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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6호]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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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청년 유감]‘고발사주’와 ‘제보사주’ 사이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2021-09-24 오후 1:55:49

▲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9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공수처의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 관련 긴급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소위 ‘고발사주’ 의혹으로 여의도가 한동안 달아올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때문에 추석을 지나며 묻힌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사건은 당분간 대선판을 흔드는 주요 이슈로 전개될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21대 총선 기간인 지난해 4월로 돌아간다. 당시 대검찰청의 수사정보정책관인 손준성 검사가 지난해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의 국회의원 후보였던 김웅에게 여권 인사 11명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하였으며 이후 김웅 후보가 4월 3일, 4월 8일 양일에 걸쳐 당시 미래통합당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인 조성은씨에게 해당 고발장을 전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조성은씨는 인터넷 언론매체인 뉴스버스에 해당 내용을 ‘공익제보’ 했다. 이것이 야당과 검찰이 유착되어 여권 인사들을 공격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에 김웅 의원은 며칠 뒤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였지만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 당시의 검찰총장이 지금 국민의힘 유력 대선후보인 윤석열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공익제보자가 누구냐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대선판에 영향을 주는 사안인 만큼 제보자와 증거에 대한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조성은씨가 유력한 공익제보자로 지목되자 처음에는 이를 부인하며 애매한 태도를 보이다가 논란이 커지자 결국 자신이 공익제보자임을 시인했다. 그러다가 소위 ‘고발사주’ 의혹에 관한 뉴스버스의 보도 시점 이전에 조성은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났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김웅 의원에게 전달받은 고발장과 관련하여 국정원장이 조성은씨를 통해 해당 내용을 언론사에 제보할 것을 ‘사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성은씨가 박지원 원장을 만난 날이 지난 8월 11일인데, 조성은씨는 바로 전날인 8월 10일 밤 10시에 김웅 의원에게 전달받은 100여건의 자료를 다운로드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공익제보자 선언 이후 각종 방송사와 언론사에 출연하던 조성은씨는 설상가상으로 SBS의 인터뷰에서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된 뉴스버스 보도 날짜에 대해 “우리 원장님과 제가 원했던 날짜가 아니다”라는 식의 ‘실언’까지 하며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제 불덩이는 두 개가 됐다. 야권에서 벌어진 소위 ‘고발사주’ 의혹과, 여권에서 벌어진 ‘제보사주’ 의혹이다. 둘 다 대단히 엄중한 사안이다. 전자는 소위 ‘검야 유착’이라는 면에서 삼권분립을 위협할 소지가 다분하다. 얼마든지 국기문란으로도 비칠 수 있는 문제다. 후자는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국정원장이 국내 정치에 개입해 정치를 혼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박지원 국정원장이 되레 “호랑이의 꼬리를 밟지 말라”며 윤석열 후보를 위협하고 있어서 문제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권위주의 시절 공공연하게 야당 정치인을 탄압했던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놀라운 것은 박지원 국정원장이 권위주의 정권 시절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한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한 것이 바로 지난 7월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두 의혹 모두 아직 사실로서 단정하기에는 그 증거가 부족하다. 압수수색을 동반한 고강도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단서는 없는 실정이다. 여야는 부실한 증거에 기초하여 상상력을 더해 정치적 공방을 이어갈 뿐이다.
   
   사실 선거 과정에서 불분명한 의혹을 근거로 한 프레임 전쟁을 벌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다만 드러난 사실이 거의 없는 만큼, 향후 공수처의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위를 신속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그리고 수사를 통해 드러난 진실에 따라 각 당은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될 뿐이다. 이미 윤석열 전 총장은 이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된 고발장에 피의자로 입건되었으며, 김웅 의원과 손준성 검사에 대한 공수처의 압수수색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공수처가 김웅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발견되어 야당이 이를 지적하자 잠시 수색이 중단된 적이 있었지만, 김웅 의원 본인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오히려 조속한 수사를 통해 사건을 규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은 소위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여당의 공격에 대해서 부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의 태도는 몹시 이상하다. 여야 모두가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각각 의혹을 규명하면 될 텐데 민주당은 자꾸 사건의 ‘본질’을 강변한다. 송영길 대표는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관련된 것으로 보여진 국기 문란 공작 사건의 본질을 가리기 위한 물타기 공세에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박범계·추미애 전·현직 법무부 장관도 그들이 ‘본질’을 규정하면서 야당을 공격하고 나섰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고발사주’ 의혹만이 이 사건의 본질이고 ‘제보사주’를 규명하라는 야당의 공격을 ‘물타기’라며 호도하는 민주당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본질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도 ‘내로남불’을 하고 있는 격이다.
   
   
   본질을 정하는 일도 ‘내로남불’?
   
   민주당이 본질을 운운하며 정치적 불리함을 덮으려 했던 것은 조국 사태 때에도 비슷했다. 당시 조국 일가의 비위 행적을 수사하는 검찰에 대해 민주당은 조국 사태의 본질을 ‘검찰 권력 남용’으로 정의했다. 그러자 조국 일가는 무고한 피해자로 변신했고, 검찰은 구태의 상징이자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권익위 조사에서 부친의 농지 투기 의혹이 드러난 윤희숙 의원이 이에 책임을 진다며 곧장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자, 대선후보인 이재명 지사를 비롯한 여러 민주당 인사들은 입을 모아 “과잉 정치 액션으로 본질을 흐린다”며 맹폭을 퍼부었다.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상처나게 한 민주당 정치인들이 아무런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정치인의 언책(言責)을 보여준 윤희숙 의원의 결단은 민주당의 ‘본질’에 해당되지 않았다.
   
   권력이 제멋대로 정의한 ‘본질’에 대해서 우리가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학자 스티븐 루크스는 권력을 3개의 차원으로 구분하면서, 그중 3차원적 권력이 가장 부드럽고 세련된 권력으로서 우리의 의사를 통제한다고 주장한다. 3차원적 권력은 권력이 자의적으로 정의한 ‘본질’을 제외하고 나머지 정치적 쟁점들을 정치로부터 배제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본질을 이야기하며 사안을 정리하려고 시도할 때, 그것은 정말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기보다 정치적 셈법을 통해 다른 쟁점들을 무력화시키려는 수단은 아닌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조성은씨가 던진 떡밥에 놀아나고 있다. 민주당의 ‘본질’ 타령으로 정치의 진짜 본질인 민생이 현안에서 사라졌다. 국민의힘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얼마 전 월세와 직원들의 월급을 감당하지 못한 어느 사장님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자신이 살던 원룸을 정리해 직원들의 월급을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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