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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640호] 2021.01.04

2012년 안철수 현상 vs 2021년 윤석열 현상

곽승한  기자 seunghan@chosun.com 2021-01-04 오후 1:03:52

▲ (좌) 2012년 12월 19일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10월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 2012년 9월 19일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2012년 9월 19일,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으로 쓰인 600석 규모의 공연장은 취재진과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그가 이날 준비한 출마 선언문은 200자 원고지 25매, A4용지 3쪽 분량이었는데, 그중 ‘국민’과 ‘정치’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미래’(9회)였다. ‘경제’는 6회, ‘통합’이 4회였다. 안 대표는 선언문에서 ‘아이들의 미래’ ‘미래를 위한 에너지’ ‘새로운 미래’ ‘더 나은 미래’와 같은 표현을 쓰며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를 밝혔다. 안 대표는 미국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출마 선언을 마무리했다. 2011년과 2012년 대한민국을 흔든 ‘안철수 현상’이 정점으로 치닫던 순간이었다.
   
   당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과 해설이 있지만, 안 대표 본인은 2012년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사람들 눈에 구체제라고 느껴지는 것들, 즉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과 계층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경제시스템 등을 극복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 가치’를 갈구하는 민심이 그런 형태로 나타난 것 아닐까요?”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을 컨테이너로 둘러막은 이른바 ‘명박산성’과 2009년 용산 참사 등으로 인해 집권 초기부터 MB정권과 한나라당에는 ‘불통과 권위주의’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다. 18대 총선에서 80여석으로 줄어든 야당(통합민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이런 배경에서 안 대표가 말한 ‘구체제’는 결국 기성 정치권의 한계로 해석됐다. 그는 “국민들은 나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국 둘 중 하나가 권력을 갖는 불변의 구조’. 이를 거부하고 싶은 민심이 비정치인이던 자신에게 투영됐고, 이러한 ‘미래 가치’를 떠받들겠다는 것이 안 대표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였다. 자신의 권력의지를 능동적으로 어필하기보다 국민의 열망을 실현할 마중물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그리고 상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2020년 12월 24일 윤석열 검찰총장
   
   지난해 12월 24일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대해 제기한 집행정지를 서울행정법원이 받아들이자 윤 총장은 “사법부의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상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은 검찰총장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언급한 문장이지만, 여권과 법무부가 그를 쳐내기 위해 보여 온 ‘비상식적’ 행보와 대비되며 도드라졌다. 앞서 법무부 검사 징계위원회가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을 때도 그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과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징계 처분에서 벗어나 대검찰청으로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윤 총장이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2020년 12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남녀 2041명을 조사한 결과, 윤 총장은 전월보다 4.1%포인트 상승한 23.9%로 1위를 기록했다. 18.2%로 공동 2위를 기록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는 오차범위 밖(5.7%포인트) 격차였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안과 윤이 다른 점
   
   윤 총장은 아직까지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지난해 10월 23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퇴임 이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한 것이 전부다. 다만 “(봉사) 방법에 정치도 들어가느냐”는 물음에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여지를 남겨 “사실상 정계 진출 계획을 선언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의 뜻과는 별개로 주변 지인들이 윤 총장의 정계 진출을 도울 그룹을 꾸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는 주변에 2021년 7월까지인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사상 초유의 현상을 두고 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정권 때도 그랬듯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윤 총장의 ‘일관성’에 사람들은 높은 점수를 매긴다. 평소 윤 총장이 공언해 온 법치주의와 헌법, 공정에 대한 가치란 곧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다. 촛불정권이라고 권력을 잡은 이들이 이런 가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한 국민들이 윤 총장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2년 안철수 현상과 2020년 윤석열 현상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정치인이 대선 지지율 1위를 기록한다는 점, 정치적 행보를 공개적으로 보인 적이 없음에도 그 인물이 가진 가치와 상징성에 국민들의 열망이 투영된다는 점 등이 닮았다. 안철수 대표의 경우 ‘미래적 이미지’, 윤석열 총장은 ‘법치와 공정’이 그들을 상징하는 단어로 꼽힌다. 모두 정치권 밖에서 쌓인 것들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외국에 나가면 잠시나마 지지율이 올라간다. 국내 정치에 거리를 두고 있으면 도리어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이다. 정치적 사안에 일일이 얽히지 않을수록 그 사람의 정치적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두 현상의 차이점은 보다 분명하다. 안철수 대표는 ‘미래’ ‘소통’의 키워드로 국민 앞에 알려진 인물이다. 이른바 ‘소프트파워’다. 반면 윤 총장은 현 정권에 맞서는 투사의 존재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런 분석을 했다. “안철수 대표의 경우 기존 정치권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롭고 도전적인 인물로 보였기 때문에 특히 젊은 층에서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그가 당시 MB정권이나 한나라당에 강하게 맞서 싸워서 지지를 얻은 것이 아니다. 반면 윤석열 총장은 현 정권으로부터 두들겨 맞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 정권과 유일하게 제대로 싸우고 있는 것 같은 인물이 윤 총장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문정서’와 여당에 대한 반감이 커질수록 윤 총장에 대한 지지세는 더 모일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흩어진 반문정서가 윤석열에 잠시 모인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당장 국민들은 먹고살기 힘들고, 코로나19 때문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다 잘될 거야’라는 식으로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지금 정권과 대척점에 있다는 이유로 윤 총장에 지지가 쏠리는 것”이라고 했다.
   
   
   윤 총장의 강점은 맷집
   
   윤 총장 관련 기사에 흔히 보이는 댓글이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았다는 것만으로 윤석열이 공정하다는 의미”라는 식의 내용이다. 윤 총장 역시 자신의 그러한 처지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는 2019년 10월 1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석열이라고 인터넷에 쳐보면 이런 사건 할 때는 이쪽 진영, 또 저런 사건을 수사할 때는 저쪽 진영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비난을 했지만 고소 한 번 한 적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진보 정권마다 핍박받는 처지, 그로 인해 윤 총장은 ‘피해자’의 이미지도 갖게 됐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철수를 비롯해 고건, 이회창, 반기문 등처럼 현실 정치에 뛰어든 적이 없는 상태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과거에도 여럿 있었지만 윤 총장이 그들과 다른 건 ‘현 정권에 대항하다 고난을 겪는 처지’라는 배경이다. 이건 전례가 없던 경우”라고 했다.
   
   윤 총장의 강점으로 꼽히는 점은 역설적으로 그가 현 정권의 집중포화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2019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면서부터 여권의 총공세를 받아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직후부터는 측근들이 대거 좌천당한 ‘인사 대학살’을 비롯해 수사지휘권 박탈과 정직 2개월 처분까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이런 갈등 구조 속에서 윤 총장은 자연스럽게 ‘맷집’이 길러진 셈이다.
   
   정치 경험이 없는 인사들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맷집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 2017년 1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귀국했지만, 언론과 야권의 매서운 검증을 견디지 못하고 20일 만에 뜻을 접었다. 앞서 언급한 국민의힘 의원은 “윤 총장이 현 정권의 탄압에 맞서 견디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민들 눈에는 보통 정치인보다 당당해 보이는 현상이 있다”면서 “아직까지는 한쪽 편에 선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야권에서 이렇다 할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는 점, 여권에서 선두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현 정권과 구별되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윤 총장이 주목받는 이유로 꼽힌다. 김형준 교수는 “대통령이 되려면 자기만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 지사와 이 대표는 오히려 현 정권에 예속되어 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권력에 맹종하는 사람에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윤석열, 안철수 두 사람의 앞날은 어떨까. 공교롭게도 새로운 ‘둥지’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선 같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 후보 단일화는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입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야권 정계 개편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윤 총장 역시 현실 정치에 뛰어든다면, 자신을 받쳐줄 튼튼한 정치적 둥지가 필요하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이끈 윤 총장이 지금의 야당과 함께할 수 있을지, 또 다른 정계 개편을 이끌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받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평론가는 “안철수가 그랬듯, 윤석열 역시 현실 정치에 들어서면 금세 바람이 꺾이게 될지 모른다”면서 “그걸 돌파하기 위해선 함께할 동료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로선 마땅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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