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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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애 변호사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19년 7월 25일이었다.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날이자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두 사람은 몇몇 지인들과 함께 청와대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는 당연 화두였다. 지인들은 인사청문회에서 나올 법한 의혹들을 우려했다. 이런 지인들에게 조 전 장관이 건넨 답변은 의외였다고 한다. “합법 아닌 건 없습니다.”

권 변호사는 “공직 임명의 잣대를 상식과 공정이 아니라 합법과 불법 수준의 정도로 보는 말이었다”며 “돌이켜보면 무엇이 문제일지 알고 나름 합법적 장치들을 설치해놨기에 괜찮다고 본 것 같다”라고 평했다. “합법이니 문제없다”는 식의 해명은 비단 조 전 장관만이 아니었다. 이후 현 정부 인사들이 각종 논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언급됐다. 권 변호사의 물음표는 느낌표가 됐다.

권 변호사가 지난 7월 9일 출간한 ‘무법의 시간’을 집필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진보 진영이 더 이상 내부 자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정을 종용하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냉소와 회유였다. 그동안 잘 알려진 사례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부터 걸려온 압박성 전화다. 그가 책에 담거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진보 진영의 회유는 훨씬 구체적이고 달콤했다. “흘려보내라고. 너는 마음만 먹으면 비례대표든 뭐든 원하는 자리는 다 얻을 수 있어. 그러니까 3개월만 침묵하고 있어.” 연세대 운동권 대부로 불리는 77학번 선배가 권 변호사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건넨 말이었다.

권경애 변호사는 참여연대, 민변 출신으로 현 정권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검경수사권 조정 태스크포스(TF), 경찰청 수사정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번에 출간한 ‘무법의 시간’은 권 변호사가 단독 집필한 책이다. 지난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경율 회계사 등 4명과 함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공동 집필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 다시 책을 냈다. 이 책의 가제는 ‘독재의 풍경’이었다. 출간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었다. 그가 조국 전 장관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김남국 당시 변호사 등 다수의 여권 인사들과 교류하며 보고 들은 2019~2020년의 정국은 실제 ‘독재’의 단면과도 같았다고 한다. 지난 7월 20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권 변호사는 “지금의 정권은 ‘노무현 트라우마’를 원료 삼아 독일 나치당이 보인 파시즘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 김영삼 정부 등 역대 정권에선 나타나지 않던 집권 행태”라고 일갈했다.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시작한 선동정치

권 변호사가 ‘무법의 시간’ 집필을 결심한 건 지난해 8월이다. 당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보며 검찰개혁은 물론 사법개혁까지 정부 입맛대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좀 놀랐다. 내용을 보면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고 180석의 거대 여당이 위원장과 위원회 구성원을 결정하는 식이다.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지는 구조다. 위원회가 법관 인사까지 단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명백한 사법부 장악이 될 수 있다. 집권 여당의 관할하에 두겠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국가조직을 이관, 강탈하고 장악하고자 하는 흐름 중 하나로 보였다.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나 검찰·경찰 수사심의위원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등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권 변호사는 책에서 현 정권의 행태가 파시즘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앞서 언급한 사법행정위원회 등의 조직 신설은, 과거 독일 나치당이 체제 강화를 위해 게슈타포(정치경찰) 등의 동형 조직들을 구성한 것과도 같다고 본다. 이들 조직은 기존 국가 기준에 따라 임명·승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당내 지배자나 당 활동가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 권 변호사의 해석이다.

“파시즘적 특성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문 대통령의 저서 ‘운명’이나 ‘검찰을 생각한다’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적폐세력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검찰과 언론의 카르텔 때문에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어준씨는 각자의 채널을 통해 선동가 역할을 하며 적폐로 규정한 것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지지자들은 열광하고 스스로 전사를 자처한다. 지난 서초동 집회가 그랬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나 공직자 부정부패에 집착하는 언론의 본래 속성은 거론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보다 더 과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도 간과되는 점 중 하나다.”

권 변호사는 “결국 나치당의 당수 히틀러가 공산주의자,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적개심을 정치 프로그램화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현 정부는 노무현 타살자에 대한 적개심을 적폐청산과 검찰·언론 개혁이라는 정치개혁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모습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보기 어려웠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권 변호사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활용해 공작을 벌인 적은 있어도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끄는 선동은 없었다. 굉장히 새로운 행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것이 주사파 운동권 정권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도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다수 진입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칙을 벗어나진 않았다. 현 정권의 성격을 특징 짓는 주된 기반은 나꼼수와 유시민 이사장을 통해 정치를 배운 40대다. 운동권 문화와는 또 다르다”라고 덧붙였다.

권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속했던 민변과 참여연대 등은 현 정권의 정치 자산으로 포섭됐고, 이들이 갖고 있던 권력 감시 등 시민사회 본연의 기능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권 변호사는 조국 사태 이후인 2020년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모두 탈퇴했다. “참여정부 당시 시민사회는 정책적으로 정부와 반목이 굉장히 많았다. 토론이 보장된 사회였던 거다. 지금은 그런 게 다 전멸했다. 촛불집회 이후 모두가 하나로 결탁하면서 진영논리가 강해진 데 따른 결과다. 특정인에 대한 지지 여부를 기준으로 구좌파, 신좌파라는 말도 안 되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조국 비판은 곧 검찰개혁 쿠데타

권 변호사는 청와대가 조국 전 장관을 임명하기까지의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당시 청와대가 조 전 장관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 전 장관 임명 비판을)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도전이자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로 본 것 아닌가 싶다. 검찰개혁에 대항한 검찰의 쿠데타라는 구조를 짜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조 전 장관 임명 전날 청와대에 전화해 조국을 임명해선 안 된다고 소리 질렀다고 하는데, 이를 들은 민정수석실은 적정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권 변호사의 시각이다. 그는 “민정수석실에서 다 판단했어야 했다. 내가 보기엔 윤 전 총장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 (문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이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이후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단언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고 본다. “너무 많은 개입이 있었다. 적폐 수사 당시엔 문 대통령 의중에 따라 검찰의 특수수사부를 보강했다가 수사 칼날이 조 전 장관을 비롯해 자신들을 향하니 3개 지검 특수부를 반부패부로 개편하는 등 대폭 축소했다. 배성범 전 지검장 등 조 전 장관 수사를 책임졌던 인사는 모두 좌천되고 탈법적 수사 관행을 보였던 이종근·박은정·정진웅·신성식 등은 모두 승진했다. 정권 수사하지 말라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권 변호사는 현 정부의 검찰개혁안에도 정치적 논리가 녹아들었다고 본다. 권 변호사는 검찰의 특수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형 사건에 대한 수사·기소·공판의 유기적 연결, 경찰 조직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검찰도 다루기 어려운데 검찰의 수사지휘권 유지로 경찰까지 반발하면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 어려울 거라 봤다”며 “결과적으로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내용의 정치적 복안을 관철시켰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공수처와 중수청 설립·운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공수처는 정부 입맛에 따른 인사로 채워질 수 있거니와 필요로 하는 사건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 권력의 속성을 고려했을 때 악용될 여지가 크다. 중수청의 경우 (윤 전 총장이 지난 3월 밝혔던) ‘검수완박은 부패완박이다’라는 말은 적확한 워딩이었다고 본다.”

더 이상 민주적이지 못한 ‘민주당’

권 변호사는 이 모든 문제점에 비춰봤을 때 현 집권 여당엔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은 더 이상 민주적 정당이 아니다. 자체 개혁, 환골탈태의 능력이 사장된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친문과 다른 노선의 사람들도 이미 파시즘적인 정당 문화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기존의 계파가 다 사라지고 이준석 대표와 윤희숙 의원 등이 자유민주주의적인 보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지만, 사회 구성원을 보호해야 하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국가의 책무, 사회권적 기본권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며 “윤 전 총장에게 그런 기대를 걸어보긴 했지만 (주 120시간 근무 발언을 보고는)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윤 전 총장에 대해 “공부해서 바뀔 수 있는 영역일까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평했다.

권 변호사는 지금과 같은 정권 행태에 기죽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문제 제기하고 떠드는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 하지 않았나. 합리적이고 이성적 논증 토론이 가능한 사회가 되도록 문제의식부터 가질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국가 기능을 와해시키면서까지 과거사 판결을 뒤집으려는 여권의 행태, 윤 전 총장의 직무집행정지 사건까지 재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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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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