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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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장 후보 캠프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지역신문 1면에 김종인·주호영 투샷이 나오는 거다. 그 둘은 부산시장 선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오히려 해를 끼친다. 김종인은 왜 괜히 ‘가덕도신공항 하나로 부산 경제가 달라지지 않는다’ 같은 말을 해서 미움을 사나. 그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그런데 중앙에서 그런 말을 하면 선거 뛰고 있는 후보들은 뭐가 되나. 저쪽에선 당대표까지 내려와서 공항 지어주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중앙 지도부가 표 깎아먹는 짓을 하고 있다.”

오는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한 선거 캠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여기에는 현재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들이 마주한 상황이 압축돼 있다. 지난해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비위 사건으로 자진사퇴한 이후 최근까지만 해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의 승리를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부산 정치권에선 “이러다 부산도 안심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자체에 대한 비호감도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대한 지도부의 미지근한 태도까지 더해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당 지지도가 아닌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든 후보 지지율 조사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의 이런 우려는 엄살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부산시장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는 박형준 국민의힘 예비후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월 15~16일 부산시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8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34.6%의 지지율로 오차범위 밖 1위였다. 2위는 김영춘 민주당 예비후보로 17.0%였고, 이언주 전 의원 12.1%, 최지은 민주당 국제대변인 6.6%,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4.5% 순이었다. 양자대결에서도 박형준 후보는 51.5%를 얻어 김영춘 후보(27.4%)를 큰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힘이 갖고 있는 현실을 더 뼈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김종인·주호영 투샷이 제일 두려워”

17대 국회(부산 수영구)에서 정치를 시작한 박형준 예비후보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회 사무총장을 거쳤다. 유력 경쟁상대로 꼽히는 민주당 김영춘 예비후보(3선 의원 출신,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비해 정치 경력은 짧은 편이다. 그런데 부산 정가에선 박 후보가 정치를 오래하지 않은 점을 오히려 높은 지지율의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과거 부산 정치권은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여겨져 왔다. 보수세가 강한 영남 지역에서 보수정당 정치인들에게 ‘경선 승리=본선 승리’ 공식은 유효했다. 정치인 개개인의 능력과 성품보다 어느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서 공천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보수정당의 ‘오만’에 균열을 낸 것은 PK 출신 정치인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등장부터 시작된 PK 출신 진보정치인들의 세력화로 부산은 어느새 한국 정치의 ‘백마고지’ 같은 곳이 됐다. 그 정점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과 2018년 지방선거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부산·울산·경남 지자체장 자리를 모두 민주당에 내줬다. 지자체장만이 아니었다. 부산만 놓고 보면 전체 47석의 시의원 중 41석이 민주당에 돌아갔다. 국민의힘 소속 부산시의원은 “그 정도로 참패할 줄은 몰랐다”면서 “부산 시민들이 그동안 오만했던 우리 당을 심판했던 선거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부산의 패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보수정당의 지리멸렬과 ‘텃밭에 대한 오만’이 불러온 참패였다. 부산에서 출마한 적이 있는 한 정치인은 “지금 부산의 일부 현역 국회의원들 면면을 보면, 대기업 과장이 봐도 ‘내가 이 사람보단 낫겠다’고 말할 만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특별한 전문성도, 식견도 없는데 부산에서 나고 자라 정치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공천받아 당선된 이들”이라며 “깃발 꽂으면 당선된다는 안일함이 부산 내에 국민의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심었다”고 했다.

‘국민의힘’ 같지 않아 생긴 박형준 인기

박형준 예비후보의 높은 지지율은 역으로 이런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MB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내긴 했지만 ‘친이계’로 분류될 만큼 정치적 계보가 뚜렷한 인물은 아니다. 청와대를 나온 이후 선출직에 도전한 적도 없다. 이런 이력 덕분에 부산에서 그가 갖는 이미지는 ‘기성 정치인’이 아닌 ‘셀럽’에 가깝다. 박형준 선거캠프 관계자의 말이다.

“후보와 식당에 가면 주방 아주머니들까지 뛰어나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선거 뛰는 보통 정치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곁에서 지켜본 현직 시장들도 지금 박형준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정치인 박형준의 장점은 역설적으로 정치에서 꽤 오랜 시간 떠나 있었다는 것이다. 대신 시사예능 프로그램 등에 고정 출연하며 전국적 인지도를 쌓았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발언으로 호감을 얻었다. 그가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공격하는 정치인도 있던데, 우리는 박형준이 드센 사투리를 쓰지 않기 때문에 지금 부산에선 더 먹히고 있다고 본다. 찐한 부산 사투리 쓰면서 여기저기 술 마시러 다니고, 괄괄한 성격으로 ‘형님 동생’ 하며 잘 먹는 정치인이 인기 얻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 박형준 후보가 인기를 얻고 있는 흐름은 오거돈의 성추문 사퇴가 좀 더 빨리 끌고 온 측면도 있다”며 “지금 부산 사람들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권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은 것이고, 반대로 그 덕에 박형준이 1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형준 후보의 대중적 인지도가 지지율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분석은 여야를 불문하고 모든 선거캠프에서 동의하고 있다. 박 후보의 신사적인 이미지와 꾸준한 방송 출연을 통해 쌓아올린 인지도가 그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국민의힘 ‘냄새’가 강하게 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는 말이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보수정당에 적폐 이미지가 강하게 덧씌워질 당시 정계를 벗어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그의 약점도 드러난다. ‘국민의힘’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비호감도가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정치권 인사는 “박형준은 국민의힘 후보이면서도 국민의힘 티를 내지 않아야 하는 처지”라고 분석했다. 실제 시장 후보 지지율과 달리 부산 내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은 최근 여러 차례 민주당에 뒤졌다. 지난 1월 21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1월 3주 차 주중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8.4%포인트 상승한 34.5%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전주 대비 10.2%포인트 떨어진 29.9%를 기록했다. 지난 1월 25일 발표된 같은 기관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낮은 지지율을 얻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러한 여론조사에 대해 “지지율이 하루이틀 사이 몇 프로 변했다고 해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당장 부산 정치권이 술렁였다. 국민의힘 부산시당 위원장인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그동안 우리 당의 앞선 지지율이 우리 실력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실정으로 거저 얻은 반사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했듯 부산시장 선거를 뛰고 있는 국민의힘 후보들은 현재 중앙당 지도부에 불만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1월 21일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가덕도(신공항) 하나 한다고 해서 부산 경제가 확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구를 지역구로 둔 주호영 원내대표도 지난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다급하니 가덕도를 이용한다”고 비판하면서 “국무총리실 검증단이 기존 김해 확정안을 취소한 것도 아니라고 했고 취소된다고 해도 2순위였던 밀양은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했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의원으로서 밀양공항을 어필한 것은 당연한 입장일 수 있지만, 국민의힘 소속 부산시장 캠프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소속 한 부산시 의원은 “중앙당에서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보니 가덕도를 둘러싸고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선거를 앞두고 당에서 불협화음이 나와선 안 되지만, 민주당은 이 점을 더 파고들 것”이라고 했다.

현재 민주당은 이낙연 대표가 직접 가덕도를 찾아 신공항 건설을 약속할 만큼 적극적이다. 이 대표는 지난 1월 21일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과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의 김영춘·박인영 예비후보와 함께 가덕도 현장 부지를 방문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의 2월 임시국회 통과를 서두르겠다”고 약속했다.

(왼쪽부터) 박형준 동아대 교수 photo 뉴시스 /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 photo 뉴시스 /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 의원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박형준 동아대 교수 photo 뉴시스 /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 photo 뉴시스 /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 의원 photo 뉴시스

민주당의 필사적인 ‘가덕도 카드’

기존의 김해공항 확장안을 뒤엎고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매표 전략’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민주당 선거캠프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수도권 중심론자들의 일방적인 생각”이라고 받아친다. 가덕도신공항에 대해서만큼은 부산 지역 언론도 적극 찬성하며 조속한 착공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중앙 언론에선 가덕도신공항의 경제성과 안전성에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 부산 선거판에서 가덕도가 가장 주효한 카드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다.

국민의힘 이언주 후보 캠프 관계자는 “180석 가까운 민주당은 청와대를 등에 업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 무슨 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가덕도신공항뿐만 아니라 재난지원금 등을 비롯해 어떤 이슈를 꺼내들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 역시 “지난 지방선거 전날 북·미회담이 성사되면서 민심이 한순간에 쏠렸듯, 여권에선 이번에도 ‘빅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에서 본선 진출이 유력한 김영춘 후보는 사실상 선거공약 자체를 ‘가덕도’ 하나로 밀고 나가는 분위기다. 김 후보는 지난 1월 27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가덕도신공항 외에 당장 서민 경기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이 있나”라는 질문에 “특별한 왕도나 지름길은 없다. 있던 기업들도 수도권으로 가려 하는 시대에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겠나.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가덕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고, 서울과 경쟁할 수 있는 한반도 남쪽의 경제중심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또 “부산 시민들 입장에선 (가덕도신공항에) 10년을 속은 거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안 될 거다, 안 속겠다는 심리가 강하다. 하지만 최근 부산 민심은 ‘어, 될 수도 있나?’ 하는 가능성을 보며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부산시장 후보들 역시 가덕도신공항을 둘러싼 부산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 이언주 예비후보는 지난 1월 28일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중앙당과 지도부는 가덕도신공항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한다고 대국민 발표를 해주실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며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의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촉구하며 ‘조건부 사퇴’까지 내건 것이다.

일각에선 가덕도신공항 이슈가 예상만큼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 20년 가까이 선거철마다 반복되어온 사안인 만큼 부산 시민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박성훈 후보 캠프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부산 시민들에게 가덕도는 3순위 문제다. 1위가 서민경제, 2위가 코로나19 방역이다. 가덕도신공항은 완공되고 경제적 효과까지 보려면 10년은 걸린다. 시민들 입장에선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원하는데, 가덕도신공항이 그 정도 영향력은 갖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형준 캠프 관계자는 “2월에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선거 판세에 미칠 영향은 5% 안팎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월 21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방문,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왼쪽 두 번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예비후보 등과 가덕도신공항 건설 추진 예정지에 대한 현장 브리핑을 들었다. ⓒphoto 뉴시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월 21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방문,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왼쪽 두 번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예비후보 등과 가덕도신공항 건설 추진 예정지에 대한 현장 브리핑을 들었다. ⓒphoto 뉴시스

“차라리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것”

이런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부산 정치권 일각에서 민심이 ‘디비진다’며 술렁거리자 국민의힘 지도부도 부랴부랴 부산행을 택했다. 김종인 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2월 1일 부산을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입장도 밝히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이날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적극 찬성’ 의사를 밝힐지 여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차라리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건데…”라며 “김 위원장이 만약 찬성도 반대도 아닌 말만 늘어놓고 가면 부산 지역 언론은 연일 국민의힘을 비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같은 당 후보들 간의 비방전으로 내분 조짐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박형준 후보 사생활과 관련한 풍문들은 이미 부산 지역 정가에서 널리 퍼져 있다. 부산의 정치권 인사는 “박 후보와 관련해 나오고 있는 풍문은 어차피 예전부터 알려졌고 이제는 지나간 일들이다. 새롭게 일어난 일도 아니고, 큰 변수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 시민들에게 또 ‘지들끼리 싸운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중앙당부터 일심동체로 돕겠다고 나서는데, 국민의힘은 자중지란하면서 자기 살을 파먹고 있다”고 한탄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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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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