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월 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월 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발표한 글 중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은 단연 취임사일 것이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고,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비록 지켜지지 않은 구두선(口頭禪)이 되었지만, 많은 국민은 그의 취임사에 큰 공감을 표했다.

그런데 문재인 취임사에서 유독 거슬리는 문구가 있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라는 대목의 ‘저의 국민’이라는 표현이었다.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쓴 것일 텐데 왜 굳이 ‘저의 국민’이라는 표현을 쓴 것일까. ‘저’는 대통령이므로 ‘저의 국민’은 ‘대통령 문재인의 국민’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지 특정 대통령의 국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만, ‘대통령의 국민’이라는 표현은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대통령은 국민의 소유물이지만, 국민은 대통령의 소유물이 아니다.

여기서 문뜩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12년 10월 1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관람한 뒤 10여분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은 채 눈물을 흘렸다.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문재인은 광해의 백성을 아끼는 모습이 노무현을 닮았다고 회고했다.

영화에서 조정 대신들은 금나라와 전쟁 중인 명나라의 파병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못마땅한 광해는 2만명의 파병을 윤허하면서 금나라에 “명이 두려워 군사를 보내나 금과의 싸움을 원치 않으니 부디 우리 군사들을 무사히 조선으로 돌려 보내주길 소원한다”는 서신을 보내겠다고 한다. 이에 한 대신이 “어찌 사대의 명분을 저버리고 오랑캐에 손을 내밀려 하십니까”라고 다그치자, 광해는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대노하며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 하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곱절은 더 소중하오”라며 절규한다. 문재인의 ‘저의 국민’은 광해의 ‘내 백성’에서 온 것은 아닐까. 군주국가의 신민(臣民)과 민주공화국의 시민(市民)은 근대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분기점이다.

말꼬투리 잡아 괜한 시비를 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여권 인사들의 언동을 보면, 2020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조선시대의 군왕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행정법원에 정직 징계에 대해 소송을 내자 여권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히 맞서려는 것이냐”고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12월 18일 논평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최고통치권자에게 항명하며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비판했고, 당내 의원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모습은 전례를 찾기 힘든 비상식적인 반발”이라며 윤 총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설훈 의원은 “입 닫고 조용히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합당하다”고 압박했다. 신동근 최고위원은 “대통령과 끝까지 가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객기”라며 “윤 총장은 인간적, 도의적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물러나는 게 도리”라고 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금부터는 윤 총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싸워야 하는데, 정말 대통령과 싸움을 계속할 거냐”며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 안민석 의원은 “문 대통령은 사실은 아주 무서운 분”이라며 “마음먹으면 무섭다”고 위협했다. 대통령이 징계를 재가했으면 무릎 꿇고 조아리라는 투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고위직 공무원인 대통령에게도 이 조항이 적용된다. 모든 공무원은 자신의 상관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국민이 아닌 인사권자의 심기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은 진정한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상관이 부당한 지시를 하면 거부하고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권 인사들은 내놓고 맹목적 복종과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왕조시대의 군신(君臣)관계에서나 통했을 법한 논리다.

지난 11월 윤석열이 “국민의 검찰”을 강조하자, 조국은 “국민은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은 적이 없고,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또 “검찰총장의 정당성은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에서 파생했다”며 “따라서 국민에게 책임지기 이전에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이 민주적 통제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민에게 책임지기 이전에 대통령에게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7조 2항과도 어긋나는 발상이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홍세화는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합친 횟수는 김대중 150회, 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문재인 6회다. 위정자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자리는 불편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고 일갈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문 대통령의 퇴행성을 지적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이 또한 지켜지지 않았지만, 대통령 권력이 제왕적이라는 것만큼은 인정했다.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무게중심이 대통령에서 제왕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자 홍세화의 눈으로 보나, 보수주의자 신지호의 눈으로 보나, 문재인은 대통령보다는 제왕에 가깝다. 현 정권을 둘러싼 대립 구도는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근대성 대 전(前)근대성’이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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