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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657호] 2021.05.10

청와대 국민청원 북적이는데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김회권  기자 khg@chosun.com 2021-05-11 오후 12:59:28

▲ 국민동의청원은 10만명의 동의를 얻더라도 국회 상임위원회의 높은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청와대가 운영하는 국민청원은 늘 북적북적하다. 현대판 신문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청와대가 지난해 8월 공개한 ‘국민과 함께한 국민청원 3년’에 따르면 2017년 8월 19일 문을 연 청와대 국민청원은 제도 시행 이후 3년간 87만8690건의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 동의 횟수는 1억5000만회가 넘는다. 일일 평균 국민청원 게시물은 81건이 올랐고 청원 동의 수는 약 14만회였다.
   
   이것과 비슷한 제도가 국회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름도 ‘국민동의청원’으로 청와대의 국민청원과 비슷하다. 과거 국회에 입법과 관련한 청원을 하려면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문서로 작성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했다. 이른바 ‘의원소개청원’이다. 이 문턱이 높다 보니 국민 개인보다 시민단체들이 의원과 협조해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벽을 낮춰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일자 국회는 전자청원을 도입했고, 그렇게 2020년 1월 10일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됐다. 민의를 반영하는 다이렉트 통로를 만들겠다는 시도였다.
   
   
   2021년 상임위에 회부된 청원 ‘0건’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이내 1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청원이 공개되며 이 공개된 청원이 ‘30일 이내 10만명 이상’ 동의를 받으면 국민동의청원으로 해당 상임위에 공식적으로 회부된다. 2019년 처음 이 제도를 논의할 때 국회사무처는 ‘30일 이내에 20명 이상 동의’ ‘90일 이내 5만명 이상 동의’를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국회 운영위원회 심사과정에서 기준이 강화됐다. 2019년 11월 28일 운영위 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90일에 5만명은 너무 쉽다” “청원이 간소화되면 한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청원들이 막 올라올 수 있다” 등의 반대 의견들이 나왔었다. 청와대의 경우 국민청원 공개는 ‘30일 이내 100명 동의’, 답변은 ‘30일 이내 20만명 이상’이다. 어쨌든 국회의원들도 현재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는 심사할 의무를 지게 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법적 토대가 없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가 입장 혹은 답변을 내놓을 뿐이다. 이 때문에 여러모로 접근하기 손쉽다. 본인확인 절차가 없으니 사람들이 청원에 동의하는 게 번거롭지 않아서 손쉽게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반면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헌법에 보장된 청원 절차를 따라야 한다. 입법 과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국민이 동의를 표시할 때도 회원가입이나 본인확인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청와대의 그것보다는 번거롭다.
   
   이런 국민동의청원의 불리한 여건을 고려하더라도 그 활용도는 의문이 남는다. 서비스가 시작된 뒤 1년4개월 동안 100명의 동의를 얻어 공개된 국민동의청원은 총 204건에 불과했다. 월별 공개 건수를 보면 초반에는 어느 정도 참여를 유발했지만 잠깐 반짝한 뒤부터는 청원의 공개 건수 자체가 급감했다. 2020년 1월 5건, 2월 9건, 3월 52건, 4월 26건으로 유지되던 공개 청원 건수는 이후 10건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2020년 12월부터는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특히 204건 중 2020년에 공개된 국민동의청원이 183건으로 대다수다. 2021년 1~4월은 고작 21건만이 공개됐을 뿐이다. 1년 전 2020년 1~4월에는 92건이 공개됐다.
   
   이 중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상임위에 회부된 건수는 총 18건이다. 20대 국회 임기였던 2020년 1~5월 사이에 상임위에 올라간 게 7건이었고 11건은 21대 국회 기간인 지난해 6~12월에 회부됐다. 2021년 들어서는 단 한 건도 상임위에 접수되지 못했다는 점은 국민들이 지금도 적극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들은 국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회부된 18건 중 5건은 본회의에 가보지도 못하고 상임위에서 ‘본회의불부의(본회의 의제로 올리지 않음)’하거나 ‘대안반영폐기’하는 걸로 결정했다. 5건은 지난해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나머지 8건은 지금도 상임위에 계류된 채 남아 있다. 상임위에 회부된 18건 중 본회의에 올라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21대 국회가 들어선 뒤 국민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상임위로 올라간 국민동의청원 11건 중 마무리가 된 건 3건에 불과하다. 본회의불부의가 2건, 대안반영폐기가 1건이었다. 상임위에 계류 중인 8건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 제·개정 반대 및 한의대 정원을 이용한 의사 확충 재고, 모든 노동자 근로기준법 적용·노조활동 위한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 개정,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위한 특별법 개정, 낙태죄 전면 폐지·여성의 재생산권 보장,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 교육공무직원과 방과후학교·돌봄교실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교육관련법 개정, 태아 생명을 보호하는 낙태법 개정안 요청에 관한 청원 등이다.
   
   
   의원들이 스스로 높인 심사의 문턱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청원들은 민감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양분할 수 있는 청원이어서 의원들이 미루거나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8건은 모두 상임위에서 소위원회로 보냈지만 아직 청원소위가 열리지 않아 심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청원의 경우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때가 지난해 7월 8일이었다. 10만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약 10개월 동안 국회의 대답이 없는 상태다.
   
   국회 내에서도 국민동의청원이 실제 입법으로 이뤄지지 않는 1차적인 이유로 청원소위를 지목한다. 보통 청원소위는 법안심사소위보다 열리는 횟수가 적다. 국회 관계자는 “의원 제출 법안은 법안소위를 통해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지만 청원소위는 보통 ‘잠자는 소위’라고 부를 정도로 열리지 않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국회법 125조 5항은 상임위 회부 청원은 회부된 날로부터 150일 이내에 심사를 끝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25조 6항은 상임위의 의결로 얼마든지 추가 연장 심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럴 때 심사 만료일은 보통 국회의원의 임기 만료일로 정한다. 사실상 무한정 미룰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8월 18일 보건복지위에 올라간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 제·개정 반대 및 한의대 정원을 이용한 의사 확충 재고에 관한 청원’ 역시 1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상임위에서는 “보다 심도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청원 심사 만료일을 2024년 5월 29일로 연장했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임기 마지막 날이다. 10만명의 동의를 얻는 것보다 국회의원의 심사가 더 높은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어렵게 청원 기준을 넘어서더라도 국회의 반응이 굼뜨고 미온적이다 보니 청와대 국민청원과 비교해 국민동의청원의 효용성을 느끼기 어렵다. 참여연대가 125조 6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국회가 청원 심사를 무시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동의청원은 ‘누구나 법을 만들 수 있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태어났지만 ‘아무나 법을 만들 수 없다’라는 점만 확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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