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일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열린 ‘제303회 정례회 제1차 본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1일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열린 ‘제303회 정례회 제1차 본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의장 또는 위원장은 시장이나 교육감 등 공무원이 허가 없이 발언할 경우 발언을 중지시키거나 퇴장을 명할 수 있다. 퇴장당한 시장·교육감은 의장이나 위원장의 명령에 따라 사과해야 회의에 다시 참가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서울시의회 기본조례 개정안이다. 이를 두고는 ‘오세훈 시장을 겨냥한 조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31일 본회의 표결 결과 참석인원 65명 중 55명이 찬성해서 통과됐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1월 2일 논평을 내고 “압도적인 의석수를 앞세워 행정부와 시의회 간의 견제와 균형을 일거에 무너뜨린 시의회의 폭거”라고 반발했다. 서울시는 해당 조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 지난 1월 5일 법률적 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재의가 이뤄지는 경우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3분의2 이상이 찬성할 때 통과되는데, 재의를 요청하는 중에는 조례의 효력이 정지된다.

이 조례 개정안을 두고는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 5명의 민주당 시의원들이 ‘기권’을 던졌고, 권수정(정의당)·성중기(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신정호·이상훈·채유미(민주당)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 소속 신정호 시의원은 “사실 오세훈 시장이 원인을 제공했다”면서도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현재 조례로 충분히 질서유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특별시의회기본조례 52조에는 ‘시장 및 교육감 또는 관계 공무원이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발언하려 할 경우 미리 의장 또는 위원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신 의원은 “당론으로 정한 내용도 아니고, 운영위에서 이런 조례까지 만든 건 합당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신 의원의 지적대로 시의회 운영위원회에서 조례안을 논의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오 시장의 돌발행동 때문이다. 지난해 9월 3일 본회의에서 오 시장은 ‘서울시장 오세훈TV’ 관련 질의에 대해 답변 기회를 얻지 못하자 반발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신정호 의원은 “발언권이 없는 상황에서 발언대에 ‘난입’했다가 할 말만 하고 나가버렸다”며 “사실 오 시장이 조례안을 비판하려면 당시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서울시 측은 ‘오죽했으면 시장이 그런 행동을 했겠느냐’며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가 오 시장을 돌발행동으로 몰아갔다고 비판하고 있다.

누가 진짜 원인 제공자인지를 두고는 아직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당시 사태를 되짚어보면 경위는 이랬다. 당시 본회의에서 민주당 이경선 의원은 오 시장의 유튜브 채널 ‘서울시장 오세훈TV’의 제작과정을 문제 삼으며 행정1부시장·행정2부시장·기획조정실장을 답변대에 세웠다. 이 의원은 “비공개 문서를 영상에 도용해 시장이 발언하지도 않은 지시로 동영상을 제작했다”며 “‘오순실의 시정농단’으로 나가지 않도록 시민의 눈으로 감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할당된 발언시간이 15분가량 남았음에도 이 의원은 오 시장에 추가 질의를 하지 않고 끝마쳤다. 이에 오 시장은 “무엇이 두려워서 저한테는 묻지 못하십니까? 이것은 언페어합니다”라며 “저 이렇게 하면 이후에 시정질문에 응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회의장을 나갔다. 2시간 후 본회의가 재개되고 오 시장이 자리에 다시 착석하자 시의원들은 “여기 유치원 아닙니다. 떼쓰는 어린이들이 모인 곳 아닙니다”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시장의 입을 묶어놓자 폭발했다’

국민의힘과 서울시 측은 오 시장 당선 이후부터 이어진 ‘시장 길들이기’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의회와 행정부가 첨예하게 부딪쳤던 예산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지난해 9월부터 시의원들의 태도가 ‘갑질’에 가까워졌다는 전언이다. 성중기 의원(국민의힘)은 “명백하게 시장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지만, 질의를 한다면서 교묘하게 시장을 망신주려고 혼자 떠들고, 질문할 기회도 안 주고 내려가버리면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시장 입을 딱 묶어놓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완전히 ‘갑질’하는 형태가 여러 번 반복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3일 본회의의 앞뒤 맥락을 보면, 오 시장의 돌발행동은 시의원들의 일방적 질의가 이어지자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에 가깝다. 이날 여당 시의원들은 오 시장을 질의대에 불러놓고 발언시간은 거의 주지 않고 지적을 이어가기를 반복했다. 같은 회차 김경우 시의원(민주당)의 질의도 30분 내내 이어졌지만 오 시장에게는 발언시간이 채 5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오 시장은 “한 5분 정도 말씀하시면 저한테 50초라도 주십시오.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시정질문이지만?”이라고 호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시의원은 “야당 시장에게 여당 의원들이 질의할 때 다 비슷하지 않겠느냐”면서도 “시장에게 여당 의원들이 ‘거기 서서 내 말 들으라’ 하는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좀 유익한 토론이 이어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쟁에 서울시 사무는 뒷전

시의회가 시장을 견제하는 등 정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서울시 사무는 뒷전이었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31일 통과된 2022년도 예산안은 ‘핵심사업’ 예산을 지키느라 오히려 지역구 예산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조정됐다. 예결위 소속인 이종환 의원(국민의힘)은 “최종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전 예산을 배분할 특정항목을 선정하는 계수조정을 할 때, 조정위원 전원이 민주당 의원이었다”며 “우선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항목을 정하고 나머지를 깎는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우선순위에 들지 못한 지역구 예산 등은 일괄적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진행하던 ‘민·관협치(마을 생태계 구축·도시재생·사회적 경제 지원)’ 사업이나 TBS 출연금 등은 2021년도 대비 14~35% 감액하는 수준에서 그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TBS 출연금은 320억원으로 통과돼 2021년 예산(375억원) 대비 85% 선에서 집행된다. 반면 오 시장의 핵심사업으로 꼽히는 ‘서울런’ ‘온서울 건강온’ ‘안심소득’ 등의 사업은 예산이 분배됐지만, 편성안과 비교해 20~52%까지 예산이 삭감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유명 인터넷 강사의 강의를 제공하는 ‘서울런’은 사용자 만족도가 높아 올해부터 플랫폼도 조성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하려 했는데, 예산이 좀 줄어 아쉬움이 있다”며 “시의회와 행정부의 줄다리기 때문에 제도에 대한 논의가 묻힌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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