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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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은 혈통이 지극히 순수하고, 따라서 매우 고결하기 때문에 어버이 같은 위대한 영도자 없이는 이 사악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저자 브라이언 R. 마이어스가 정리한 북한 이데올로기의 핵심 골자다. 저자는 부산 동서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마이어스 교수는 책에서 “북한이 이념적으로 공산주의 중국이나 동유럽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적대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북한 체제를 보는 그의 시각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북한을 연구해온 학자들 중에는 북한 체제가 표면적으로는 마르크스의 계급사상에 바탕을 둔 공산주의로 보이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관점이 유교적 가부장적 수령독재체제로 해석하는 것이다. ‘어버이 수령’이라는 용어를 분석한 결과다. 마이어스는 주체사상도 전시용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북한의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 유교사상, 전시용 주체사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연구했다.

지난 12월 9일 마이어스 교수는 약속이 있어 서울에 왔다. 주간조선 편집실에서 마이어스 교수와 만났다.

마이어스 교수는 미국 뉴저지주 출신이다. 미군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버뮤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랐다. 1980년대 말 독일 보흠대학에서 소련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부전공으로 한국학을 공부했다.

1989년 그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했다. 베를린장벽 붕괴는 곧 소련의 붕괴였다. 소련학은 하루아침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학문이 되었다. 그는 전공을 북한학으로 바꿨다. 소련학과 한국학을 공부했으니 다른 분야보다는 북한학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북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된 연구 논문은 ‘한설야와 북한문학(Han sorya and North Literature)’. 이 책은 김일성 치하의 북한문화에 대한 개척적 연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똑같다. 마이어스 교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극우정권의 인종론과 양립할 수 없다”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북한 정권은 인종론에 바탕을 둔 극우정권이라는 얘기다. 독자들은 의아해 할 것 같다. 마이어스 교수는 “한국 독자들은 이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북한 정권은 그동안 남한의 이승만 정권를 가리켜 친일파를 숙청하지 않은 친일정권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김일성 치하의 북한문화를 연구하면서 확인했다. 김일성은 친일파를 숙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일성은 이승만 정권보다 친일 인텔리를 환영했고 그들에게 관대했다.”

금시초문이었다. 혹시 마이어스 교수가 미국인이다보니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물었다. “김일성은 친일 인텔리에게 정부의 고위직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우상화작업을 하게 했다. 일제가 해왔던 것처럼 히로히토와 같은 우상화 작업을 해나갔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상화에 동원한 수사(修辭)를 그대로 빌려왔다.”

2009년 평양에서 벌어진 퍼레이드가 북한 TV뉴스에 나왔다. 저자는 그때 군중들이 들고나온 격문 ‘그의 품을 떠나 못살아’를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이것이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북한 정권은 제국주의 일본이 태평양전쟁 시기에 식민지 조선의 선전선동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결사’니 ’육탄’ 같은 용어들을 점점 더 대담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일성 우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스탈린 정권 시절 동구 공산권 국가에서는 경쟁적으로 거대한 스탈린 동상을 세웠다. 평양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 동상과 흡사했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중국과 소련의 개인숭배가 지도자의 위대성이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으로부터 초래된다고 한 반면, 북한 선전은 김일성의 위대성은 그가 민족적 가치들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한다. 즉 그는 역사상 가장 순진하고 자연스러우며 다정하고 순수한 조선인이라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김일성의 미덕이 선천적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증조부는 1866년 그 유명한 미국 군함에 대한 공격을 주도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또한 김일성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이러한 미덕을 드러냈다고 선전한다.

인종주의는 틈이 없다

저자는 김일성 우상화에 동원된 수많은 ‘현지지도 그림’을 분석했다. 대부분의 현지지도 그림은 날짜 미상이다. 우상화를 위한 조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화가와 작가들이 그려내는 김일성의 외모는 여성적 특성이 강하다. 어린아이를 안고 있고, 군인들이 넓은 가슴에 기대어 있고, 팔에 매달려 있는 여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 주민들이 배우는 노래 ‘초소에 수령님 오셨네’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1절을 보면 마이어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소에 수령님이 찾아오시여/ 다정하게 우리들을 품에 안고서 /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니 / 너무 기뻐 그이 품에 얼굴 묻었네 / 아! 그이는 우리 어버이 / 아! 그 품에 안긴 아들은 / 언제나 어디서나 행복합니다!’

마이어스 교수는 북한 정권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이라면 차라리 상대하기가 편하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융통성이 생긴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융통성이라는 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주의 정권과 형식적인 대화나 조약을 맺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할 수 없다.”

1938년 히틀러는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뮌헨협정을 체결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사실상 합병했다. 이어 소련과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은 유럽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협정문과 조약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모든 협정과 조약을 파기했다.

마이어스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이 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서 결과를 얻지 못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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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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