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지난 8월 27일 충북혁신도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초기 정착 지원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하는 동안 한 직원이 뒤쪽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photo 뉴시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지난 8월 27일 충북혁신도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초기 정착 지원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하는 동안 한 직원이 뒤쪽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photo 뉴시스

많은 비가 내리던 충북 진천에서 한 젊은 사내가 정장을 입은 채로 젖은 도로에 무릎을 꿇었다. 추켜든 양손에는 우산이 높이 들려 있었고, 그 우산 안에는 방역복을 입은 법무부 차관이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연설이 10분 넘게 이어지는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았다. 사내는 혹시나 방송 카메라에 잡힐까, 도로에 무릎을 대고 차관 뒤에서 차관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 올렸다. 그 끔찍한 장면은 언론사의 카메라에 담겼다.

이 에피소드는 지난 8월 27일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입소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에 대해 지원방안을 브리핑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일단 오랜 비행으로 심신이 고단했을 특별입국자들을 굳이 비 오는 도로 위에 세우고 브리핑을 해야 했을까 하는 문제점은 차치하자. 특별입국자의 노고를 격려하는 행사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비가 오는 날 직원의 무릎까지 꿇려가며 두 손으로 우산을 들어 올린 채 야외 브리핑을 강행할 명분은 아무리 헤아려도 떠오르지 않는다.

‘황제 의전’에서 떠올린 권위주의 정권

당연히 이 ‘황제 의전’이 담긴 사진을 본 모든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차관이 입은 노란 민방위복과 직원이 입은 검은색의 양복이 뚜렷한 보색 대비를 이루면서, 그 둘의 신분이 더 강하게 대비되는 듯했다. 사진의 잔상은 오래 남았고 그 충격도 오래갔다. 사진이 공개된 이후 각종 포털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해당 사진으로 도배가 됐다. 글마다 기사마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고 저마다의 분노는 과격하게 표현되었다. 메시지도 많이 왔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조롱과 환멸이 주된 내용이었다.

다만 젊은 세대가 받은 충격이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분노와 법무부 직원에 대한 동병상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기성세대가 느끼는 충격에는 다른 뉘앙스가 있었다. 법무부 차관의 과잉 의전은 기성세대에 어떤 트라우마를 떠오르게 한 것 같았다. 이들의 반응에는 빼놓지 않고 ‘박정희 때’ ‘전두환 때’라는 말이 등장한다. 최근 방송에서 60대 초반의 한 국회의원도 같은 말을 했다. “전두환 때도 아니고 박정희 때도 아닌데, 요즘 세상에 저런 짓을 하느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이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군부정권을 겪은 지금의 50대 이상의 세대는 당시의 엄혹함을 피부로 기억하고 있다. 그 시절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자에 대한 과잉 의전은 일상이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이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국가 행사와 국가원수에 대한 의전은 더욱 호화롭게 과장되는 경향을 보였다. 민주주의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이념임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자유와 민주를 탄압한다는 것은 권력 스스로가 그 정당성을 없애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유일한 원천이 ‘국민’일진데, 그 ‘국민’을 피지배자로 전락시키는 순간 권력의 당위나 존립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권력의 원천으로서의 ‘국민’이 사라진 공간에는 민주주의도 정당한 권력도 없다.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만들어진’ 권위다. 그리고 그것은 과장된 의전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군부정권이나 세습정권과 같이 권력을 찬탈한 사람들의 취임식이 더 웅장하다. 군부정권이나 세습정권이 독재로 이어지는 경우 국가 행사나 권력자에 대한 의전은 더욱 강화된다. ‘보여지는 것’의 호화로움과 민주주의 발전은 반비례 관계라는 말이다. 권력이 ‘보여지는 것’으로써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장국가’라 불리는 북한의 사례나, ‘세리머니’로 세계를 압도했던 나치독일이 그러했다. ‘졸부’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명품으로 화려하게 겉치레를 하고, 말은 청산유수라도 거짓말만 일삼는 사기꾼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도 의전이나 의식이 실질을 압도하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 위기를 실감해야 한다. 의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의전은 국가 간의 예절이며 통치자에 대한 존중이다. 그러나 그것이 필요한 수준에서 그쳐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번 법무부 차관의 우산 ‘황제 의전’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서도 위기신호를 감지하게 된다. 몰랐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법무부 차관은 반드시 부당함을 느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받들린 우산 아래서 10분 넘게 태연히 브리핑을 했다는 것은, 강 차관에게는 그 정도의 의전이 그전에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황제 의전’과 ‘쇼통’

비단 법무부 장관의 ‘황제 의전’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겉모습’에 너무 신경 쓰는 기조를 보여왔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쇼통’을 자처하며 의전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굵직한 청와대 행사들을 주도했던 의전비서관 탁현민씨는 요직에서 문재인 정부와 늘 함께했다. 여러 논란으로 사퇴를 결심한 탁현민씨의 사퇴를 청와대가 만류하거나, 사퇴한 탁씨를 다시 의전비서관으로 복귀시킨 것만 봐도 문재인 대통령이 ‘의전’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는지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이룩한 성과가 무엇이냐 물으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청년들의 실업률은 역대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집값이 폭등하여 신혼부부들이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역대 모든 정부가 크고 작게 노력했던 공적연금 개혁 문제에 있어서도 방관하고 있다. 국가부채는 1000조원이 넘었으며, 코로나19 방역방침으로 자영업자가 죽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 어떤 일이 잘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반면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인상적인 행사를 꼽아보라면 굉장히 많다. ‘6·25전쟁 참전용사 유해 송환 행사’ ‘국민과의 대화’, ‘공공임대아파트 방문’ 행사 등 기억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행사의 목적은 철저하게 문재인 대통령 주인공 만들기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통령에 밀려 참전용사는 조연이 되었다. ‘국민’과의 대화임에도 패널과 짜고 쳤다거나, LH 공공임대아파트 방문 때는 오직 대통령 방문을 위해 4억원 이상의 돈을 쓴 것 등이 밝혀졌다. 국민을 위해 실용적으로 국가를 운영해가는 것보다 ‘만들어진’ 권위로서 권력을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이 큰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과잉 의전은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을 쥔 자들은 의전에 취했고 그것은 예외 없이 국정을 손상시켰다. 다만 이번 ‘황제 의전’ 논란에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전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은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자임하며 출범했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논란에 묵묵부답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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