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촬영한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상부공원화 사업구간 항공사진. ⓒphoto 성남시
지난해 11월 촬영한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상부공원화 사업구간 항공사진. ⓒphoto 성남시

지난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형 토목 공약을 잔뜩 내놓아 그 배경이 주목된다. 성남 대장동 사태로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이재명 지사는 일찌감치 대장동 사태를 ‘국민의힘과 토건 비리세력, 보수언론의 합작품’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경선 과정에서는 “국민의힘은 민간 토건 세력의 대변인이냐”며 “토건 투기 최후대전(大戰)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한데 정작 본인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실현가능성이 의심스러운 대형 토목 공약들을 여럿 발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난 10월 10일 민주당 서울지역 순회경선을 앞두고 발표한 서울지하철 1호선과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공약이다. 서울지하철 1호선의 지상구간인 서울역에서 온수역, 청량리역에서 도봉역까지를 지하화하고, 경부고속도로의 서울 시내구간인 한남대교 남단 한남IC에서 양재IC까지의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이다. 하지만 이들 공약들은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물론 각종 선거과정에서 수없이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지만, 주변 교통에 미치는 악영향과 막대한 재원마련 논란 등으로 실현가능성에 의문이 드는 공약들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부고속도로 한남~양재 구간 지하화의 경우 공약 표절 논란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후보 경선은 물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 지하화를 공약한 바 있는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 공약 표절 논란을 제기하고 나서면서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은 올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섰던 본인이 7년 전부터 기획한 정책이고 민주당의 박원순 전 시장이 7년 동안 거부해온 사업”이라고 표절 논란을 제기한 상태다.

이 같은 논란에 이재명 지사는 “정책에는 저작권이 없고 정치는 아이디어 경진대회가 아니라 정책결정자들이 용기와 집행력을 경쟁하는 장”이라며 자신이 성남시장 재임 중 추진한 ‘분당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 상부공원화 사업’을 되레 본보기로 홍보하고 나선 상황이다.

분당~수서 간 1.6㎞ 지하화도 지지부진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상부공원화 사업은 성남 분당과 서울 수서를 연결하는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가 지나는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의 벌말사거리와 매송사거리 간 1.59㎞ 남짓의 도로를 데크와 흙으로 덮어 공원화하는 사업을 말한다. 해당 도로는 1기 신도시인 도로 동쪽의 분당신도시와 2기 신도시인 서쪽의 판교신도시를 동서로 단절하는 문제가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시내구간 역시 서초구를 동서로 단절하는 관계로 선거 때마다 지하화, 상부데크화 등이 논의돼 왔다. 이에 이재명 지사는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의 전례를 따라 소위 ‘덮개공원’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은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를 중심으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에서 주변 집값을 되레 자극할 염려가 있어 실현가능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상부공원화 사업 역시 지난 2015년 사업 착수와 함께 도로 주변 아파트 단지들의 집값을 자극했었다.

‘덮개공원’ 동측에 있는 분당 아름마을의 경우, 분당신도시 조성 초기인 1992년부터 1995년에 걸쳐 준공된 노후 아파트 단지지만 ‘덮개공원’에 대한 기대감이 집값에 상당 부분 반영된 상태다. 아름마을 선경6단지 아파트의 경우, 3.3㎡(평)당 매매가가 5404만원에 형성돼 있다.(네이버 부동산 기준) 비슷한 시기 준공된 분당구 서현동이나 수내동 일원의 아파트보다도 높고, 훨씬 뒤인 2004년 준공된 정자동 파크뷰아파트의 3.3㎡당 매매가(4576만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3.3㎡당 매매가가 7196만원으로 강남구(7996만원)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서초구에서 비슷한 방식의 경부고속도로 상부공원화 사업을 진행할 경우, 주변 집값을 자극할 우려는 더욱 크다. 지난 4·7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영선 민주당 후보(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가 당내 경선과정에서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를 통한 최대 8000가구 주택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경쟁자였던 우상호 의원은 “강남 대규모 개발계획이 주변 집값을 상승시키고 그것이 전국적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왔던 선례에 비춘다면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취지에 걸맞지 않은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경부고속도로 서울시내 구간은 왕복 8차선에 길이만 6.4㎞로, 왕복 6차선 1.59㎞가량에 불과한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지하화 구간에 비해 폭도 넓고 길이도 훨씬 길다. 이에 따른 기술적인 어려움도 무시 못 할 요소다.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상부공원화 사업 때도 도로 상부에 덮어씌우는 데크의 붕괴 위험성 등이 제기되면서 시공사(진흥기업)와 성남시가 옥신각신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1호선 지하화 최소 13조 예상

이로 인해 1.59㎞에 불과한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위에 데크를 씌우는 사업은 지난 2015년 7월 착공에 들어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공을 못 하고 있다. 2015년 7월 기공식을 주재했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밝혔던 완공 시점은 2018년 12월이었다. 성남시청 교통도로국 도로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공정률은 67% 정도로, 오는 2022년 3~4월경에나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업비 역시 기공식 때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밝혔던 1500억원에서 2100억원으로 600억원이나 증액된 상태다.

서울지하철 1호선 지하화의 경우, 경부고속도로 서울 시내구간 지하화보다 훨씬 더 난제로 평가받는다. 서울역에서 온수역에 이르는 구간과 청량리역에서 도봉역에 이르는 철도 지상구간의 경우, 각각 길이만 17.3㎞, 12㎞에 달한다. 게다가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 3개 광역지자체와 전국에서 서울로 오가는 KTX고속열차는 물론, 일반열차, 화물열차, 서울지하철 1호선이 모두 통과하는 길목(서울역~구로역)을 포함하고 있어서 지하화를 위해 철도를 부분적으로 멈춰 세우는 일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장 철도 편수를 줄이기만 해도 출퇴근 대란이 벌어질 것이 뻔해서다.

이로 인해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민주당 경선에서 나섰던 우상호 의원이 ‘서울지하철 지상구간 지하화’ 공약을 내걸었을 때 경쟁자였던 박영선 전 장관은 “장기 프로젝트로 여기에 동의한다”면서도 “당장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고 사실상 불가함을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이재명 지사가 밝힌 서울지하철 1호선 강북지역 지하화 사업구간(청량리역~도봉역)은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우상호 의원이 공약했던 사업구간(청량리역~창동역)에 비해서도 3㎞가량 더 길다.

막대한 사업비 조달은 더 큰 문제다. 지난 2013년 서울시 용역에 따르면, 서울시내 전체 철도 중 지상구간(118.1㎞) 지하화에 드는 사업비는 38조원으로, 이 중 국철 구간(86.4㎞) 지하화에만 32조60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중도사퇴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5대 도시철도 지하화’를 공약하면서 내놓은 서울역~당정역(군포시 당정동) 간 31㎞ 구간 지하화 사업비도 13조6540억원이다. 이재명 지사가 공약한 지하철 1호선 지하화 구간의 길이가 29.3㎞로 이와 비슷한 만큼, 단순계산해도 최소 13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급등한 지가를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사업비가 들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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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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