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4·7 보궐선거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4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4·7 보궐선거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대표. ⓒphoto 뉴시스

두 번의 대선과 세 번의 서울시장 선거에 유력주자로 이름을 올렸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이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단일화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안 대표는 지난 10년간 주요 선거에서 단일화의 중심에 있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진보·보수를 오가며 단일화를 시도한 이력 때문에 정체성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4·7 선거에선 안 대표가 단일화 경선 패배 이후 헌신적인 선거 지원에 나서면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의 ‘1등 조연’이란 평가를 받았다.

안철수 지지자 74%가 오세훈 지지

안 대표의 영향력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오세훈·안철수 야권 후보 단일화 이후 지난 3월 27일 칸타코리아 조사에서 단일화 이전에 안 대표를 지지했던 74.4%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안 대표 지지자 중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지지로 옮겨간 경우는 14.1%에 그쳤다. 2012년 대선에서 안 대표가 후보 사퇴 이후 단일화 파트너였던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이던 때와는 크게 달랐다. 2012년 12월 5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안 대표 지지자 중 절반이 조금 넘는 56.7%가 문 후보 지지로 이동했고, 22.5%는 반대 진영의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단일화 효과가 훨씬 컸던 셈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20대 표심(票心)이 승부를 갈랐다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젊은층 유권자를 끌어오는 데 안철수 효과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안 대표는 지난 4월 12일 당 회의에서 “(여야는) 20대에 표 맡겨놨나”라며 “정치권은 긴장해야 한다. 20대 유권자의 실용적 선택은 표 장사할 궁리만 하는 세력은 더 이상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이번 선거 이후 20대 표심을 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입맛대로 편리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자, 20대가 다음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경고였다.

‘20대 표심의 대변자’란 자신감

안 대표의 이날 발언은 본인이 ‘20대 표심의 대변자’란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한국리서치의 지난 3월 8~9일 조사에서 박영선·오세훈·안철수 3자 가상대결의 전체 유권자 지지율은 30.5%, 23.1%, 22.4% 등으로 안 대표가 3위였지만 20대에선 26.3%로 박 후보(19.9%)와 오 후보(17.9%)보다 높은 선두였다. 안 대표는 청년층뿐만 아니라 중도층과 무당층(無黨層)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중도층의 안 대표 지지율은 28.1%로 박 후보(22.2%)와 오 후보(20.0%)를 앞섰다. 무당층도 안 대표 지지율이 31.1%로 박 후보(10.0%)와 오 후보(12.9%)를 압도했다. 청년층, 중도층, 무당층 등 평소 특정 정파에 대한 선호가 강하지 않은 유권자가 국민의힘 쪽으로 쏠렸던 것에는 안 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드라마의 주인공은 안철수”(윤상현 무소속 의원), “안철수 대표, 금태섭 전 의원 등 중도세력이 큰 힘이 됐음은 분명하다”(조해진 국민의힘 의원) 등 안 대표의 공을 높이 사는 평가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주요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여전히 민주당보다 낮은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재보선 기간이던 지난 4월 5~7일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사 공동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2%, 국민의힘 28%였다. 선거 직전 한국갤럽 조사(3월 31일~4월 1일)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31% 대 28%였다. 갤럽 조사에서 20대(22% 대 14%)와 30대(37% 대 15%) 등에선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더 크게 뒤졌다.

결국 정당 지지율에서 열세였던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민의힘에 대한 호감도가 낮았던 20·30대가 선거에선 반문(反文) 연대를 이룬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많이 던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했다면 선거에서 보수층과 중도층의 결합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오 후보와 안 대표의 단일화로 반문 연대가 성사됨에 따라 여당의 네거티브 공세에도 불구하고 청년층과 중도층의 표 이탈이 적었다”고 했다.

하지만 4·7 재보선 압승으로 함께 웃었던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에선 선거 직후 파열음이 나왔다. 선거 전에는 ‘대통합’을 외쳤지만 막상 통합이라는 과제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내부는 ‘선(先) 통합파’와 ‘후(後) 통합파’로 갈라져서 입장 조율이 쉽지 않고, 국민의당도 야권 통합이 안 대표의 정치적 진로와 직결되는 사안이라 판단이 어렵다. 야권 통합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실체가 없는데 무슨 놈의 야권, 무슨 대통합 타령인가”라고 했다. 국민의당도 합당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형태로 합당할 경우 안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4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인근에서 오세훈 후보(오른쪽)와 공동 유세를 벌인 안철수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4월 4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인근에서 오세훈 후보(오른쪽)와 공동 유세를 벌인 안철수 대표. ⓒphoto 뉴시스

내년 대선판에서도 상수 될 것

안 대표는 이번 선거 직후 “선거 승리는 야권에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다. 야권 대선 플랫폼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서울시장 선거처럼 내년 대선에서도 안 대표가 판을 흔들 상수(常數)”란 견해가 많다. 지난 10년간 ‘단일화 레이스’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안 대표가 내년에 다시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최근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준 20% 안팎의 득표력 때문이다. 2017년 대선에서 안 대표의 득표는 21.4%로 24.0%인 홍준표 의원과 야권 표를 반반 정도씩 나눠 가졌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안 대표의 득표율은 19.6%로 23.3%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야권 후보 단일화 직전까지 여야 3자 가상대결에서 안 대표의 지지율은 20%가량으로 오세훈 후보와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다.

김형준 교수는 “예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거대 양당을 싫어하면서 중간지대의 후보를 주목하는 유권자가 내년 대선에서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며 “제3의 후보와 연대하는 쪽이 유리한 선거 구도가 다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안 대표의 득표력이 20%가량인 것은 대선 승리를 위한 연대 파트너로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선거판을 독자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규모에는 못 미치는 약점이란 지적도 있다. 조일상 메트릭스 대표는 “안 대표는 결집력이 약한 청년층과 중도층에서 강점이 있지만, 영·호남이나 보수층 또는 진보층 등 결집력이 강한 지지기반이 없다는 한계도 있다”며 “선거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으로 부각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