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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0호] 2021.05.31

4년 만에 반대로 ‘분배보다 성장!’ 대선 빅이슈로 뜬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ylhong@chosun.com 2021-06-01 오후 4:58:49

▲ 지난 5월 22일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성장이냐 분배냐’는 경제정책과 관련해 가장 첨예한 논쟁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은 성장, 진보정당은 분배를 중시했다. 역대 대선에선 새 정부의 경제정책 프레임으로 ‘성장우선론’과 ‘분배우선론’을 놓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충돌했다. 내년 대선에서도 ‘성장 대(對) 분배’란 경제 이슈 패러다임이 다시 강하게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이 치러졌던 2017년 5월 엠브레인 조사에선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중 중점을 둬야 할 것’으로 소득분배(62.8%)가 경제성장(31.2%)의 두 배에 달했다. 대선 결과도 ‘분배와 복지정책이 곧 성장’이라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최근엔 정반대로 여론이 성장우선론에 쏠리고 있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5월 17〜19일 전국 유권자 1009명에게 ‘현 시점에서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어본 조사에 경제성장이 60%, 소득분배가 31%였다.
   
   이 조사에선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란 의견이 이념성향과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서 다수였다. 이념성향별로는 성장우선론이 보수층(72%)과 중도층(64%)에서 다수였을 뿐만 아니라 진보층에서도 경제성장(50%)이 소득분배(48%)를 근소하게 앞섰다. 소득 계층별로는 성장우선론이 상위 계층(63%), 중위 계층(59%), 하위 계층(61%) 등에서 모두 분배우선론보다 두 배가량에 달했다.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분배 정책이 가장 필요한 저소득층도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란 조사 결과였다.
   
   

   진보층서도 ‘성장’이 ‘분배’ 앞서
   
민심이 원하는 경제정책 방향이 4년 만에 급변한 것에 대해선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과 분배에 중점을 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로 경제적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말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60%)가 ‘잘하고 있다’(22%)보다 세 배가량이나 높았다. 지난 1월 칸타코리아 조사에선 현 정부가 공을 들여왔던 ‘소득불균형 문제’에 대해 ‘지난 4년 동안 나빠졌다’는 평가가 70%에 달했다.
   
   전문가들도 ‘혁신과 포용, 공정’을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분배 개선’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통계청장 출신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분배지표가 급격히 악화됐다”며 “2018년 1분기에는 양극화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 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인 7.53배를 기록했다”고 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서울시립대 윤창현 교수 등 각계 전문가 7명이 펴낸 ‘평등의 역습’이란 책에선 현 정부의 정책을 ‘좌파의 역주행’으로 요약했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에 급급했던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 등 분배 정책이 오히려 분배 기능을 악화시킨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평등과 분배 중시의 좌파 이념을 내세운 정권이 하층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정책 역주행을 계속한 결과 불평등의 확산이란 역설을 빚고 있다”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핵심적 정책 가치인 ‘성장과 분배’가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이슈로 부각된 것은 2012년 대선 때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한 2007년 대선까지는 성장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다. 국민 여론도 2007년 12월 대선 직전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성장 우선’(54.7%)이 ‘분배 우선’(29.8%)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이후 ‘선(先) 성장 후(後) 분배’ 담론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1년 5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분배 우선’(55.2%)이 ‘성장 우선’(38.5%)을 역전하며 4년 만에 여론이 달라졌다. 경제성장의 효과가 대기업과 일부 계층으로 몰리면서 국민 다수의 실질소득은 이에 못 미친다는 불만이 커졌고, 이에 따라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관측됐다. 당시 금융자본의 부(富)의 독점에 항의하는 미국의 반(反)월가 점령 시위와 유럽 시위 등도 영향이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자 정치권도 ‘성장 대결’에서 ‘분배 대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12년 8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는 “산업화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 민주화 시대의 분배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제3의 변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연말 대선에선 보수정당의 강점인 ‘성장’과 경제민주화를 통한 ‘양극화 해소’를 내세우며 성장·분배 이슈를 선점한 박 후보가 승리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도 양극화 해소에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여기에 탄핵 정국이 겹치면서 진보정당이 강점을 지닌 ‘분배우선론’으로 민심이 쏠렸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소득주도성장을 핵심 가치로 내놨다. 하지만 부자보다 서민이 성장의 혜택을 더 누리도록 하겠다며 성장을 분배의 틀 속에 집어넣은 정책은 의도와 달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여권 차기주자들도 ‘성장’ 언급 시작
   
그 결과 최근 각 여론조사에선 ‘성장우선론’이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11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52%였던 ‘성장우선론’은 최근 4개 회사 공동조사에서 60%로 상승했다. 올해 초까지는 기본소득(이재명)과 신복지(이낙연) 등 분배·복지 담론에 주력했던 여권 대선주자들도 최근 들어 성장 전략에 대한 언급이 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공정 성장’,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도 각각 ‘신경제 구상’과 ‘혁신 경제로의 전환’을 통한 성장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또 ‘말로만 성장’에 그치고 있다”며 “민주당 후보들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 병을 알아야 병을 고친다”고 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권은 4·7 재보선 참패 이후 이탈하고 있는 중도층을 겨냥해 성장 전략을 말하고 있지만, 대선 국면에선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현금 퍼주기 경쟁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이병일 엠브레인퍼블릭 대표는 “여론이 성장우선론에 쏠린 것에는 분배에 중점을 두었던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함께 초유의 저성장 늪으로 빠뜨린 코로나19도 영향을 줬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고 위기 극복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민심이 다시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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