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파이널 유세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6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파이널 유세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중·수·청’ ‘M·여·중’.

이 낯선 신조어는 치열한 대선 경선 과정에서 여야의 대선후보들이 주문처럼 외우는 구호다. ‘중·수·청’은 중도층, 수도권, 청년을 말한다. ‘M·여·중’은 MZ세대(2030세대), 여성, 중도를 줄인 말이다. 대표적으로 스윙보터(swing voter)로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여야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하게 선거가 전개되는 경우에는, 결정적으로 이 스윙보터들이 대선의 향방을 바꾼다. 특히 청년층의 표심이 이번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지만 20대와 30대는 다른 세대와 비교해 늘 무당층의 비율이 높다. 투표장에 가기 직전까지 어떤 정당의 후보에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이 가장 많은 그룹이라는 의미다.

다만 전통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았고 진보진영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향도 강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거의 모든 선거에서 보수·진보의 진영 대결은 세대 간 대결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젊은 세대=진보’ ‘기성세대=보수’라는 공식은 상당히 유효했다.

그러나 2017년 대선을 기점으로 청년의 표심에 약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한 자릿수의 지지율에 머물던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는 20~30대에서 10% 안팎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특히 20대 지지율은 13.2%로 3위를 기록했다. 물론 새누리당의 ‘본류’를 이어받았다는 자유한국당은 19대 대선에서 참패를 했지만,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보수계열 정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정치인인 유승민 후보를 향한 청년들의 지지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4·7재보궐선거에서 우리는 충격적인 변화를 마주하게 됐는데, 20대 남성 중 무려 72.5%가, 30대의 63.8%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 투표한 것이다. 심지어 20대 남성은 60대 이상 유권자들보다 국민의힘에 더 높은 지지를 보였다. ‘젊은 세대=진보’ ‘기성세대=보수’라는 공식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기세를 몰아 이준석은 지난 6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0선의 30대로서 야당 당대표로 당선됐다. 이준석은 2030 남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기성세대의 지지를 받던 중진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 정치권은 청년들의 무서운 ‘화력’을 실감했다. 그러나 세간에 잘 드러나지 않은 사실은, 해당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이 당원 투표에서는 나경원 후보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다.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당원 투표 70%와 여론조사 30%를 합쳐 표를 합산한다. 여기서 이준석은 70%에 해당하는 당원 득표에서는 나경원 후보에게 다소 밀렸지만, 30%에 해당하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면서 간신히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6월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당원의 72.6%가 50대 이상이었다. 국민의힘에서 49세 이하는 30%도 채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심지어 20대와 30대의 당원 비율은 40대보다도 더 적어서, 40대 당원과 한데 묶어 ‘49세 이하’로 취급되어야 할 만큼 그 수는 미미했다.

비대칭적으로 고령자들에게 과잉편중된 국민의힘의 세대별 당원 구조에 문제의식을 가진 이준석은 국민의힘 대표로 취임한 이후 줄곧 청년 당원 가입에 열을 올렸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대표 명함에 당원 가입으로 바로 접속되는 QR코드를 새겨 넣는가 하면, 청년들의 당원 가입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가입 절차를 최대한 간편하게 온라인화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향한 2030세대의 지지와 당의 노력이 합쳐져 올 6월 이후 신규 당원 가입자 수는 26만명 이상 늘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20~40대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불과 4개월 전 당원의 절대다수가 50대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당원 구조가 격변함에 따라 이번 국민의힘 경선은 청년 당원들의 표심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국민의힘에 신규 가입한 청년들이 15만명에 육박하고, 이들에게도 역시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투표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신규 당원 가입의 폭증은 선거의 양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실제로 역대 선거와는 다르게 이번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는 당원의 나이에 따라 지지 행태가 양분되는 현상이 보인다. 과거에는 진보와 보수에 따라 세대 간의 지지가 갈렸다면, 이제는 보수진영 내에서 세대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가 뚜렷하게 나뉘고 있다는 말이다. 단적으로 50대 이상은 윤석열 후보를, 2030세대는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가 매주 요동치는 상황에도 윤석열을 향한 50대 이상 당원들의 지지세는 요지부동이다. 오프라인 유세 현장에서 윤석열 후보만큼 수많은 인파가 모이는 후보가 없다고 한다. 반면 국민의힘 2030 당원의 정치적 ‘안방’이라고 불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홍준표 후보에 대한 지지가 열광적이다.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의 줄임말)이나 ‘돌돌홍’(‘돌고 돌아 대선후보는 홍준표’의 줄임말)도 해당 커뮤니티에서 나온 말이다. 그간의 당내 경선 과정에서는 당원의 연령보다 지역이나 특정계파가 결과를 좌우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대선 경선 과정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지금 국민의힘에서는 세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1월 5일이 되면 국민의힘 후보는 결국 한 명으로 압축된다. 그동안 후보 간의 경쟁 뒤에서 ‘신예 청년당원’과 ‘중견 기성당원’의 전쟁도 치열할 것이다. 물론 2030 당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50대 이상의 당원 비율이 더 높다. ‘당원의 수’만 가지고 보면 아직까지는 중견 당원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2030의 막강한 ‘화력’이 뒷받침되고 세대 간 표심 결집이 일어나는 지금, 경선 결과를 함부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정치적으로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에는 언제나 젊은 세대의 단결된 정치적 행동이, 기성세대의 지지를 추동하는 힘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한 달이나 남은 최종 후보 선발 때까지 얼마든지 판은 변할 수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후보들이 특히 청년들의 표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만 각 후보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2030세대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젠다는 기성세대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30세대는 ‘건강 문제’를 ‘안보 문제’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젊은 세대는 ‘젠더 문제’를 ‘경제 문제’만큼이나 중요하게 보고 있다. 홍준표 후보에게 향한 2030세대의 높은 지지율에는 상대 진영에 대한 시원한 언사도 한몫했겠지만, 경선 과정 초반에 젠더 이슈와 관련하여 이준석 대표와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준석 대표를 지지하는 2030세대의 지지를 이어받은 것이 컸다는 점이 구체적인 사례다. 그러나 홍준표 후보 역시 현재의 지지율에 안주하여 갑자기 조국을 수호하거나 대책 없는 모병제를 주장하며 포퓰리즘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젊은층의 지지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청년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공정’만을 반복적으로 외치는 후보나, 퍼주기식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 역시도 젊은 세대로부터 결코 지지받기 어려우리라.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