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운데), 박병석 국회의장(왼쪽),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건배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운데), 박병석 국회의장(왼쪽),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건배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대통령 임기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174석의 거대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집권여당에서도 차기주자가 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의 민주당은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당·정·청이 꾸준히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최근 하락세다. 대통령 지지율이 40% 아래로 내려갔고 민주당 지지율은 20%대 후반까지 밀렸다. 여론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 중 특히 중도층에서의 이탈 추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지난 12월 9일 쿠키뉴스-한길리서치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 결과 정치성향별로 중도층의 경우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이전 조사에서보다 10.1%포인트 내린 27.3%로, 진보층의 경우는 1.9%포인트 하락한 60.8%로 집계됐다. 보수층 지지율은 33.9%로 변동이 없었다.(자세한 내용은 한길리서치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중도층의 이탈이 본격화됐다”고 분석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최근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건 금태섭 전 의원의 민주당 탈당이지만 금 전 의원과 문 대통령 사이 교집합이 있고, 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 교집합이 있고, 문 대통령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이 교집합이 있는 건데 그 교집합에 해당하는 지지자들이 꾸준히 이탈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 낙폭이 민주당의 지지율 낙폭보다 크다는 점에서 ‘레임덕(권력누수)’이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상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국정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지지율의 마지노선을 ‘당·청 지지율 역전이 나타나기 전까지’로 보기 때문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이뤄진 최근 리얼미터-TBS 조사 결과와 리얼미터-YTN 조사 결과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4.1%에서 29.7%로 4.4%포인트 하락했지만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43.8%에서 37.4%로 6.4%포인트 하락했다.

이처럼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단일대오 태세는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과 부동산 정책 등 논란이 생기기 쉬운 악재가 여럿 발생하고 있는데도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모습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당이 혼란스럽게 비치는 것만큼 안 좋은 모습은 없다는 데에 의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원들끼리 사안에 대한 이견이 일부 있더라도 유권자들에게 혼란으로 비칠 만큼 공개적인 발언은 자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열린우리당의 3대 키워드로 무능·태만·혼란이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게 있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을 통해 국회에 처음 입성한 민주당 초선의원들의 성향이 단일대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지역구 한 초선의원은 “과거와는 달리 우리 당의 사이즈와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지난번 공천할 때 전반적으로 당내에서 조직력 강한 분들이 재선·3선이 된 것 같고 초선들은 전문성 있는 분이 많은데 이분들이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의안이 결정되기 전에는 나름대로 많은 의견을 내는데, 일단 지도부가 의안에서 큰 당론을 결정하면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이 의원의 설명이다.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은 “‘정권을 뺏기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있어 불만이 있더라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단일대오를 유지하자는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장 소장은 “대통령 지지율이 항상 당보다 높았다는 점에서 ‘문빠’로 불리는 대통령 열혈 지지층의 눈치를 안 볼 수도 없을 것”이라는 해석도 했다.

민주당이 좀처럼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에는 아직까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해찬 전 대표의 영향력도 작용한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친노·친문의 핵심이자 좌장으로 통하는 이 전 대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문재인 정부에서 집권당 대표를 지낸 진보정권의 핵심 인사다. 최근 방한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 역시 유일한 만찬 시간을 이 전 대표와 함께해 “중국 정부가 이 전 대표를 아직 여권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단일대오 막후에는 이해찬 영향력?

이 전 대표는 지난 8월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 오피스텔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사단법인 이사로는 파주을을 지역구로 둔 박정 의원, 남양주을의 김한정 의원,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 등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외에 당 정책 핵심 기구인 ‘미래산업 K-뉴딜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이 전 대표의 강력한 ‘그립’은 역설적으로 민주당이 ‘친문 일색’의 단일화 정당이라는 결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박성민 대표는 “민주당이 병적일 정도로 단일화에 집착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온 게 전임 이해찬 대표 때부터”라며 “그때는 그나마 김해영 최고위원이라도 가끔 레드팀(같은 팀 내 모의 대항군)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없다. 정세균 총리까지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단일대오의 분수령으로 내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민주당 전당대회를 꼽는다. 장성철 소장은 “만약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패배할 경우 이낙연 대표의 책임론이 확산할 것”이라며 “여기에 전당대회가 열리면 각 진영에서 최고위원을 내려고 서로 경쟁할 텐데 여기서부터 세력 분화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미 대선을 바라보는 당내 주자들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최근 출범한 당내 최대 싱크탱크 ‘민주주의 4.0연구원’에는 친문 핵심인 홍영표·도종환·황희 의원 등 5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외에 김영주·이원욱 의원 등 정세균 국무총리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중심인 공부모임 ‘광화문포럼’ 역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에 대거 국회에 입성한 초선들로부터 민주당의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초선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잦은 구설이 민주당의 단일대오에 구멍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지난 12월 9일 “전날 저녁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에게 전화해 조치를 하지 않으면 낙태죄 폐지는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정의당이 하는 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했다”며 “거대 여당 국회의원이면 타당 대변인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짓을 벌여도 되는 것인지 민주당 지도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초선의 김 의원은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조국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후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이외에 민주당 충청권 지역구 모 초선 의원은 불륜설도 제기된 상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일부 초선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이미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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