 그러나 여권은 반대의 움직임을 보였다. 윤석열·추미애 동반 퇴진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윤석열을 ‘트럼프’에, 검찰을 ‘하나회(군사정권 시절 장교 사조직)’에 비유하기도 한다. “끝까지 밀어붙이자” “물러서면 레임덕”이라는 목소리가 중계됐다. 문 대통령은 “소속 부처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이익을 받드는 선공후사의 자세로”라고 말했다.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책망한 것으로 들렸다.

나라의 권력 지형을 거시적으로 조망해 보면, 문재인 중심의 집권세력은 물리력의 상징인 경찰·군을 비롯한 행정부를 지배하고 있다. 이어 입법부를 장악했다. 주요 법안과 예산을 거의 마음대로 처리해왔다. 대법관 임명 등을 통해 사법부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언론·포털·여론 영향력에서도 야권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현재 이들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거의 유일한 집단은 준사법기관인 검찰이다. 문제는 검찰이 월성원전, 울산시장 선거, 라임 사건 등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드문드문 할 뿐만 아니라 그 혐의내용이 구체적이고 중대하다는 점이다. 윤석열은 식물 총장이 됐지만, 그래도 월성원전 수사를 원칙대로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윤석열은 제다이 출신의 유일한 희망인 루크 스카이워커로 비친다. 스카이워커와 그 친구들은 홀로 팰퍼틴과 다스 베이더의 제국 전체에 맞서 결국 공화정을 부활시켰다. 이들은 윤석열이 이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는 윤석열 한 사람에 너무 크게 의존해야 할 정도로 법치주의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도 자의적으로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윤석열 제거 시도에선 법·규정·상식에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가 드러난다. ‘내 마음대로 다 해도 된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는 영화 ‘넘버3’의 송강호 대사에 비유되고 있다.

“이건 노리끼리한 색이지만 내가 이걸 ‘빨간색’ 하면 이것도 빨간색이야. 내 말에 토 달면 배반형이야. 앞으로 즉사시킨다.”

“즉사시킨다”라는 말이 과장일까? 별로 그렇지 않다. 2018년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부 장관은 월성원전 1호기의 한시적 가동 필요성을 보고한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레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을 린치핀이라고 하는데, 이제 윤석열은 ‘검찰의 린치핀’이 됐다. 그가 뽑혀 나가면 검찰도 망가질 것이다. ‘애완견 검찰총장이 들어오고 공수처가 출범하면, 검찰과 법원은 더더욱 권력의 시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무엇으로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 “586 운동권 독재”(진중권)가 본격화할지 모른다고 한다.

‘윤석열’은 ‘부동산’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윤석열 제거와 유사한 정파적이고 무자비하고 독단적인 방식으로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대책이 나왔고 임대차법이 개정된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이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강행했다.

이로 인해 집값과 임대료가 동반 급등했다. 수많은 세입 가구는 전세가가 너무 오르고 매물도 없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살던 집에서 밀려나야 하고 이루 말로 못 할 상실감을 느낀다. 집 문제로 남편이 아내를 찌르고 투신한 목동 부부 참극은 이러한 세태에서 나왔다. 그러나 여권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김현미 국토부 장관)라는 황당한 위로를 한다. 상당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대로 납세자 사정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징벌적으로 세금을 마구 올리는 듯한 여권에 분노한다.

윤석열 사태는 ‘권력자가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고 있다’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 문제는 윤석열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부동산 대란은 평범한 개개인의 삶의 기반이 이러한 권력의 자의에 의해 손쉽게 파괴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윤석열은 법치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다. 그의 말은 우리와 무관한 추상적이고 먼 이야기가 아니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ㆍ전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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