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중단된 대만 룽먼원전(제4원전). 오는 8월 28일 건설 재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photo 대만 경제부
공사가 중단된 대만 룽먼원전(제4원전). 오는 8월 28일 건설 재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photo 대만 경제부

대만의 원전 건설 재개를 결정할 국민투표가 10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의 탈원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대만은 오는 8월 28일, 제4원전 건설 재개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대만 북부 신베이(新北)시 룽먼(龍門)리에 있어 ‘룽먼원전’이라고도 불리는 제4원전 1·2호기는 공정률 각각 98%와 91%에서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오는 8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건설 재개 및 가동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대만 국민투표는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효력을 발휘한다.

대만은 2018년, 대만 내 모든 원전 가동을 2025년까지 중단하기로 한 전기사업법 규정을 놓고도 국민투표를 실시했었다. 당시 전기사업법 관련 규정 삭제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에서 59(찬성) 대 41(반대)의 결과가 나오면서 ‘2025년’ 문구를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규정이 지난 국민투표로 이미 삭제된 상황에서 오는 8월 국민투표에서 제4원전 건설 재개가 결정되고 상업운전을 시작하면,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민주진보당(민진당) 정부의 탈원전 목표시점이 최소 40년 이상 늦어지며 탈원전 정책은 사실상 좌초된다.

우리 정부와 원자력계도 대만의 탈원전 투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대만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의 ‘2025 비핵가원(非核家園)’ 정책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환경운동연합 탈핵운동가 출신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 2050 탄소중립위원회 초대 민간위원장에 내정된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은 과거 대만의 탈핵 진영과 정책교류를 해왔다.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문재인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정책’ 역시, 차이잉원 정부의 ‘2025년 재생에너지 20%’ 목표를 시점만 5년간 늘려 만든 것이다.

자연히 대만의 8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대만 탈원전 정책이 사실상 좌초되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탈원전 국민투표를 100일 앞두고 대만 내 여론은 팽팽히 갈린다. ‘대만민의(民意)기금회’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지난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대만 국민 102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전건설 반대가 44%로, 원전건설 찬성(43.5%)을 불과 0.5%포인트 정도 앞섰다. ‘모르겠다’ 등으로 답한 부동층도 12.5%나 됐다.

제4원전 재개되면 탈원전 사실상 좌초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서도 입장이 팽팽히 갈린다. 탈원전을 내걸고 2016년 집권한 민진당 지지층은 68.6%가 제4원전 건설 재개에 반대한 데 반해, 야당인 국민당 지지층은 66.7%가 건설 재개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국민당은 민진당의 ‘비핵가원’에 맞서 ‘이핵양록(以核養綠·핵으로 녹색을 키운다)’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데, 양대 정당의 원전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셈이다.

여당인 민진당은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을 앞세워 최초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직후부터 ‘제4원전’ 건설을 중단시키려는 시도를 부단히 해왔다. 그 결과 제4원전은 원전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행정원장(국무총리에 해당) 사퇴 등 정치적 파동을 겪으면서 건설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결국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원전에 대해 악화된 여론에 편승해 민진당 린이슝(林義雄) 전 주석이 단식 시위를 벌였고, 여기에 굴복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의 결정으로 제4원전 건설은 2015년부터 잠정중단된 상태다.

결국 이듬해인 2016년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탈원전’을 내걸고 집권하면서, 2018년 10월 제1원전인 진산(金山)원전 1·2호기가 영구정지됐다. 이후 차이잉원 총통이 2020년 연임에 성공하면서, 탈원전 정책이 폐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진산원전 1·2호기 영구정지 다음 달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2025년’ 조항이 삭제되면서 탈원전 정책이 폐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다시 나오고 있다. 특히 국민당은 오는 8월 국민투표를 ‘2022년 지방선거 전초전’으로 규정하고, 대규모 장외집회도 예고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어느 한쪽의 일방승리를 예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한 대만은 원전에 대한 공포감이 한국보다 크다. 1999년 대만 중부 난터우(南投)에서 발생한 ‘9·21대지진’ 때는 2400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국토 면적도 한국의 영남지방 정도에 불과해 원전 폐기물 처리를 놓고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때는 원전 폐기물을 북한에 수출해 황해도 평산의 한 폐광에 묻으려 한 적도 있다. 반면 전기요금 인상 우려와 함께 고품질의 안정적 전력수급이 필수적이라는 대만 산업계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

민진당 집권 후 세 차례 대정전

탈원전 투표를 100여일 앞둔 지난 5월 13일, 대만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해 이것이 국민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이날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오작동 사고가 발생해 대만 각지에서 순환정전을 실시했는데, 예고 없는 순환정전으로 피해를 입은 가구만 415만가구에 달했다. 2018년 1차 탈원전 국민투표 때도, 직전 해인 2017년 8월 15일 대만 전역에서 발생한 ‘대정전’ 사태가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었다. 당시 대만 전역 668만가구에서 불이 꺼졌다.

전력사용량이 급증하는 여름을 앞두고 대정전이 발생하자 국민당은 “민진당의 에너지 정책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총공세에 나섰다. 국민당 마잉주 전 총통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전 중,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는 글과 함께 자신의 사진을 내걸고 ‘제4원전 재개 국민투표 지지’와 같은 해시태그를 걸었다. 이에 차이잉원 총통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국 각지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해 국민들에게 사과를 표한다”며 “예비전력량은 10.01%로 발전상황은 정상적이었는데, 전력망 문제로 정전이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차이잉원 총통의 사과 표명 4일 만인 지난 5월 17일에 또다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122만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이에 국민당은 즉각 “차이잉원 총통 임기 내 이미 3번의 전국적인 정전사고가 발생했다”며 차이잉원 정부의 에너지정책 전면 재검토와 함께 경제부장(장관) 즉각 해임을 촉구했다. 결국 차이잉원 총통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단기간 내 2차례 정전이 발생한 데 대해 대부분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며 “나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또다시 사과를 표했다.

한편 대만 유력언론인 중국시보는 지난 5월 20일, ‘TPOC 대만의제연구센터’ 조사결과를 인용해, 2차례 대정전 후 제4원전 재개에 관한 언급이 인터넷상에서 전주 대비 639.2% 폭증했고, 건설 재개 찬성 언급이 51.5%로 반대(43.2%)를 눌렀다고 보도했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