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뒤에는 주호영 원내대표(왼쪽 첫 번째)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와 비대위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뒤에는 주호영 원내대표(왼쪽 첫 번째)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와 비대위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5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사과 현장에서 가장 관심을 끈 참석자는 주호영 원내대표였다. 주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의 사과에 앞서 사과에 반발하는 당내 중진들의 협조를 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당 안팎에서 제기됐던 김종인-주호영 ‘투톱’의 갈등설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공수처, 필리버스터 등 쟁점법안들이 통과되는 정국에서 원내지도부가 별다른 전략 없이 “더불어민주당에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비판 여론이 여전하다. 또 “주호영 원내대표가 시간에 쫓긴 나머지 악수(惡手)를 둔다”는 비판적 시각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다가 김종인 위원장의 사과 이후에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면서 ‘그래도 주호영보다는 김종인이 낫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내년 보궐선거 승리 시 김종인 비대위의 임기 연장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리더십 문제는 지난 12월 10일 주 원내대표가 보수진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인 이른바 ‘반문(반문재인)연대’의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 행사에 이재오 전 장관,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극우 인사들이 여럿 참석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문재인 정권 조기퇴진’을 주장했는데 야당 원내대표가 이들의 목소리에 동조해서 파장을 낳았다.

때마침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지난 4·15 총선 이후 처음으로 메시지를 내 화제를 모았다. 황 전 대표는 지난 12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고 참았다.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는 심정으로 버텼다”며 “오늘 민주당이 통과시킨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장을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하겠다는 것”이라며 공수처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비판했다.

김종인 위원장과 비대위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에서는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을 비대위 체제를 흔들기 위한 시도로 봤다. 비대위 한 핵심 관계자는 “반문연대가 아니라 반김종인 연대 아니냐”며 “마침 황교안 전 대표도 페북에 글을 썼던데 ‘아 다 짜고 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뭐라 하든지 신경도 안 쓴다. 20살부터 기자들한테 브리핑을 해온 사람이고 초등학생 나이 때부터 정치 유세장이 재미있다고 다닌 사람이다. 그런 사람한테 배현진이 공격하니까 홍준표도 공격하고 그런다. 당연히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보지 않겠냐”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의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사과와 ‘반문연대’ 등 최근 일련의 논란에 도사린 본질은 김종인 위원장 체제와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내 중진들 간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국민의힘 내 세(勢)는 현재 김 위원장 측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사과를 바라보는 당내 기류도 대부분 호평 쪽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초선들은 대부분 사과에 대해 호평하고 있다. 국민의힘 1970년대생 초선 의원들의 모임인 ‘지금부터’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의 시기와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한다. 반성과 성찰은 새로운 시작의 첫 단추”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103명의 전체 의석 중 절반 이상인 58명이 초선으로 당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내년으로 넘어가면 바로 보궐선거 국면인데, 그때 가서 또 사과 여부로 싸우면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겠냐”며 “사과 시점과 내용이 모두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내 이른바 ‘잠룡’들 역시 김 위원장의 사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원희룡 제주지사의 경우 김 위원장의 사과 직전에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헌법을 위반해서, 그리고 권력을 남용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는데 그 기준을 우리 자신에게 엄격하게 들이대야만 지금 문재인 정권의 헌법 위반이나 권력 남용에 대한 비판에 국민들이 힘을 실어줄 수가 있다고 본다”며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원 지사 측 관계자는 “원희룡 지사와 김종인 위원장의 사이는 원만한 것으로 안다”며 “특히 현재 당이 순항하는 것에 대해서 (원 지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초선도 잠룡도 김종인 사과 지지

반면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모두 일방적으로 처리하는데 야당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법사위를 비롯한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민주당에 넘긴 상황에서 막아낼 방법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민주당 스케줄에 따라 모든 쟁점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되면서 원내지도부를 향해 “전략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성과는 없고 공수처 등등 쟁점법안을 다 내주고 당 내부에서도 몰리다 보니 주 원내대표가 다급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에 대해서도 아무 힘을 못 쓰는데 김종인 위원장에게서 주도권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진들의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내년 보궐선거 승리 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임기 연장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여러 악재로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야권에 유리할 것으로 점쳐지면서다. 최근 국민의힘 정당지지도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30%대 초반으로 20%대 후반인 민주당을 소폭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만약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면 김종인 체제가 9월까지 더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며 “지금처럼 본인이 전면에 나설 수도 있지만 내세울 사람을 또 만들어 ‘상왕 정치’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지도부 필요” 목소리도

하지만 김 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당내 평가가 계속 이어질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권이나 당권에 도전할 주자들이 김 위원장 체제를 마냥 호의적으로 바라보기만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내 잠룡 중 한 명인 유승민 전 새로운보수당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비대위는 문제가 있다. 사람을 전부든 일부든 바꿔서 2기 비대위로 총력을 모으자”며 김 위원장에게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유 전 대표의 이 같은 비대위 인적교체 건의 역시 ‘비대위 체제를 향한 흔들기’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유 전 대표는 현재 비대위를 제외하면 국민의힘 내 세력이 가장 강한 중진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 비대위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가뜩이나 스포트라이트를 뺏긴 당내 주자들의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범야권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임기 연장을 두고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장제원 의원은 지난 11월 17일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보궐선거 이후 김종인 위원장의 임기 연장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되면 우리 당이 너무 슬퍼지지 않겠느냐”며 “김종인 위원장은 우리를 치료해 달라고 모신 닥터(의사)고, 지도자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했었다. 정치판에서는 대중친화력이 핵심인데, 김 위원장의 경우 여야를 넘나들며 당대표를 하고 국회의원 5선을 한 경력이 있지만 직접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장 의원은 “김 위원장의 대중친화력에는 의문이 있다”며 “당신이 이 당을 더 이끌고 싶으면 전당대회에 나와야 한다. 4·7 보궐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 것”이라고 했었다. 장 의원은 “막말과 사이다의 차이점이 뭔지 아는가. 내 마음과 같으면 사이다, 내 생각과 다르면 막말이 되는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국민을 직접 상대하기 때문에 민심을 관통할 수 있는 것들을 쌓아가는 것이고 국민들과의 감정이 스파크가 났을 때 국민들이 사이다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을 에둘러 비판했었다.

김무성 전 대표 보좌관 출신인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 역시 “김종인 위원장을 옹위하려는 세력들은 조직적이지 않다”며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긴다면 비대위원장을 더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은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이다. 당내에서는 새로운 정통성 있는 지도부를 꾸려서 대선을 준비해보겠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비대위는 당초 계획대로 내년 4월까지 가는 것이고, 만약 변경하려면 구성원들 간에 어마어마한 갈등과 혼란이 생겨날 텐데 의원들이 그런 상황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이 전직 대통령 관련 대국민 사과문에서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쇄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밝히면서 원외 지역위원장들로부터 시작될 인적쇄신의 방향도 주목받고 있다. 앞서 지난 12월 7일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역별 원외 지역위원장 교체가 필요한 선거구 49곳을 확정했다. 당초 ‘막말 논란’과 강성 극우 성향으로 논란이 됐던 민경욱, 김진태 전 의원과 김소연 전 대전 유성구을 지역위원장이 명단에 올랐다는 점이 화제가 됐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김철근 강서병 지역위원장, 김삼화 중랑갑 지역위원장 등 본래 국민의힘 출신이 아닌 원외 지역위원장들 역시 상당수 교체 권고 명단에 올랐다. 당무감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이 ‘이 사람들 날리고 저 사람들 날리고 이런 식으로 큰 가이드라인은 준 것 같다”며 “태극기뿐만 아니라 옛날 바른미래당, 국민의당 출신들을 대부분 다 쳐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