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1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1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초반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하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활기를 띠고 있다. ‘어대명(어차피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의 아성이 흔들리면서 결과를 예단하기 힘든 안개국면으로 들어섰다. 대세론은 깨지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면전환의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모두 이재명이 제공했다. 이른바 ‘바지 발언’은 치명적이었다. 팩트 체크로 끝날 문제가 태도 논란, 자질 시비로까지 비화되었다. 분노조절장애는 대통령 실격 사유로 충분하다. 그간 대표 상품으로 내세웠던 기본소득, 기본주택의 부실함은 이재명의 정책통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경기도 기본주택의 시범단지가 어디냐는 박용진의 질문에 대한 “잘 모르겠으니 당신이 찾아보라”는 이재명의 답변은 압권이었다. 정책적 ‘날탕’과 태도적 ‘불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야구에서 9회 말 역전극이 짜릿한 쾌감을 자아내듯이, 경선에서도 기존의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뻔한 결과가 아닐 수도 있겠네” 하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목도가 높아진다. 이재명 대세론의 ‘초반 휘청’은 민주당 경선의 흥행성을 높이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이 흐름을 탄 것인지 민주당은 지난 7월 5일(월)부터 11일(일)까지 이루어진 1차 국민선거인단 모집에서 70만명이 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기세를 몰아 민주당은 2차, 3차 모집을 통해 2017년의 214만명을 뛰어넘는 ‘250만명+α’의 참여로 국민경선을 흥행시키려 한다. 11차례의 전국 순회경선 일정도 잡혀 있다.

반면 4·7 재보선 압승과 이준석 돌풍으로 정권교체의 기대감에 고무되었던 국민의힘은 최근 들어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준석의 정제되지 않은 여가부, 통일부 폐지 주장은 대선 전략의 선후경중(先後輕重)을 도외시한 전형적인 긁어 부스럼 만들기였다. 덧셈 정치를 해야 할 때 뺄셈 정치를 한 셈이다.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해 놓고 100분 만에 번복했다는 논란 역시 내분을 자초하면서 화를 키웠다.

이러한 난맥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 재보선 승리와 토론 배틀 흥행 대박이라는 성취감에 젖어 웬만큼만 하면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과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난 재보선 승리는 ‘승자의 저주’로 귀결될 것이다.

여론의 흐름은 아직까지 야권에 유리하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여론보다 높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지난주 박근혜 탄핵국면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을 넘어섰다. 야권의 대선후보는 15명이 넘을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 취해 정권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간만의 승리와 성공이라는 정치적 효능감에 젖어 냉혹한 현실을 간과하는 안이한 태도다.

흔히 현 집권세력을 낡은 이념집단이라 묘사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표현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념집단의 성격보다 이권 카르텔의 속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586세력에 이념은 겉치장에 불과하다. 진정한 가치집단이었다면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을 통해 진화해 왔을 터인데, 아직도 해방공간의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은 해방군이라는 1980년대식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이념은 자신들의 탐욕스러운 이권추구 행위를 가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정치와 시민운동은 곧 ‘밥통’이다. 정치와 운동 말고는 먹고살 방편이 없는 생계형 정치인과 운동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권교체는 이들에게 밥통의 소멸을 의미한다. 자신의 밥그릇이 없어지는데 순순히 받아들일 ‘운동권 투사’가 몇이나 있을까. 더군다나 이들에게는 다년간 축적된 투쟁기술과 내로남불의 셀프 최면술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교체를 저지하고자 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선거의 계절은 음모와 공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요 며칠 공작정치의 음습한 기운이 여의도 정가를 뒤덮고 있다. MBC 기자와 PD는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의 논문 비위를 파헤치기 위해 경찰관을 사칭해 취재를 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기관이 이러한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현장 취재진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머니투데이의 의뢰로 매주 일요일 발표되어오던 PNR리서치의 ‘윤석열 1위’ 여론조사가 갑자기 중단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떠한 외부 압력이나 개입이 없었고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여론조사를 일시 중단한 것이라는 머니투데이의 해명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듯 야권 유력주자에 대한 전방위적 음해공작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들어와야 보호할 수 있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유일하게 권성동 의원이 여론조사 중단에 대해 “수사권, 조세징수권 등을 가진 권력에 의한 불법무도한 행위”라며 문제를 제기한 정도다.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진영의 맏형이자 큰집이다. 그런 주인의식을 갖고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누구보다 앞장서 실천해야 하는데, 당의 이익과 체면이라는 소리(小利)에 집착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5개월여 공석이던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구성될 방심위원으로는 친정권 언론 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검찰을 정권 방패막이로 만든 데 이어 방심위를 통해 방송도 장악하고 위협하겠다는데, 국민의힘은 강력한 저지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판의 생리는 정글과 같아서 한번 당하면 가차 없는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드루킹 댓글 조작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에서 확인되었듯이, 집권세력의 정치공작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부끄러움과는 거리가 먼 후흑(厚黑)의 대가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정권교체라는 대장정의 첫걸음은 여론지표상의 우위가 아니라 그 여정의 엄혹함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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