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그간 언행을 종합해보면 그는 ‘청년 정치인’으로 불리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2011년 26살의 나이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아 정치판에 데뷔한 이 대표에게는 자연스럽게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왔지만, 그는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이 청년에만 국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최근 윤석열 후보와 이 대표의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 12월 29일 국회에서 “저는 청년 당대표가 아닌 당대표로 선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대표는 윤석열 후보의 청년 관련 일정에 동행할 것인지에 대해 이같이 답하며 “이준석에게 ‘청년 관련 정책을 만들어라. 청년 관련해 돌아다녀라’ 하는 것 자체가 이준석이 지금까지 6개월간 당대표 하면서 바꾸려 했던 당 체질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승전략 ‘세대결합론’ 무산되며 반발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윤 후보 측과 이 대표의 갈등을 두고 “양측의 정치적 인식 차이가 생각보다 ‘펀더멘털(본질적)’하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은 이랬다.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보수의 주류’로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그가 당대표 되기 이전부터 ‘청년이라고 별도의 리그에서 우대받을 것이 아니라 메인스트림과 맞붙어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온 이유다. 그래서 대표가 된 이후 꾸준히 ‘당의 체질 개선’을 강조하고 당내 의원들은 물론 대선후보를 향해서까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는 동시에 이번 선거에서 필승 전략이라고 믿던 ‘세대결합론’을 실현하고 싶어 했다”는 분석도 했다.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2030층과 60대 이상의 지지를 얻어 승리한 방정식을 대선이라는 전국판 선거에서도 구현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이 중 2030의 지지를 얻는 전략은 젠더이슈를 선점하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향후 젠더이슈·갈등이 과거 영호남의 지역감정만큼이나 선거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관계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와 신지예 전 한국정치여성네트워크 대표 등의 영입을 보고 이 대표는 자신이 구상한 선거 전략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중진 의원들을 비롯해 윤 후보 측에 포진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전통적 세력은 이 대표가 청년표를 끌어오는 역할에 열중하기를 원한다. ‘체질 개선’을 강조하는 이 대표를 향해 “후보는 안 돕고 자기 정치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 대표는 지난 12월 21일 상임선대위원장과 홍보본부장 등 선대위의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다. 표면적으로는 조수진 최고위원과의 마찰 때문이었지만, 경선 과정부터 이어져온 윤 후보 측 인사들과의 갈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 대표도 사퇴 이후 윤 후보 주변의 비선 인사들을 지칭하는 ‘윤핵관’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다. 지난 12월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선 이들을 두고 ‘최순실과 비선실세’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이 대표와 윤 후보 측의 사소한 언쟁은 그간 셀 수 없이 많았다. 다만 ‘파경’ 지경까지 이른 상황은 한 달 사이 두 번째다. 지난 12월 초 이 대표는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긴 뒤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 당시 윤 후보는 직접 울산으로 내려가 이 대표를 설득해 이른바 ‘울산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때만 해도 정치권에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원톱으로 모시기 위한 이 대표의 전략”이라는 말이 많았다. 윤 후보 주변에서도 “직접 만나서 이 대표를 설득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고 한다.

이준석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

하지만 두 번째 파경에 이른 현재의 여론은 이 대표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대표의 선대위 사퇴가 지나친 처신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이와 함께 이 대표가 당대표에 당선되며 국민의힘에 불었던 ‘혁신 바람’이 이대로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청년 당직자는 “이번 대선에서 패배하고 이 대표의 책임론이 커지면, 당은 다시 과거의 구태 인사들이 장악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이 대표의 실패보다 두려운 건 당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과 윤 후보도 이 대표의 최근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월 27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를 이기려면, 당대표가 당대표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 테니까 제3자가 뭐라 하겠나”라며 “당대표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갈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윤 후보 역시 사실상 이 대표를 겨냥한 메시지를 냈다. 윤 후보는 “누구도 제3자적 논평가나 평론가가 돼선 곤란하다”며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윤 후보 지지율은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에는 부인 김건희씨의 경력 부풀리기 의혹이 결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 대표와의 갈등으로 인해 청년층 표심을 잃었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갤럽이 서울신문 의뢰로 지난 12월 27~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상대로 실시한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6.8%, 윤 후보는 30.8%로 집계돼 오차범위 밖 열세였다. 이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이 후보에 뒤졌다. 특히 2030세대에서 지지율 격차가 눈에 띄었다. 이 후보는 만 18세~20대에서 25.4%, 30대 34.3%를 얻은 반면 윤 후보는 각각 9.5%, 18.0%였다. 한국갤럽의 11월 3주 차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만 18세~20대 15%, 30대에서 27%의 지지율을 얻어 이 후보를 앞서던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이 후보에 10% 가까이 앞서며 컨벤션 효과를 톡톡히 누렸던 윤 후보가 한 달여 사이에 오차범위 밖으로 뒤처지자 당 안팎에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대표가 선대위에 하루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 대표는 아직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지난 12월 3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가장 큰 부담은 선거에서 지는 것이다. 내가 이러는 것은 이기기 위한 방향을 끝까지 모색하기 위해서”라면서도 선대위 복귀에는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내가 선대위 복귀를 안 해서 대중이 윤 후보 지지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란 말인가. 내 개인의 거취가 후보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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