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경기도지사)가 지난 7월 6일 서울 상암 MBC 방송센터에서 열린 합동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경기도지사)가 지난 7월 6일 서울 상암 MBC 방송센터에서 열린 합동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얼마 전 싸이월드가 몇 년 만에 서비스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반가움보다 덜컥 걱정이 앞섰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허세 가득한 사진,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성적 글귀, 너도나도 사랑과 우정을 말하는 낯부끄러운 방명록이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흑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싸이월드가 다시 세상에 공개됐을 때 그 민망함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와 동년배인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일 테다. 싸이월드가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소셜미디어(SNS)였던 시절이 바로, 우리 세대가 한창 ‘중2병’을 앓고 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중2병이란 만 14~16세에 겪는 MZ세대의 사춘기를 의미한다. 다만 중2병에는 ‘전통적’ 사춘기의 특징인 정서적 질풍노도 이외에 몇 가지 요소가 더 추가된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중2병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폭력적인 멘트를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본인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로 생각한다. △뭐든 부정적으로 보는 성향이 깊다. △스스로 큰 상처를 갖고 있다고 여긴다. △가족에게 막 대한다. △관심을 받고 싶어 무언가를 계속 과시하려 든다. 이와 같은 특징을 종합해서 중2병을 ‘과도한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영웅심리’ 정도로 바꾸어 정의해 볼 수 있겠다.

갑자기 웬 중2병 타령이냐 하면, 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중2병 증세가 뚜렷하게 관찰되기 때문이다. 여권의 유력 후보 중 하나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이야기다. 전 연령대에서 이 지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진보와 보수 전체를 아울러 그 이상의 강성 안티팬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연일 이재명 지사의 허무맹랑한 국정 철학과 비정한 언행에 대해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반(反)이재명 전선도 뚜렷해지고 있다. 진영은 달라도 이재명 지사에 대한 비호감의 이유는 비슷한데,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는 ‘공산주의자’라거나 막말과 욕설을 일삼는 비도덕적 정치인이라는 식이다. ‘이재명은 절대 안 돼’라는 기치로 여야가 대동단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재명 지사를 향한 공격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거나 발전하지는 않고 있다.

사실 이재명 지사의 비호감도는 그가 내세우는 정책이나 그의 인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도 이 지사보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정책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고, 더한 막말을 했거나 비위행위에 연루된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정치인들의 비호감도는 이재명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그 알 수 없는 비호감의 정체를 고민하던 찰나, 싸이월드 서비스를 재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인생 전반에서 가장 비호감이 심했던 중2병 시절의 나를 회고하며, 문득 이재명 지사가 떠올랐다. 그렇다. 이재명 지사를 향한 반감의 정체는 중2병이었던 것이다.

‘중2병 테스트’에 넣어보면

이재명 지사의 행보를 인터넷에 떠도는 ‘중2병 테스트’에 넣어보면 이 지사는 중2병 확진 판정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특히 자신이 불우한 성장과정을 극복한 사람으로서 남들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점, 마음만 먹으면 다 해낼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라 생각하며 폭력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는 모습들이 그렇다. 실제로 이재명 지사가 중2병이라는 징후도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이 지사는 줄곧 자신의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내세우며 자신이 특별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권력 행사는 잔인하게 하는 것’이라며 법치주의 이념을 흔들고, 쇠망치(오한마)를 들며 “부당한 기득권을 깨겠다”는 폭력적인 언행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아이들을 때려보겠다는 복수 감정’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

이재명 지사의 대통령 선언문의 핵심 문구인 ‘억강부약’도 그렇다. 강자를 억압하고, 약자를 돕겠다는 말이다. 영웅심리에 사로잡힌 사춘기 소년들도 흔히 강한 자에 맞서 싸우고 약자를 보살피는 로빈 후드(Robin Hood)가 되길 꿈꾼다. 그러나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설령 강자와 약자를 구분한다 하더라도 강자를 억압해서 약자들의 삶이 나아진다고 보장할 수 없으며, 약자라고 다 선량하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된다. 게다가 정치인이라고 하면 복잡계에 가까운 현실정치 상황에서 ‘억강부약’의 단순한 도식이 순순히 적용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정치인이 ‘억강부약’을 외친다면 그는 국민을 기만하고 있거나 아직 중2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억강부약’이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만화 주인공에게는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정치에 적용된다면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낳게 된다. 우선 ‘강자’를 정의하는 문제부터 시작한다. 강자는 대단히 모호한 개념이다. 부자일 수도 있고 고위공직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와 정치적 뜻을 달리하는 세력을 강자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강자를 정의하는 것은 철저히 위정자의 몫이다. 실제로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세력을 ‘우파’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박해했다. 공산당 당원들과 공산주의청년단은 “우파가 전 인구의 5%쯤 된다”는 마오쩌둥의 말에 따라 모든 조직에서 5%의 인원을 뽑아내 추방했다. 그 결과 55만여명이 우파로 낙인찍혀 탄압받았다. 또한 마오쩌둥은 토지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지주를 숙청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평범한 중농까지 수없이 숙청했다. 농민의 존재 양태는 복잡하기 때문에 중농과 지주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바로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에서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적폐’에 좌표를 찍어 정치적 뜻을 달리하는 세력에 대해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이재명 지사는 ‘강자’를 ‘억압’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영웅심리 사로잡힌 사춘기 소년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재명 지사의 생각도 몹시 위험하다. 철이 들수록 세상의 순리를 인정하고 따른다. 정부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제하고 경제 질서를 거슬러서 성공한 정책적 사례는 거의 찾기 어렵다. 최소한의 경제학적 상식이다. 되레 시장에 대한 무분별한 정부의 개입은 대부분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값 안정이라는 목적으로 수많은 규제와 정책들을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집값이 폭등한 사실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25번의 부동산 정책은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좌절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마침 이재명 지사의 이력을 찾아보니 그가 정치에 입문한 지는 14~15년 정도 된 것으로 확인된다. 만 14살이면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이재명 지사가 보이는 허무맹랑한 생각과 과도한 자신감은 그가 정치적 사춘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정치판에서 학교로 장소만 슬쩍 바꿔 보면, 이재명 지사의 말과 행동은 소위 중학교 ‘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2병이 중2 때 오는 것도 축복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때 사춘기를 겪고, 그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 다만 나는 이재명 지사가 정치적 사춘기를 잘 극복하고, 이번 대선이 그의 ‘흑역사’로 기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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