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빙상경기장을 점검하고 있는 한정 중국 국무원 부총리(오른쪽). 한정 부총리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특사로 방한한 바 있다.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12월 1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빙상경기장을 점검하고 있는 한정 중국 국무원 부총리(오른쪽). 한정 부총리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특사로 방한한 바 있다. ⓒphoto 신화·뉴시스

오는 2월 4일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동맹국들이 속속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직전 대회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이자 2022년 한·중 수교 30년을 앞둔 한국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12월 13일 호주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적 보이콧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면서 우리 외교당국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진 상태다.

외교당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지난해 도쿄올림픽 개최국이자 2022년 일·중 수교 50년을 맞는 일본조차 지난 12월 24일 “현직 각료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파견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대열에 동참한 일본은 정부 인사가 아닌 야마시타 야스히로 일본올림픽조직위원장 등 체육계 인사들만 베이징에 파견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사실 코로나19로 올림픽을 1년 연기한 끝에 무관중으로 올림픽을 치러낸 일본은 중국에 각료급 인사를 파견하지 않는다 해도 별로 거리낄 것이 없다. 중국 역시 지난 7월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 때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이상의 고위관료를 축하사절로 보내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적어도 중국 측이 정치국 상무위원급 인사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특사로 파견해 체면을 세워줄 것을 내심 기대했으나, 중국은 개막 직전까지 일본의 애를 태우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거우중원(苟仲文) 국가체육총국장 겸 중국올림픽위원회 주석을 보내는 데 그쳤다. 거우중원은 정치국원보다 낮은 중앙위원급에 그친다.

2018 평창 때 中 부총리만 2명 방한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사정이 좀 다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중국이 당서열 7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인 한정(韓正) 수석부총리를 시진핑 주석의 특사로 파견한 바 있어서다. 또 중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는 정치국원인 류옌둥(劉延東) 부총리를 축하사절로 파견했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 때 중국이 두 명의 부총리급 인사를 특사로 파견한 데 대한 사의를 표명하자면, 한국 역시 부총리급 이상의 인사를 베이징에 축하사절로 파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이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 인권탄압, 홍콩 자치권 훼손, 대만에 대한 무력위협 등을 이유로 ‘외교적 보이콧’ 방침에 속속 합류하는 와중에 우리 정부가 정부 고위인사를 중국에 축하사절로 보낼 경우 동맹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대 고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진 ‘빚’을 갚아야 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전쟁 종전선언 당사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초 희망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물거품이 된 상태다. 게다가 지난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 도쿄올림픽 때 불참한 북한에 오는 2022년 말까지 ‘자격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는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중할 가능성도 낮아진 상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역시 지난 12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한 계기로 삼기로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속내를 털어놓은 바 있다.

결국 우리 정부의 최종 결정은 지난 7월 도쿄올림픽 때 ‘정치와 스포츠 분리’ 원칙을 천명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을 파견했던 전례와 비슷한 수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가 경색된 와중에 열렸지만, ‘정치와 스포츠 분리’ 원칙에 따라 황희 문체부 장관이 정부 대표로 방일해 우리 선수단을 격려한 바 있다. 물론 이 카드 역시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방침과 배치되고, 부총리급 이상을 내심 기대해온 중국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카드로 조심스레 제기되는 것은 정부 각료급 인사가 아닌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여당 고위급 인사가 나서는 방안이다. 송영길 대표는 지난 2017년 1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한·중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을 이끌고 베이징을 찾은 바 있다. 이해찬 전 총리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첫 대중특사로 방중해 시진핑 주석과 면담한 바 있다.

하지만 여당 고위인사의 방중 역시 내년 3월 대선을 목전에 둔 터라 쉽게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송영길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의 과거 방중이 대중 저자세 굴욕외교 논란을 초래하며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왔던 점을 고려하면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에 자칫 역풍이 불 수도 있어서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국민정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12월 28일 “한국 국민, 특히 청년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고 공개석상에서 언급했을 정도로 좋지 않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시진핑 주석의 답방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두 차례 중국을 찾았으나,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 번도 한국을 찾은 적이 없다.

러시아 푸틴 확정, 유럽은 입장 갈려

한편 중국 외교부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지금까지 오는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이 확정된 정상급 인사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유일하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때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찾아준 데 대한 답방 차원이다. 크렘린궁 역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푸틴 대통령의 새해 첫 번째 해외 방문이 될 것”이라고 확인한 상태다.

반면 유럽 각국은 국가별로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미국과 핵심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파이브아이즈(미국·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의 일원이자 가장 가까운 동맹인 영국은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방침에 동조한 상태다. 하지만 프랑스는 명시적으로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요구를 거부했고,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체코 등은 “정치와 스포츠를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2024년 백악관 복귀를 꿈꾸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월 19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미 카터가 외교적 보이콧을 하는 것을 지켜봤지만 이는 끔찍했다”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훨씬 더 강력한 수단이 있는데 외교적 보이콧을 하는 것은 찌질한 패자로 보이게 할 뿐”이라고 비판해 주목된다. 과거 민주당 카터 정부가 구(舊)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콧했던 전례를 언급하면서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해 미국 측으로부터 소위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은 없었다”며 “베이징올림픽에 참석하는 문제는 각국 정부가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서 검토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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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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