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9월 14일 100분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9월 14일 100분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세론’은 굳건하다. 지난 9월 29일부터 대장동 개발사업 관계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이재명 지사 책임론이 부각됐지만, 이 시기에 이뤄진 더불어민주당 국민·일반당원 2차 선거인단 투표(2차 슈퍼위크)는 또다시 이 지사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 지사는 지난 10월 3일 결과가 공개된 2차 슈퍼위크에서 17만2237표로 득표율 58.17%를 기록하며 이낙연 전 대표(33.48%)를 24%포인트 이상 앞질렀다. 1차 슈퍼위크 당시의 19%포인트보다 더 큰 격차였다.

전체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여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대장동 의혹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9월 2주 차 이 지사 지지율은 27.0%를 기록했다가 9월 5주 차에 27.6%로 되레 올랐다. 10월 1~2일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공정’이 실시한 정례조사에선 이 지사 지지율이 29.1%까지 뛰었다. 전주 대비 4.8%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대장동 의혹이 이 지사에게 변수는 맞지만 당장의 선거 구도를 뒤흔들 만큼의 치명적인 리스크로 작용하진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재명 지지 요인에 도덕성 부재

캠프 안팎에선 이런 추이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이 지사가 일련의 의혹에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증거가 아직은 없다는 점을 일차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지금까지 밝혀진 ‘이 지사 측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사업 관여’ ‘이화영 전 열린우리당 의원 보좌관 출신 이한성씨의 천화동인 1호 이사 역임’ 등의 사실만을 두고 이 지사에게 관련 혐의를 씌우긴 아직 무리라는 점에서 나오는 분석이다. 이 지사 캠프의 한 인사는 “아직 이 지사에게 책임을 물을 만한 내용은 없다”며 “길게 보면 이 지사가 그동안 각종 음해와 의혹을 거듭 받다 보니 이번 의혹 또한 그런 연장선에서 숙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라 본다”라고 말했다. 유권자 입장에선 워낙 내용이 복잡하고 여러 인사들이 거론되면서 의혹 자체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기존 지지층 입장에선 해당 사업이 추진된 시기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었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는 평도 나온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보다 중앙정부의 책임을 더 크게 보는 셈이다. 여권의 한 전직 의원은 “이 지사가 당시 날을 세우던 정권을 앞에 두고 향후 불똥이 튈 만한 짓을 정말 했겠느냐라는 의문부터 갖는 것”이라며 “우리도 그렇고 유권자도 그렇고 그의 측근을 두고는 우려가 있겠지만 이 지사 자체에 대해선 큰 우려를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장동 사업 과정 중 민간이 큰 이익을 가져간 배경을 두고 여권 의원들이 이전 정권을 거론한 건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 상황에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 수령, 화천대유자산관리 최대주주인 김만배씨 누나의 윤석열 전 총장 부친 주택 매입 사실은 여야 간 진영 싸움을 부추기면서 이재명 책임론을 가렸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재명의 위기’가 ‘민주당의 위기’로 풀이됐다는 시선도 많다. 친문단체 ‘파란장미시민행동’을 조직했던 최인호 작가는 “곽 전 의원 아들 퇴직금 수령이 분기점이 된 건데 여당의 1등 주자가 공격받으니 일단 결집해서 힘을 몰아주자는 의견이 팽배했다”며 “이재명이 무너지면 정권 재창출은 힘들어질 거란 판단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지지층이 이 지사를 지지하는 데에 그의 ‘도덕성’은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 9월 13~14일 여야 주자 4명(이재명·이낙연·윤석열·홍준표)을 대상으로 도덕성 국민소통능력 추진력 공정한 국정운영 미래비전 제시 등 5개 항목을 평가한 조사에서 이 지사의 도덕성은 2.4점으로 가장 낮게 나왔다. 그가 높은 점수를 받은 건 ‘추진력’(3.8점)이었다. ‘국민소통능력’(3.2점), ‘미래비전 제시’(3.1점), ‘공정한 국정운영’(2.9점)은 그 뒤를 이었다. 이 지사의 도덕적 흠결이 지지자들의 주된 지지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유권자들은 이 지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알면서도 지지한다는 이야기다.

경기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등이 덮친 지금 같은 상황에선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뭐라도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대선주자를 꼽는 경향이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BBK 의혹으로 안팎에서 강한 공세를 받았지만 ‘경제성장’에 대한 바람이 그의 지지율을 견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 지지자나 이재명에게 등을 돌린 당원들은 이재명 대세론을 지켜볼 바엔 아예 투표를 안 하거나 당을 바꾸겠다라고 판단한다”며 “그러니 경선에서의 득표율 변화는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낙연 캠프에서 의혹 처음 제기”

한편으론 이 지사 개인이 비주류라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내 기반 확대에 기울인 노력이 대장동 의혹 여파에 대한 완충재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지사는 경선 전부터 친노·친문의 장벽을 넘고자 관련 인사 영입에 공을 들였다. 이와 관련해 앞서의 전직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로 인사들에게도 한두 번씩 직접 전화를 하더라. ‘이재명입니다. 많이 좀 도와주십쇼’ 하길래 ‘내가 할 역할이 뭐가 있나’라고 물었더니 ‘당연히 큰 도움이 되죠’라며 넉살 좋게 이야기하더라. 좋게 말하면 똑똑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약은 것인데 그의 이런 노력이 당내 신뢰를 쌓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그의 대선 캠프엔 조정식·박찬대·박주민·이재정·윤후덕 의원 등 다양한 친문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반(反)이재명 정서를 희석했고, 친문 좌장 격인 이해찬 전 대표의 지지세도 얻을 수 있었다. 일각에선 이해찬 전 대표가 여의도에 차린 사무실 비용을 이 지사 측에서 대줬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낙연 전 대표가 대장동 의혹에도 불구하고 친문 지지층의 영향력이 큰 호남 경선에서 판세를 뒤집지 못한 건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이 전 대표는 지난 9월 25일 광주·전남 경선에서 47.12%로 이 지사를 0.17%포인트 근소하게 앞섰지만, 26일 전북 경선에선 38.48%로 이 지사에게 16%포인트 뒤졌다.

관건은 본선이다. 야권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고발사주 의혹’과 비교했을 때 이 지사의 대장동 의혹은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고발사주 의혹의 경우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했다는 의혹을 받는 손준성 검사(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가 실제 윤 전 총장의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를 진술하느냐가 관건인데, 실제 지시가 있다 해도 손 검사가 이를 진술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많다. 반면 대장동 의혹은 현재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진술과는 별개로 자금흐름 정황에 대한 검경 수사가 선거 판세를 뒤집을 여지가 적지 않다.

현재 이 지사와 윤 전 총장 지지율은 여전히 2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양측 모두 강성 지지층을 넘어선 무당층 표심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 지사가 당내 경선에서 압승한다고 해도 대장동 의혹이 향후 어떻게 흘러가냐에 따라 지지율은 출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주목할 건 내부 알력으로 시작된 대장동 의혹 관련 폭로다. 최근 천화동인 5호 실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는 로비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검찰과 국회에 먼저 제출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을 맡았던 강찬우 변호사는 지난 9월 13일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이낙연 캠프 측이 (물밑에서) 관련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한 걸로 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최순실 사태도 고영태·노승일씨 등이 나서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는데, 대장동 의혹도 이런 식의 폭로가 이어지면 민주당도 모르는 악재가 덮칠 수 있다”라고 평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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