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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9호]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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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윤석열이 고건·반기문과 다른 점 세 가지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2021-03-12 오후 4:56:28

▲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떠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주당은 윤석열이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했을 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며 대권주자로서의 경쟁력에 의문을 표했다. 괜스레 맞대응해 봤자 몸집만 키워주니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사퇴 나흘 만에 발표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의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며 1위를 차지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청래는 소셜미디어(SNS)에 “한때 반짝 지지율 1위였던 고건도 갔고, 반기문도 훅 갔다”며 “윤석열의 반짝 지지율 1위는 조만간 가뭇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애써 위안을 구했다. 그런데 비슷한 목소리가 정반대 쪽에서도 나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과거 반기문이나 고건도 뜰 때는 무섭게 떴다”며 “정치인 윤석열의 앞길을 미리 예견하는 건 현재로선 의미가 없다”고 여론조사 결과를 평가절하했다. 전자는 그렇게 되길 바라는 희망적 사고이고, 후자는 국민의힘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압박이다.
   
   여하튼 문제제기의 배경과 맥락은 다르지만, 윤석열이 고건이나 반기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제3지대 주자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역사적 현실이 강력한 근거로 작용한다. 정말 그럴까.
   
   아직 ‘정치인 윤석열’의 윤곽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견적을 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윤석열은 고건, 반기문과 다를 것으로 보인다.
   
   첫째, 맷집이다. 여의도 정치권은 진흙탕 그 자체다. 유력 경쟁자를 정면으로 맹폭하기도 하지만, 그슬리기, 돌려까기, 옆구리 찌르기 등 다양한 변종 수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반기문은 19대 대선 약 1년 전인 2016년 6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6%를 얻어 16%를 기록한 문재인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그런데 2017년 1월 대권을 꿈꾸며 귀국한 반기문 앞에는 ‘작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철도 표 구매하며 1만원권 2장 동시 투입, 음성 꽃동네 죽 떠먹여 주기 봉사에서 턱받이 착용, 선친 묘소에서 퇴주잔 원샷 등 작은 실수가 이어졌다. 김경수와 접촉하던 드루킹은 조롱과 비난이 섞인 댓글로 사이버 공간을 도배했다. 결국 반기문은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다”며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하였다.
   
   고건 역시 17대 대선 레이스에서 한나라당 빅3인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를 앞서는 지지율을 상당 기간 기록했다. 그런데 고건을 초대 총리로 발탁한 노무현이 “실패한 인사였다”는 뜬금없는 고백을 하자, 고건은 마침내 기운 잃은 새처럼 날개를 접고 말았다.
   
   고건, 반기문, 윤석열 세 사람에게는 고시 출신 고위 공직자, 좌우 정권 모두에서 기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맥없이 나가떨어진 두 사람과는 달리 윤석열은 장기간에 걸친 집권세력의 집요한 찍어내기를 극복하였다. 타고난 반골 기질과 승부사 근성의 차이라 하겠다. 맷집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권력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언변이다. 고건과 반기문은 전형적인 공무원 화법을 구사한다. 신중하고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맺고 끊는 맛이 부족하다. 이리저리 피해가는 수비에는 능하나 공격의 기술은 결핍돼 있다. 고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포인트가 뭔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 화법이다. 듣는 이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의 언어는 마디마디 딱딱 떨어진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다. “‘검수완박’이면 ‘부패완판’이다”란 표현은 압권이었다. 기성 정치인의 조어(造語) 능력을 가뿐히 넘어선다.
   
   언변 이외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한 이미지 정치가 활성화된 것은 맞지만, 정치인의 기본적인 표현수단은 어디까지나 말이다. 흑인 초선 의원이었던 오바마의 성공 스토리도 그의 탁월한 연설 능력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윤석열이 사법고시 9수를 하게 된 배경에는 끝장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며 토론이 붙으면 납득이 될 때까지 끝장토론을 즐긴 것으로 알려진다.
   
   셋째, 카리스마다. 고건과 반기문에게서는 모범생 공무원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딱딱한 공무원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친근하고 풋풋한 이미지 연출을 해도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에 머문다. 사회구성원 사이의 갈등 수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대한민국에서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고건은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했지만, 현실정치에서의 소구력이 약하다. 다수의 한국인은 쾌도난마의 리더십을 갈망한다.
   
   윤석열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한다.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강인함,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기개는 대중에게 경외심(敬畏心)을 갖게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으면 가장 좋지만, 택일의 경우 사랑은 못 받아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골 검사 윤석열은 이에 해당한다.
   
   이상 살펴본 맷집, 언변, 카리스마 세 가지는 정치인 윤석열의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윤석열이 반사체가 아니라 발광체라는 점도 이 세 가지를 통해 명쾌하게 정리된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1987년 이후, 그러니까 제6공화국 들어 민주당-국민의힘 계열이 아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국 정치에 고착화된 양당 구조를 개인기나 지지율로 극복하기는 기적에 가깝다. 기성정치의 때가 묻지 않고 당파성에 함몰돼 있지 않은 점은 현재로서는 장점이나, 시간이 갈수록 단점으로 바뀔 수 있다. 결국 윤석열은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하여야 한다.
   
   첫째, ‘공정국가 건설’이라는 뚜렷한 시대정신을 제시해야 한다. 검찰총장 시절의 법치 수호를 넘어 사회 각 분야에서 공정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구체적 복안을 갖고 국민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공정국가는 민주당이 지향하는 복지국가와 대비될 것이다.
   
   둘째, 낡은 질서를 혁파하는 국가 시스템의 대전환이 절실함을 설파해야 한다. 수명을 다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제6공화국을 폐(廢)하고 분권과 협치가 만개하여 국민통합을 달성할 ‘제7공화국의 창건’을 내걸어야 한다. 문재인을 앙시앵레짐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만드는 미래지향성을 확보해야 퇴행적 문(文)주주의를 확실히 종식시킬 대중적 동력 또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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