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남부내륙철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 선정 직후 경남 창원의 경남도청에 내걸린 대형 경축 현수막. ⓒphoto 뉴시스
2019년 1월 남부내륙철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 선정 직후 경남 창원의 경남도청에 내걸린 대형 경축 현수막. ⓒphoto 뉴시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7월 21일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을 상실하면서 ‘김경수 KTX’로 불리는 남부내륙철도의 운명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남부내륙철도는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제까지 172㎞를 단선철도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당선된 김경수 전 지사가 공약으로 내건 사업으로, 2019년 1월 소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로 불린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으로 선정됐다.

남부내륙철도는 총사업비만 약 4조7000억원으로, 2019년 당시 지역별로 선정된 총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예타면제사업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예타면제사업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1000억원) 사업보다도 사업규모가 1조6000억원이나 더 크다. 1966년 ‘김삼선(김천~삼천포)’이란 이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주재로 기공식까지 했다가 경제성 부족으로 취소된 사업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전 지사 취임 7개월 만에 이뤄낸 ‘기적’이었다.

‘남부내륙철’ 추진동력 상실 우려

하지만 남부내륙철도는 2019년 1월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예타면제사업 선정 발표 다음 날, 김경수 전 지사가 1심 판결로 법정구속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사업 진행이 더디기 그지없다. 사업구간만 김천~거제 간 172㎞로 정해졌을 뿐 구체적 노선과 정차역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 김경수 전 지사마저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을 상실하면서 “남부내륙철도의 추진동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도 경남도 일원에서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부내륙철도는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가 수행한 예비타당성조사의 경제성(B/C) 항목에서 0.72를 얻는 데 그쳐 이미 낙제점을 받은 사업이다. 사실 경제성보다는 지역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이라, 국토교통부나 국가철도공단(옛 한국철도시설공단) 역시 내심 소극적인 입장이다. 노선이 완공되면 열차를 투입해야 할 한국철도(코레일)마저 수익성을 염려할 정도다.

코로나19로 사업성이 더 악화됐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로 다중(多衆) 교통수단인 철도를 기피하는 경향이 확연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3억5270만명에 달했던 연간 철도 여객수송 인원은 2020년 9억6497만명으로 4억명 가까이 급감했다. 한국철도의 당기순손실은 2019년 853억원(적자)에서 2020년 1조2381억원으로 15배 가까이 불어났다. 손병석 한국철도 사장마저 지난 7월 2일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철도수요 급감과 김경수 전 지사 낙마와 같은 급격한 상황 변화는 현재 진행 중인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 수립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 남부내륙철도는 현재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 절차를 밟고 있다. 당초 노선확정 등을 위한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지난해 11월 나올 예정이었으나 노선과 정차역 선정으로 인한 갈등 끝에 이미 2차례 연기돼 오는 11월경에나 나올 예정이다.

이는 남부내륙철도와 함께 ‘예타면제사업’으로 선정된 ‘평택~오송 복복선화’ 사업이 지난 6월 30일 기본계획을 확정고시하며 속도를 내는 것과도 큰 차이다. 평택~오송 복복선화 사업은 경부고속선과 수도권고속선(수서~평택), 호남고속선이 한데 모이는 철도 병목지점의 선로용량을 확대하는 사업이다. 경부선, 호남선, 경전선, 전라선, 동해선은 물론 향후 신설된 수원발, 인천발KTX까지 선로용량 확대에 따른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어 국토부도 사업에 적극적이다.

선거 앞두고 ‘달빛내륙철’에도 밀려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관심이 ‘남부내륙철도’에서 ‘달빛내륙철도’로 옮겨가는 것도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달빛내륙철도는 대구(달구벌)와 광주(빛고을)를 연결하는 203㎞의 단선철도다. 총사업비는 4조850억원으로 지난해 국토부의 사전타당성조사 결과 경제성(B/C)이 0.483에 불과할 정도로 남부내륙철도(0.72)보다 의문시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와 같은 명분을 앞세워 지난 6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도 최종 반영됐다. 이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남부내륙철도와 달빛내륙철도의 우선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남부내륙철도는 지역 정치구도에 따라 노선 자체가 재검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남도청 소재지이자 인구 103만명으로 경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창원시는 지난해 4월 남부내륙철도 노선변경을 국토부에 정식 건의하기도 했다. 김천에서 진주를 거쳐 거제로 향하는 노선을, 김천에서 함안(군북)을 거쳐 거제로 가는 노선으로 바꿔달라는 요구였다. 과거 노무현 청와대에서 김경수 전 지사와 한솥밥을 먹었던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시장이 이끄는 창원시는 “합천~고성 구간을 직선화하면 노선을 약 10㎞ 단축할 수 있고 공사비도 2000억원가량 절감할 수 있다”며 노선변경을 주장했다.

창원시의 이 같은 주장에, 진주 등 경남 서부지역의 강한 반발로 남부내륙철도는 일단 당초 원안대로 진주를 거쳐 거제로 향하는 노선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하지만 남부내륙철도를 바라보는 창원·김해·밀양 등 경남 동부지역의 착잡한 시선은 여전하다. 투입할 수 있는 고속철 차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남부내륙철도 노선이 김천에서 가지치기하는 방식으로 갈라질 경우, 밀양·김해(진영)·창원으로 향하는 경전선KTX 증편이 어려워질 것이란 현실적인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경전선KTX 증편은 경남도의 최대 숙원사업 중 하나다.

경남 동부지역의 이 같은 우려는 현직 도지사 사퇴로 판이 커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표출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경남지사 하마평에 오르는 여야 후보군은 모두 인구가 많은 경남 동부지역 출신이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경남지사 후보로 거명되는 민홍철(김해갑)·김정호(김해을) 의원은 김해,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박완수(창원 의창)·윤한홍(창원 마산합포) 의원과 이주영 전 의원은 창원, 윤영석 의원(양산갑)은 양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민주당에서 차출 가능한 자원으로 꼽히는 허성무 창원시장도 창원 출신으로 노선변경을 요구한 당사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속한 김해(김해을)에서 국회의원을 했지만, 서부지역인 고성 출신으로 진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김경수 전 지사는 동부지역의 이 같은 요구를 중간자 입장에서 중재해오던 터였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창원 인구는 100만명이 넘고 진주 인구는 35만명으로 55만명의 김해보다도 적다”며 “남부내륙철도가 들어서면 창원지역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선변경 요구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언제든지 재부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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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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