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인물과 구도 면에서 여야 모두에 고차방정식이 됐다. 왼쪽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photo 뉴시스·조선일보
오는 4월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인물과 구도 면에서 여야 모두에 고차방정식이 됐다. 왼쪽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photo 뉴시스·조선일보

“여느 재보궐선거처럼 치러진다면 추미애도 당선 가능성이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여부를 전망하며 내놓은 분석이다. 만약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흥행하지 못하고 저조한 투표율이 나올 경우 여권 열성 지지층의 집결표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므로, 추 장관이 출마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의미다. 재보궐선거는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떨어진다. 이는 선거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고 전국 단위로 치러지지 않아 주목도가 다소 낮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안철수 신드롬’과 ‘박원순의 등장’으로 주목받았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역시 실제 투표율은 48.6%에 불과했다.

추 장관은 법무부 장관 임명 직후인 2020년 1월부터 이어온 ‘추·윤 갈등’을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까지 끌고 갔다. 이에 적지 않은 중도층 유권자들은 추 장관의 행보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2월 18일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동반사퇴’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한 결과 ‘윤석열 사퇴 불필요’라는 응답이 54.8%로 과반을 넘었다. ‘윤 총장도 동반사퇴 해야 한다’라는 응답은 38.3%에 불과했다. 윤 총장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더 높게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추 장관은 여권의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추 장관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경선에 참여한 바 있고, 이후에도 꾸준히 서울시장직에 도전 의사를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일각에는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하며 정권 지지율 하락에 원인을 제공한 추 장관이 출마를 강행할 경우 중도층 표심 이탈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비교적 투표율이 낮은 보궐선거 특성상 지지층의 강한 결집이 필요하므로 오히려 추 장관이 후보로 제격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직을 맡으며 보수층과 중도층에는 비호감도가 높아졌지만, 친문 강성 지지층에는 영웅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서 “이번 보궐선거에서 여당은 중도 확장성보다 지지층의 결집이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우상호 의원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이렇다 할 후보가 나오지 않은 민주당으로선 ‘추미애’라는 거물급 주자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조용한 박영선

현재 여권에서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다. 박 장관은 차기 서울시장 지지율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러 차례 1위를 기록했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12월 19~20일 서울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범여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박 장관은 16.3%로 1위를 기록했다. 추 장관은 8.8%로 2위였다.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지고 보궐선거가 정해진 직후부터 박 장관은 여권에서 출마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점쳐졌다. 그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과 앵커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쌓아온 유명세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박 장관은 서울시장 출마에 줄곧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12월 22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박 장관은 “신중한 생각과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면서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소상공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에 중기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개적인 인터뷰에서 원론적인 답변을 한 셈이지만, 박 장관이 실제로 선거에 뛰어들기보다 장관직을 더 수행하고 싶어 한다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한 정치권 인사는 “박 장관은 지금 맡고 있는 장관직을 잘하겠다는 욕심이 크고, 설사 서울시장에 도전하더라도 이번 보궐선거가 아닌 2022년 지방선거를 더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또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장관이 ‘개인적인 문제’를 비롯해 서울시장 선거 같은 대형 이벤트를 소화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요소가 있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안철수, 금태섭, 이혜훈, 김선동, 조은희 등 출마 러시가 이어지는 야권에 비해 여권은 비교적 잠잠한 분위기다. 현재까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민주당 인사는 우상호 의원뿐이다. 이를 ‘여당의 여유’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49석 중 41석, 서울시 구청장 25명 중 24명, 시의원 109명 중 10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국민의힘에 비해 막강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원순 서울시 10년 동안 서울시 산하의 각종 재단, 위원회, 시민단체 등은 민주당과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됐다”면서 “선거판이 시작되면 이런 조직력이 막강한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3지대’ 후보를 어쩌나?

야권에서는 안철수 대표, 금태섭 전 의원 등 ‘제3지대’ 후보들이 잇따라 출마 선언을 하면서 향후 국민의힘과의 연대·단일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로선 안 대표와 금 전 의원 모두 “국민의힘에 입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은 상태다.

반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야권 단일후보가 되려면 국민의힘에 들어와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비대위 회의에서 안 대표의 출마를 두고 “우리 당 사람들은 일절 반응할 필요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을 경계하고, 국민의힘 소속 후보를 본선에 내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이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현실적으로 승산이 높은 안철수를 밀어주는 게 낫다”는 반응도 나온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의 평행선이 머지않아 한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우리 당에는 초선 의원만 58명인데, 상대적으로 정치적 인맥이나 계파에서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 힘이 모이게 될 것”이라면서 “인지도나 확장성 면에선 안철수 대표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야권 후보들이 헤쳐 모여 100% 국민참여경선(오픈프라이머리) 방식으로 ‘빅텐트’ 경선을 치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서 “당원들도 꼭 우리 당 출신 후보를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철수가 대선으로 직행했을 경우 상황이 더 복잡해질 뻔했다”며 “안 대표 입장에서도 서울시장 선거를 이기고 야권에서 국민의당 세(勢)를 키워나가는 게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철수는 지지율 확장에 한계가 있는 국민의힘을 커버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면서 “박원순 전 시장의 2011년 선거 때처럼 야권통합 후보로 뛰고, 그 이후에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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