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을 찾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박형준 부산시장(왼쪽). ⓒphoto 뉴시스
지난 7월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을 찾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박형준 부산시장(왼쪽). ⓒphoto 뉴시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국민의힘 내에서 가덕도신공항 이슈가 재점화됐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9월 23일 가덕도신공항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다. 최 전 원장은 ‘표가 떨어지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겠다’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보고서는 계획의 전면 백지화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니고 가덕도로 변경하라는 결론은 더더욱 아니다”라며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김해신공항 안을 철회하고 가덕도로 신공항 입지를 선정, 가덕도신공항 특별법까지 만들어 버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재형, 가덕도신공항 반대 파문

지난 9월 14일 경선캠프 전격 해체를 선언한 최재형 전 원장의 가덕도신공항 반대의 후폭풍은 예상보다 크다. 최재형 지지를 선언했던 국민의힘 내 부산지역 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소위 ‘부산파’들이 일제히 공개반발하고 나서면서다.

특히 최재형 전 원장의 정치적 멘토를 자처하며 캠프 명예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최재형 후보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철회한다’는 입장문을 내고, “가덕도신공항과 관련한 후보의 발언은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라며 “최재형 후보의 발언은 협소한 수도권 일극주의에 매몰된 국가 미래에 대한 낮은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혹평했다. 정치 신인인 최재형 캠프의 한 축을 이뤘던 것은 정의화 전 의장을 정점으로 한 부산라인이었다. 정 전 의장의 최측근인 이수원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 등이 캠프에 관여해왔는데, 캠프 해체에 이어 가덕도신공항 문제까지 불거지며 완전 결별수순을 밟은 것이다.

최 전 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김미애 의원(초선·부산 해운대구을)도 ‘가덕신공항 전면 재검토 주장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리고, “최재형 후보를 지지하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왔던 입장이지만, 재검토 주장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심각한 우려와 실망을 표하는 바이며, 평면적 논의에서 벗어나 재검토 주장 철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국민의힘 안)을 대표발의했던 박수영 의원(초선·부산 남구갑)은 캠프 정책총괄본부장을 맡았다가 일찌감치 캠프에서 나왔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여직원 성(性)추행으로 초래된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국민의힘 부산지역 의원들 주도로 통과시킨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내년 3월 대선에서 재점화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특히 가덕도신공항을 둘러싸고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터라, 국민의힘의 양대 지지기반인 소위 TK와 PK를 분열시키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 결국 이런 관측이 내년 3월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국민의힘 내 경선 과정에서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각 캠프의 입장도 후보들의 정치적 유불리와 캠프 내 지역적 역학구도에 따라서 조금씩 엇갈린다.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로 야권 후보적합도 1위로 올라선 홍준표 의원은 가덕도신공항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홍준표 의원은 과거 경남지사 시절만 해도 가덕도신공항을 “물구덩이보다 맨땅이 낫다”고 혹평하면서 경남도 관내에 들어서는 ‘밀양신공항’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위 ‘4대 관문공항론’을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인천공항을 필두로 가덕도신공항, 대구경북신공항, 무안공항을 소위 ‘4대 관문공항’으로 육성하자는 주장이다. 홍 의원은 심지어 가덕도신공항은 ‘김영삼공항’, 대구경북신공항은 ‘박정희공항’, 무안공항은 ‘김대중공항’으로 바꾸자며 옛 거물 정치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제안마저 던진 상태다.

홍준표, 4대 관문공항론

당초 단일 거점공항 위치를 두고 국제용역까지 의뢰했던 영남권에 두 개의 관문공항을 두자는 제안은 국민의힘 내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정치적 성격이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제안을 던진 홍준표 의원은 지난 9월 1일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을 찾았고, 9월 12일에는 이철우 경북지사와 함께 대구경북신공항 예정지인 경북 군위군 소보면을 연이어 방문했다. 홍 의원의 이 같은 입장은 자신의 정치적 거점이 영남권을 아우른다는 점과 캠프 선대위원장을 가덕도신공항 찬성파인 조경태 의원(5선·부산 사하구을)이 맡고 있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의원과 야권 후보적합도 1위 자리를 다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가덕도신공항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대권도전 선언 직후 지난 7월 부산을 처음 찾았을 때도, 가덕도 대신 북항 재개발현장을 찾는 데 그쳤다. 윤석열 캠프의 요직을 장제원(전 종합상황실장), 안병길(전 홍보본부장), 김희곤(부산지역 선대위원장), 박민식(기획실장), 김희정(학부모대책 특별위원장) 등 부산지역 전·현직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의외의 행보였다.

이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자칫 경선 전 가덕도신공항 지지의사를 밝혔다가 대구·경북과 수도권에서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김해신공항 결정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 있었던 이석준 전 실장이 윤석열 캠프 정책을 총괄하고, 가덕도신공항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윤한홍 의원(재선·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이 상황실 총괄부실장으로 있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양강(兩强) 구도를 형성한 홍준표·윤석열 후보를 쫓는 입장인 유승민 전 의원 역시 가덕도신공항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8월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영남권에 인천공항 못지않은 제2허브공항이 필요하다는 데 오래전부터 동의했다”면서도 “가덕도신공항과 김해공항 둘 다 어정쩡하게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김해공항 폐쇄를 전제로 한 ‘조건부 찬성’ 입장을 내걸었다. 유 전 의원 역시 부산 방문 때 가덕도를 별도로 방문하지는 않았다. 유승민 캠프에는 국토해양부 2차관 출신으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제정 때 반대한 김희국 의원(재선·경북 군위의성청송영덕)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핵심으로 하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지난 9월 7일에는 하위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토부는 지난 5월 가덕도신공항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했는데, 그 결과는 대선이 있는 내년 3월경 나올 예정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주도한 민주당은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을 또다시 꽃놀이패로 쓸 것”이라며 “국민의힘 후보들이 모두 반문(反文) 대표를 자처한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주도한 가덕도신공항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고 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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