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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670호] 2021.08.09

달라진 ‘젠더 이슈’ 대선주자들의 고민

곽승한  기자 seunghan@chosun.com 2021-08-09 오후 2:02:14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8월 1일 서울 여의도 북카페 하우스에서 열린 청년 정책 토론회 ‘상상23 오픈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싫어한다”고 밝혀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문 대통령 외에도 대부분의 후보가 앞다퉈 여성을 위한 정책을 내놨다. 각 후보 캠프에선 내각 여성 비율 50%, 여성 고용 우수기업에 대한 포상과 조세감면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돼지발정제 논란을 겪으며 ‘여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여성 국무위원·국회의원·고위공직자·공공기관 임원 30% 구성 목표” 공약을 걸었다. 당시만 해도 정치권의 분위기는 ‘젠더 이슈=여성 이슈’와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젠더 이슈=여성 이슈’ 더 이상 아니다
   
   몇 년 사이 정치권의 젠더 이슈를 둘러싼 양상에는 다소 변화가 생겼다. 이른바 ‘반(反)페미’ ‘이대남 현상’으로 일컬어지는 2030 남성들의 여론 응집력이 과거에 비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2030 남성·여성 사이 여론의 간극을 두고 정치권의 고심도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둘러싼 논란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안산 선수가 ‘웅앵웅’ ‘얼레벌레’ 등 여초 사이트에서 주로 쓴다는 단어를 사용했다며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의혹이 남초 사이트를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무리한 의혹 제기였지만, 남초 사이트에선 “남자를 대상으로는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일들도 많았다”며 ‘미러링’을 명분으로 삼았다.
   
   온라인상의 소모적인 갈등에 불과했던 이 논란은 정치권이 가담하면서 더 커졌다.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7월 30일 페이스북에 “논란의 시작은 허구였으나, 이후 안 선수가 남혐 단어로 지목된 여러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실재하는 갈등으로 변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양 대변인의 글에서는 ‘남혐 단어’를 쓴다면 이런 식의 공격도 괜찮다는 식의 뉘앙스가 풍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며 “매카시즘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글의 핵심은 애초에 잘못이 안산 선수에게 있었다는 거고, 여혐 공격한 남자들의 진의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변호해주는 건데 이게 공당의 대변인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 대변인은 다시 “남혐 용어로 ‘지목된’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 것이지, 진짜 혐오 단어라고 단정짓지 않았다”면서 “격화된 젠더 갈등이 오염시킨 단어들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며칠간 논박을 이어갔다.
   
   안산을 둘러싼 논란의 시작은 그간 온라인상에서 수시로 벌어져온 ‘남초 커뮤니티 대 여초 커뮤니티’ 갈등과 다름없었다. 차이는 이 논란에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2030 남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대변된다는 점에 있다.
   
   
   응집하는 2030 남성을 어쩌나
   
   과거보다 훨씬 더 응집하고 있는 2030 남성 여론의 힘을 보여준 것은 지난 4·7재보궐선거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4·7재보궐선거 이후 결과를 두고 “대선에서도 젠더 이슈를 선점하는 후보가 선택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20대 남성 72.5%의 득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대표는 그 원인을 ‘젠더 이슈’로 꼽았다.
   
   반면 당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부터 20대 여성 중 15.1%가 여야 1당이 아닌 ‘기타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이를 두고 “민주당이 페미니스트들을 너무 키워놓은 탓”이라고 분석했다. 15%의 표심이 대체로 ‘페미니스트 후보’로 나섰던 신지예·신지혜 후보에게 쏠린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대표는 “20대 여성 15%는 강한 페미니스트 성향이 된 것”이라며 “원래는 민주당이 가져갈 수 있는 표들인데, ‘피해호소인’ 논란 등을 일으킨 탓에 페미니스트들이 민주당을 찍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60대 이상의 기존 국민의힘 지지층과 2030 남성의 신규 진입을 앞세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골골대던 보수정당의 역전을 꾀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30 남성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역차별과 민주당의 ‘성별 갈라치기’ 정책을 국민의힘이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대남 현상’이라 불리는 20대 남성들의 보수화된 관점도 국민의힘 지지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도 한다.
   
   다만 이러한 관점이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여성 지지율은 24%로, 민주당(39%)에 15%포인트 뒤처졌다. 반면 남성 지지율은 국민의힘 32%, 민주당 32%로 같았다. 이 여론조사대로라면 2030 남성이 국민의힘을 상대적으로 더 지지한다는 근거가 없는 셈이다.
   
   지난 8월 2일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도 정서적으로 막는다는 얘기도 있다”는 발언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윤 전 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 모임인 ‘명불허전 보수다’ 초청 강연에서 저출생 문제를 지적하면서 “얼마 전에 무슨 글을 봤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많이 한다’ 이런 얘기도 있더라”고 했다.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사이 갈등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남녀 간 연애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러자 여권에선 “페미니즘이 저출생 원인이라는 것이냐”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공세에 나섰다. 이날 윤 전 총장의 발언을 살펴보면, 그가 저출생의 원인 중 하나로 곧장 페미니즘을 꼽은 것은 아니었다. 페미니즘의 ‘정치적 악용’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남녀 간 갈등이 격화된 상황을 지적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여권의 비판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자세하게 예시를 듣다 보니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조심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결과적으로 젠더 갈등에 대한 윤 전 총장의 부족한 이해도만 더 부각시켰을 뿐이었다.
   
   젠더 이슈를 둘러싼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고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선거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선언, 여성 우대 정책 등을 내세웠다간 자칫 신규 지지층인 2030 남성들의 표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대선 예비후보 캠프 관계자는 “과거처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젠더 정책에 접근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다들 갖고 있다. 어떻게 하면 2030 남성 지지세의 바람을 이어가면서도 젊은 여성들이 싫어할 ‘꼰대’ 이미지를 피할 수 있을지 고민되는 지점”이라며 “젊은 남성층과 여성층 표심 사이에서 사실상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이 ‘가짜 페미니스트’였다는 것을 알리는 데 주력해야지,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전략”이라며 “일자리와 부동산 등 남녀 모두에게 급선무인 이슈부터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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