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photo 뉴시스 / 조광한 남양주시장.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왼쪽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photo 뉴시스 / 조광한 남양주시장.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남양주시청 정문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수십여 개의 화환이 늘어서 있다. ‘조광한 시장님 힘내세요’ ‘시장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분투를 응원합니다’ ‘우리가 조광한이다’…. 흡사 현 정권과 각을 세우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 응원 화환들이 가득했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곳 화환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남양주 시민들. 경기도청이 지난 11월 16일부터 남양주시를 대상으로 또다시 감사를 진행하자 시민들이 직접 조광한 남양주시장을 응원하고 나선 것이다.

경기도의 남양주시 감사는 이재명 도지사와 조광한 남양주시장 간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조 시장은 지난 11월 23일 도청 감사를 “보복성 감사”라 규정하며 피켓시위를 진행한 데 이어 12월 1일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감사의 공정성이 결여됐다”며 이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경기도 측은 12월 2일 언론에 조 시장의 비위 의혹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는 도(道)에 시(市)가 반기를 드는 일은 흔치 않다는 점과, 대립하고 있는 도지사와 시장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양측의 갈등은 지난 11월 16일 시작한 남양주시 특별감사로 불거졌지만, 남양주시는 올해로 11번째 감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누적될 대로 누적된 상황이었다. 경기도는 지난 11월까지 경기도권 31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총 33건의 특별감사를 벌였는데 이 중 3분의 1이 남양주시 감사였다. 최근 9건의 남양주시 감사는 모두 올 5월 이후 진행됐다. 지난해 감사가 4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감사 횟수가 두드러지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지난 11월 16일 시작한 특별 감사에선 △양정역세권 개발사업 특혜 의혹 △예술대회 사업자 불공정 선정 의혹 △코로나19 감염증 방역지침 위반 여부 △남양주 도시공사 감사실장 채용 비리 의혹 △월문리 건축허가(변경) 적정성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도청 관계자는 “지속적인 익명 제보와 민원, 언론 보도로 각종 의혹이 드러나 이를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남양주시 측은 감사에 충실히 응할 수 있지만, 이에 앞서 도청이 감사 자체의 적법성부터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다. 지방자치법과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이나 시도지사의 감사는 법령을 위반한 사안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도청은 감사대상의 위법성을 적시하지 않은 채 ‘털면 뭐라도 나온다’는 식으로 업무 전반의 사안들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남양주시 측 입장이다. 또한 경기도는 감사대상에 청사 대관 내역 및 출입자 명부, 시청 공무원 업무용 아이디, 인터넷 댓글 내용 등도 포함시켰는데 시 측은 이에 대한 감사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거니와 도가 들여다볼 사안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재명 지사의 편협한 리더십에서 비롯”

남양주시는 경기도의 잇따른 감사를 ‘보복성’으로 보고 있다. 남양주시와 경기도는 각종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견을 보였고, 그때마다 이 지사와 조 시장이 신경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2018년 조 시장 취임 초기 남양주시 숙원사업이었던 진접선 연장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서울지하철 4호선을 당고개역에서 남양주 별내·오남·진접지구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국가 시행 광역철도 사업이었다. 중앙정부는 이 사업 예산의 75%를 지원했고 나머지 25%는 경기도·남양주시의 지방비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와 남양주시는 2020년 상반기 진접선 개통을 앞두고 지방비 분담과 관련해 이견을 보였다. 당시 남양주시는 시와 도가 나머지 예산을 5 대 5로 분담해야 한다고 봤지만, 경기도는 7 대 3으로 분담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예산 문제로 계속 대립할 수만은 없어 결국 경기도안을 받아들였다”며 “우리로선 섭섭함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남양주시의 재정자립도는 34% 수준. 시가 당시 합의로 400억여원을 추가로 떠안기로 했는데 이 지사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이 시 측 주장이다.

여기에 지난 4월 도 사업인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사업’ 추진 당시 조 시장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두 지자체 간 갈등은 증폭됐다. 당시 조 시장은 시 재정 여건 등으로 사업 참여에 난색을 보이다 뒤늦게 동참했고, 기본소득 지급은 이 지사가 역점 정책으로 삼은 지역화폐가 아닌 현금으로 했다. 그러자 이 지사는 남양주시가 도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며 특별조정교부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남양주시는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로 대응했다. 당시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남양주시는 다른 시군과 달리 선별지급을 고집했다. 지원대상을 스스로 거부하고 독자 정책을 시행했으니 지원 제외가 당연”이라고 밝혔다. 이후 도청은 이른바 ‘남양주시 25만원 커피상품권 횡령’ 의혹을 두고 추가로 중징계 처분을 내리면서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지난 12월 1일 남양주시청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조 시장은 이에 대해 “경기도가 법에서 정한 감사대상과 한계를 초과해 매우 이례적인 감사를 하고 있다”며 “이재명 지사의 편협한 리더십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라고 평했다. 조 시장은 또 “감사의 요건부터가 갖춰지지 않았다. 도가 현재 감사하는 건 국가 위임사무가 아닌 지자체 고유의 자치 사무들이다. 자치 사무는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도는 시청 직원들의 댓글 내용과 관련해선 이재명 지사 비판 여부 등도 살폈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수사기관에 의뢰했어야 한다. 정치사찰로 비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현재 도에서 살펴보고 있는 일부 감사대상은 이미 감사가 이뤄졌거나 수사기관에 넘겨진 것들이라는 게 남양주시 설명이다.

지난 12월 1일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규탄하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월 1일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규탄하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진접선 연장 사업 예산 배분부터 충돌

이번 사안은 이 지사가 정치권에서 갖는 입지를 고려했을 때 ‘대선주자 이재명’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 시장은 이에 대해 “소신이 강한 만큼 이견은 용납하지 않는다”라고도 평가했다. 실제 이 지사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소통’보다는 ‘추진력’ ‘신속’ ‘효과’ 등에 중점을 두곤 했다. 이 때문에 실무자들의 의견이 배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지사와 조 시장의 갈등이 커진 재난기본소득 지급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장덕천 부천시장은 조 시장처럼 재난기본소득 지급 정책에 반대하다 이 지사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조 시장은 “우리 같은 경우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택적 복지를 추구하던 터였고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면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해 시기적으로 더 늦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모두가 하나같이 지역화폐로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현금 수요가 큰 취약계층은 어렵겠다는 판단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 지사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런 지자체장들의 의견을 구한다거나 이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권 31개 시군구 지자체장이 함께 있는 소셜미디어 대화방에서 이 사업과 관련한 내용을 ‘권고’ 형식으로 알린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후 지자체에 내려보낸 정식 공문도 없었다.

이후 이뤄진 감사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감사 내용과 관련한 서면 요청은 없었다. 남양주시 측은 “보통 서류 일체부터 요청하고 이를 검토한다. 근데 그런 절차는 생략됐고 일단 들이닥쳤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11월 23일 시청에 있는 도청 감사반원들에게 철수를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는 것이 시 측 설명이다.

이재명 지사는 여타 정책에서도 이와 유사한 행보를 보여왔다. 일례로 지난 8~9월 이 지사가 공언한 ‘중고차 시장 허위매물에 대한 엄벌 조치’나 ‘토지거래허가제’ ‘기본대출권’ 등을 두고 내부적인 검토, 숙고 없이 일단 내지르는 것 아니냐는 평이 적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한 공공기관 직원은 “내부 직원들과 협의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사전에 내용을 공유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 지사는 기자회견부터 한다. 뉴스를 보고 이 지사의 정책이나 역점 사업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애를 먹은 것도 부지기수다. 코로나19 확산 당시엔 이런 일이 더욱 빈번했다”라고 귀띔했다.

현재 이 지사는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이다. 도지사로서 광역지자체 수준을 관리 운영하는 과정에선 이 같은 신속한 행정 조치가 먹혀들지라도, 국가지도자로서 일정한 컨센서스를 필요로 하는 국가 전반의 운영에선 오류를 범할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지사는 소통보다는 여타 정치인 등을 신속하게 때리면서 본인 주가를 올린다. 성남시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지금의 문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 주자들과는 비교되는 모습인데 일부 유권자들에겐 매력으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의무가 커질 땐 역효과를 불러올 여지가 크다”라고 평했다.

“정치가 행정을 침범한다”

같은 당 소속 지자체장이 맞부딪치자 최근 남양주시 의회에선 내분이 일고 있고 이에 따른 피해는 애꿎은 일선 공무원들에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지난 11월 30일 시의회에선 ‘남양주시의회 민주당 의원 일동’ 명의로 “조광한 시장은 도청 감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이 발표됐다가도 그 다음 날 일부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경기도는 부당한 감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상반된 내용의 입장이 나오기도 했다. 남양주시의회 한 민주당 의원은 “시에서 잘못한 게 있으면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데엔 모두 동의한다. 그런데 한 해에 11차례 감사는 과하다고 보는 거다. 시민들은 물론 공직자들까지 불안해하며 본연의 업무에도 충실히 임하지 못하고 있다. 조 시장과 이 지사 간 감정적인 부분은 행정적으로가 아니라 정치인끼리 사전에 조율해서 풀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남양주시청 한 관계자는 “사실 경기도가 남양주를 비롯한 기초자치단체의 예산 배정, 인사권을 모두 쥐고 있다. 때문에 함부로 왈가불가하기가 난처하다. 공무원들 입장에선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이 없다. 정치가 행정을 침범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 측은 적법한 감사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의혹이 제기되니 어떤 법령을 위반했는지 사실관계를 ‘조사’하는 거다. 이는 법령에 근거해 진행하는 것으로 남양주시가 위법·보복성 감사라는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을 펼치는 건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다. 정당한 사유 없이 감사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방해하는 건 별도의 처벌이 가능한 유감스러운 행위”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정치사찰 의혹이나 일부 공무원에 대한 강압적인 심문은 시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향후 조사 전반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면 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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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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