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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651호] 2021.03.29

빨간 넥타이의 안철수 ‘제3지대’ 벗어나나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합류한 안철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세훈 후보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3월 23일 오후 2시 국회 소통관. 서울시장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배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기자회견장에 섰다. 밝은 표정의 안 후보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승리를 축하하는 대목에서는 한껏 목소리 톤을 올렸다. 깔끔하고 담담하게 패배를 인정한다는 듯 “새롭게 신발 끈을 고쳐 매겠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도 본선 후보가 되지 못했다는 건 정치인으로 뼈아픈 결과였다.
   
   안 대표는 그의 말대로 제3지대에서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으며 가장 오랫동안 버틴 정치인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제3지대 대표주자로 야권 전체의 구심점이 되겠다던 그의 구상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당선권에 가장 근접해 있던 후보였고 단일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막판 반(反)여권 정서가 모인 곳은 안 대표가 아니라 제1야당의 오세훈 후보였다. 서울시장 선거의 본무대에서 안 대표는 이제 사라졌다.
   
   
   2018년과 달라지지 않은 안철수의 기시감
   
   거대 양당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원하는 유권자의 요구는 늘 존재했다. 이들은 보통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라는 이름으로 그룹화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입소스(IPSOS)가 중앙일보의 의뢰로 지난 3월 19~20일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1002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무당층은 21.6%(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였다. 18~29세, 학생, 그리고 스스로 중도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다수를 구성한다. 무당층이라고 답한 사람의 절반 이상은 양자 대결이든, 3자 대결이든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했고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투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정치에 무관심해 보이지만 선거 때마다 키를 쥐고 있다는 이들 무당층은 여론조사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20% 정도로 추산된다.
   
   안 대표는 왜 졌을까. 국민의당 관계자의 말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사태가 가장 큰 영향을 줬다. 작은 정당보다 제1야당을 향해 정권심판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하지만 내부 전략도 아쉽다. 야권 단일화를 마무리했다는 것 빼고는 안 대표의 전략이 2018년 서울시장 출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도 이유라고 본다. 메시지의 기시감이 강했다. 나를 중심으로 단일화해 달라고 요청만 했을 뿐, 왜 그래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부족했고 설득하지도 못했다. 뒤로 갈수록 국민의힘 쪽으로 지지율이 달아난 건 결국 이들을 붙잡을 수 있는 명분이 없어서다.”
   
   안 후보의 서울시장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2018년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일 때 서울시장에 정식 도전장을 내밀었던 게 첫 번째였다. 2018년과 2021년 서울시장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적 지형은 닮았다. 정치인 안철수는 3년 전인 2018년 4월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면서 ‘야권의 대표 선수’를 자처했고 “표를 한곳으로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제3지대에 자리 잡아 제1야당을 흔들어 중도는 물론 보수진영으로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노림수 역시 2021년의 전략과 비슷했다. 자신이 제1야당의 후보(당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어서 야권의 축을 바른미래당으로 가져오며 정계 개편의 중심을 노리는 것 역시 흡사했다.
   
   그렇게 맞이했던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받아든 성적표는 3등이었다. 여론조사에서는 2등을 유지했지만 선거 막판 제1야당으로 이탈한 표심을 붙잡지 못했다. 당시의 패배로 안 후보는 2선으로 물러났고 구심력이 약해진 바른미래당은 쪼개졌다. 안 대표 본인도 유력 대권주자에서 무게감이 적당한 후보쯤으로 내려앉으며 체급이 낮아지는 피해를 봤다.
   
   2021년의 도전은 2018년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다. 3석짜리 국민의당 후보는 자신을 중심으로 단일화를 주장하며 거대 양당을 기득권으로 몰아붙이고 새로운 야권의 재편을 요구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는데 자신감의 밑천은 무당층이 보내준 지지가 바탕이었다.
   
   
▲ 지난 3월 24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금태섭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게 당복을 입혀주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제3지대? 단단히 묶어낼 수 없다”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같은 기관이 간격을 두고 실시한 여론조사를 비교해 보자. 입소스-중앙일보가 3월 5~6일 실시한 3자 가상대결(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무선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서는 안 대표가 26.4%를 얻어 24.2%를 얻은 오 후보를 오차범위 내 접전이지만 앞섰다. 무당층 중 무려 34.8%가 안철수 대표를 지지하면서 지지율을 떠받쳤다. 오세훈 후보가 받은 무당층 지지율은 18.6%였다. 2주 뒤인 3월 19~20일 조사에서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다. 먼저 3자 대결에서 오 후보가 32.3%를 얻어 안 대표(23.2%)를 크게 앞섰다. 무당층의 선택이 과거와 달라졌다. 무당층 중 안 대표를 지지한 이들은 30.2%로 떨어졌는데 반대로 오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 28.6%나 됐다. 사실상 무당층이 점점 국민의힘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흐름이었고 단일화 여론조사에서도 이들이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 많다.
   
   정치 노정을 볼 때 안 대표는 제3지대에 안착하는 데 능숙했다. 이미 존재하는 양당 구도 사이의 빈 공간을 차지하는 데 집중했고 어느 정도 성공해왔다. 문제는 이 제3지대를 떠받치는 이들의 지지가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과거 안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았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뒤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3지대 포지셔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적극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내용을 보여주기보다 이미 있는 양당 구도에서 중간을 차지하려는 경향으로는 넓게 걸칠 수 있을지 몰라도 지지세력을 단단히 묶어낼 수가 없다. 느슨해지고 갈라지고 쪼개지기 쉽다”는 최 교수의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이들은 이념 스펙트럼이 넓다. 좌우 양쪽을 다 포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당층에 모두 들어간다.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16.3%),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11.5%),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27.5%)이 한데 모여 뒤섞여 있다.
   
   이들을 묶어내기 어려운 건 이들이 사안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집단이라서다. 프레임 이론으로 유명한 조지 레이코프 버클리대 교수는 중간지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이념적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보통 무당층 지지자들을 중도로 표현하는 건 이념적 좌표에서 중간에 위치하는 걸로 오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좌파는 “조금 더 오른쪽으로”를 외치고, 우파는 “조금 더 왼쪽으로”를 주장하며 이들을 포섭하려 한다. 반면 레이코프 교수는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적 이데올로기 소유자가 아니라 둘 중 하나의 이념을 활용해 사안에 따라 이쪽저쪽을 번갈아 오갈 뿐이라고 설명한다. ‘신념보다는 다양한 조합으로 존재하는 집단’이라는 해석이고 그래서 이들은 사안에 따라, 대세에 따라 지지를 달리한다. 그래서 흔히 선거에서 토끼론을 언급할 때 이들은 ‘산토끼’로 불린다.
   
   단일화 과정이 한창 진행되던 때 만났던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대표의 한계를 지적했다. “안 대표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같은 중도확장성을 가진 후보끼리 붙는다면 제1야당이 질 리 없다. 우린 집토끼를 끼고 산토끼를 잡으러 가는데 그쪽은 산토끼를 불안하게 낀 채로 우리 집토끼를 잡으려고 한다. 그동안 중간지대에서 안철수 대표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받았나. 결국엔 모두 다 놓치지 않았나.”
   
   안 대표는 야권 단일화가 막판으로 갈수록 치열해지자 국민의힘 지지층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더 큰 2번을 만들겠다” “안철수를 선택해야 국민의힘을 정권교체의 중심에 설 수 있게 한다” “선거 이후 국민의힘과 합당하겠다”는 말들을 쏟아내며 보수진영과 거리를 뒀던 그간의 태도와 사뭇 달라진 자세를 취했다.
   
   
   축소될 수밖에 없는 제3지대론
   
   보통 선거는 ‘선(先) 결집 후(後) 확장’의 공식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먼저 집토끼의 지지를 공고하게 다져놓은 뒤 내 편이 될 만한 산토끼를 쫓아 공략한다. 안 대표가 보수에 구애하던 때, 오 후보는 제3지대에 위치한 무당층을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보통 중간지대 공략은 당의 선택을 받은 후보가 지지층의 결집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선명함을 양보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오 후보가 제시한 건 ‘실용적 중도우파’ ‘개혁우파 플랫폼’ 등 외연확장에 유용한 단어들이었다. 여기에는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뒤 먼저 집토끼를 강하게 단속했다는 확신이 전제로 깔렸다. LH 투기 의혹 등으로 정권심판론이 확대되며 제1야당 프리미엄이 강해진 것도 안 대표의 중도층 기반을 부스러트렸다. 상대적으로 안 대표는 연약한 지지층을 발판으로 삼은 채 콘크리트 같은 보수층을 공략해야 했으니 훨씬 어려운 길을 걸은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선거구도에서 안 대표가 실패했다는 점은 앞으로 제3지대의 입지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걸 뜻한다. 정치인 안철수의 실패는 밖에서 정치 데뷔를 저울질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독자세력화에도 영향을 준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권심판론이 우세했고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야당이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래서 제3지대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은 선거였고 초반 안 대표의 1위 질주는 이런 구도 덕을 일정 부분 봤다. 하지만 그 우세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건 안 대표의 능력 탓도 있지만 제3지대의 한계와 맞물려 있다.
   
   1년이 채 남지 않은 다음 대통령 선거는 제1지대와 제2지대의 양강 체제가 강해질수록 제3지대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는 선거다. 단일화 승복 기자회견을 가진 다음 날인 3월 24일, 안 대표는 국민의힘의 상징색인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국민의힘 의원총회를 찾았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안 대표도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며 환대에 답했다. 정치권에서는 제3지대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 안 대표가 약속했던 합당을 통해 제1야당에 들어가 재기를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제3섹터의 존재는 대세의 흐름”이라고 주장했던 안 대표의 이런 행보는 역설적으로 제3지대의 승리가 얼마나 공허한 수사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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