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5월 13일 사퇴했다. 문 대통령이 박 후보자를 비롯해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하는 등 임명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였지만 결국 박 후보자는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장관 후보자 3명 중 최소 1명은 낙마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이번 장관 인사를 둘러싸고는 여권 내에서도 자중지란이 일어났었다. 박 후보자가 사퇴했지만 문 대통령이 남은 두 명의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문재인 정부는 이전 노무현(3명)·이명박(17명)·박근혜(10명) 정부를 합친 숫자보다 많은 30명 이상의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야당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번에 장관 후보자 임명을 반대해온 야당의 공세는 일단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을 향해 있었다. 애초에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어 자리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추천했다는 비판이다. 인사수석실을 두고는 여권 일각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 아내의 도자기 밀수 판매 의혹 등은 소셜미디어를 조금만 찾아봐도 나오는 문제인데, 이런 문제조차 미리 걸러내지 못하는 등 기초적 부분에서 사전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유독 도덕적 흠결이 있는 부적격 인사가 자주 후보자로 지명되는 데에는 “인사 검증을 위한 정보 기능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통상 청와대는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를 사전 검증할 때 정부가 보유한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여러 자료를 제출받는다. 여기에는 후보자의 주민등록이전자료, 전과기록, 부동산거래기록 등이 포함된다. 또 검증 대상자에게 서면으로 된 사전 검증 질문서를 작성하게 하고, 질문서를 바탕으로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는 방식으로 검증을 한다.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담당하는 이 과정을 거쳐 후보자가 지명되면 국회 인사청문회와 언론의 검증을 거친 뒤 결과에 따라 임명 여부가 결정된다. 인사 업무는 인사수석실에서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수석실이 추천한 인사들을 검증하는 민정수석실과의 합동 작업이다. 이런 시스템을 감안했을 때 민정수석 라인의 책임론도 불거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정부의 경우 경찰과 국가정보원, 기무사, 검찰 등에서 올라온 복수의 정보가 서로 크로스체크 기능을 했는데, 현 정부는 경찰이라는 한정된 정보에 편중되다 보니 ‘인사 참사’가 반복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기무사 약화 교차점검 불가능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개입 역량이 크게 축소된 상황에서 정보경찰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전 정부의 경우 국정원 정보관(IO)들이 각 부처를 출입하면서 인사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들을 수집했었다. 경찰 역시 인사 대상자에 대한 세평(世評)을 수집해 왔지만 당시에는 국정원도 세평을 수집했다. 또 기무사(현 안보지원사) 요원과 검찰 범죄정보기획관(현 수사정보정책관)이 수집하는 정보도 함께 보고되면서 여러 정보가 서로 교차점검이 되는 구조였다.

경찰 정보를 신뢰한 역대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경찰청장은 영남 등 다른 지역 사람을 앉혀도 본청 정보국장은 꼭 호남 사람을 시켰다는 것이 한 전직 정보경찰의 말이다. 본청 정보국장은 그만큼 정권이 신임하는 요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찰청 정보국 출신의 한 전직 정보경찰의 설명이다.

“왜 경찰 정보를 신뢰하냐. 정보관들이 동마다 다 나가니까. SRI(Special Requirement for Intelligence)를 지시하면 정보관들이 쫙 나가서 발로 뛴다. 반면에 국정원 애들은 무조건 돈으로 해서 한계가 있다. 돈으로 사는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가공된 정보라 보기는 좋지만 올라갈수록 왜곡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근데 경찰 정보는, 표현은 좀 투박해도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다.”

한 전직 정보경찰은 “세평을 수집하면 전 부처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담당 정보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업무 협조를 잘 한다”며 “세평을 수집하는 게 정보경찰이 지닌 힘의 원천”이라고도 했다.

세평 수집 업무를 했던 한 전직 정보경찰은 “세평이 정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통 1명한테 친한 사람 5명을 적어내라 하고, 그 사람들을 만나서 또 다른 친한 사람 5명을 적어내라는 식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듣다 보면 한 사람에 대한 세평이 대부분 갖추어진다. 본인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생각보다 공정한 평가가 나온다. 친하다고 주관적으로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평가자의 위치에서, 대상자보다 높은 위치에서 한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 나온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신임을 받던 경찰 정보의 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때부터라고 한다. 우 전 수석은 검찰 재직 당시 자신이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이유가 경찰의 세평 때문이라고 봤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은 검사장 승진에서 미끄러진 뒤 검찰을 떠났다가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복귀했다. 당시 검사장 인선을 위한 세평 수집을 정보경찰들이 담당했는데, 이들이 우 전 수석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보고한 것이다. 그래서 우 전 수석은 민정수석에 오른 뒤로 경찰의 세평 보고를 받지 않았고, 기존 경찰의 세평 수집 기능을 국정원으로 넘겼다. 이와 함께 청와대 특별감찰반이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조국도 “국정원 정보 없어 검증에 제약”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국내 주요 포스트에 출입하던 국정원 정보관 제도를 아예 폐지했다. 반면 경찰의 정보 기능은 강화됐다. 특히 경찰의 세평 수집 기능도 부활시켰는데, 국정원과 기무사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경찰 정보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현 정부 들어 모두 ‘민간인 사찰’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보 수집 기능이 폐지됐지만 경찰은 대통령령인 ‘공직 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세평을 현재도 계속 수집하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세평이고 어디까지가 사찰이냐’는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찰의 세평 수집 기능이 이 정부 들어 부활했지만 전반적인 정보 능력은 이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박근혜 정부 5년간 경찰 정보망이 지속적으로 약화됐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정보기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무사도 과거 정보 기능을 담당하던 ‘1처’가 폐지되는 등 조직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안보지원사로 개편됐다. 과거 기무사의 ‘1처’는 군 장성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동향 파악 등을 주요 업무로 했었다. 검찰의 범죄정보기획관실 역시 수사정보정책관실로 바뀌면서 조직 자체가 축소됐다. 한 관계자는 “기무사도 이재수 전 사령관을 구속해 자살하게 만들지 않았나. 검찰 범죄 정보도 다 약화됐다. 이제는 정보 크로스체크가 도저히 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보 수집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와 역대 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보 수집의 주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막으면서 그간 ‘존안 자료’라고 불렸던 국정원 인사 자료를 활용하지 않았다. 특별감찰관도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2016년 9월 사퇴한 뒤 김태우 전 특감반원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이다. 실제로 청와대도 이로 인한 어려움을 인정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인 조국 전 수석이 정부 출범 1년 뒤인 2018년 5월 8일 ‘1년간의 인사검증 회고와 향후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그런 발언을 했다. 당시에도 제기됐던 ‘부실 검증’ 비판과 관련해 “과거 정부와 달리 국가정보원 정보를 사용하지 않아 검증 정보에 제약이 있었고, 사전질문서에서 관련 사안을 묻는 항목 자체가 없었거나 후보자가 충실히 답하지 않아 검증이 한계에 부딪힌 일이 많았다”고 자체 진단한 것이다.

“정보 받는 사람이 준비가 돼 있어야”

이처럼 정보 수집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 성향까지 결합되며 ‘인사 난맥상’이 더욱 악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크로스체크를 할 만한 정보 출처가 이전보다 한정적이 된 데다, 한번 정하면 자신의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 문 대통령 특유의 ‘고집’까지 겹치면서 인사 문제가 악화됐다는 것이다. 20대 국회 말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한 이상돈 전 민생당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이 정부가 인사풀을 너무 좁혀 놓았다”며 “이번 정권 들어서는 검증이라고 할 게 없을 만큼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을 잘 따르고 친밀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무난히 통과됐는데 부처 내에서 장관을 할 만한 무난한 사람들을 임명하면 잡음이 없다. 억지로 개인적 인연을 토대로 사람들을 임명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어떤 정부든 고위직 인사를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국정철학과 맞느냐”는 점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경우 정보 출처가 편중된 데다 그나마 있는 경찰 정보까지 ‘참고는 하지만 결국 자기 생각대로 하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에 막혀버리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결국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인사 난맥상’을 불러오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 전직 정보경찰은 “고위공직자 인사에서 중요한 건 어쨌든 의사결정자의 의지라고 본다. 무엇보다 정보를 보는 사람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보 보고를 올려도 듣지를 않으면 소용이 있나. 자기 고집이 너무나 세면 정보고 뭐고 다 소용없다”고 말했다. 다른 전직 정보경찰은 “민정수석실의 원래 기능이 민간 여론 청취와 검증인데, 조국 전 수석 때부터는 민정수석실 라인이 다 수사받고 있는 데다 정보를 줘봐야 받지도 않으니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여기다가 현 정권 특유의 관료 불신 현상까지 겹치면서 문제가 더 심화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돈 전 의원은 “기본적으로 이 정부가 관료를 불신하는 데다 검찰 등 온갖 분야마다 ‘개혁’을 외치면서 하도 휘저어 놓아서 이제 인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정권 밑천이 다 드러난 셈”이라고 했다.

과거 청와대 근무경력이 있는 국민의힘 한 관계자 역시 “결국 최고통치자의 의지 문제 아니겠나. 나는 시스템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여러 대통령을 거쳐오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이 많이 갖춰졌지만 결국 고위급 인선은 이명박·박근혜 때도 다 위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뒤 친한 친구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으니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엄청날 것”이라며 “결국 내 사람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 네 편 내 편에 대한 생각이 강하니 인재풀이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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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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