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류시화(54)씨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 출간 2주 만에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랐다. ‘나의 상처는 돌…’은 4월 셋째 주 출간과 동시에 종합 부문 23위, 시 부문 1위를 차지했고, 5월 첫째 주에는 종합 10위 자리를 꿰찼다. 시집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든 것은 7년 만이라고 교보문고 측은 밝혔다. 7년 전인 2005년에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한 시는 역시 류씨의 작품이었다. 류씨가 낸 번역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그해 종합 순위 6위에 올랐었다. 교보문고 홍보실 진영균씨는 주간조선에 “순위가 더 오르는지 지켜보고 있다”며 시집의 모처럼만의 인기몰이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류씨는 한국 시 출판시장의 절대강자다. ‘시왕(詩王)’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교보문고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집계한 2000년 이후 작년까지 12년 중 10년간 시장을 석권했다. 2003년 시인 김용택씨의 ‘시가 내게로 왔다’, 2008년 소설가 박경리씨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 1위를 잠시 내줬을 뿐이다. 2009년 박경리씨 추모 붐이 가라앉으면서 류씨는 바로 시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류시화 시집이 시 부문 1~3위

5월 셋째 주 교보문고 시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류씨는 1~3위를 석권하고 있다. 1위는 신작 ‘나의 상처는 돌…’, 2위는 ‘사랑하라 한 번도…’(2005), 3위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1998)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류씨의 시만 읽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을 낸 열림원 출판사는 “지금까지 120만권이 팔렸다”고 했고, ‘사랑하라 한 번도…’ 역시 1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상처는 돌…’은 그런 류씨가 15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류씨는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1997)을 발간한 이래 주로 번역 서적이나 산문집을 펴냈기 때문이다. 시인은 새 시집에 그동안 자신이 창작한 350여편의 시 중 56편을 선별해 담았다고 밝혔다. 56편 중 55편은 미발표작이다.

류씨는 대중적 감성을 지닌 시인으로 꼽힌다. 지난 5월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시 코너에서 류시화씨의 시집을 구입한 송영미(52)씨는 “최근 의미를 알 수 없는 난해한 시들이 많은데 류시화 시인의 시는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워 즐겨 읽는다”고 말했다. 송씨는 “그는 보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했다. 류씨의 새 시집을 펴낸 출판사 문학의숲 편집부의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류씨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인도와 티베트 등지를 다니며 활동한 구도자이기도 하다”며 “그의 소수자에 대한 연민과 치유 능력이 시 안에 녹아들어가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지난해 역사 관련 서적 등 인문서적이 큰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최근에는 내면과 영성에 관한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다수의 영성 서적을 펴냈던 류씨의 이력이 시대 흐름과 맞아떨어진 것도 인기의 한 요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집을 다수 내는 출판사 창비 편집부의 한 관계자는 류씨의 인기 요인으로 “대중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점”을 꼽았다.

류씨의 예에서 보듯 대한민국의 시 독자층은 결이 얇고 편식도 심하다. 시 출판계가 ‘서정시’와 ‘소수의 시인’을 중심으로만 유통되고 있다. 5월 셋째 주 교보문고 시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1~3위를 차지한 류시화씨의 뒤를 도종환씨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4위), 정호승씨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5위)가 잇고 있다. ‘흔들리지…’는 3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해온 도종환씨가 그동안 펴낸 9권의 시집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시 예닐곱 편씩을 골라 묶어낸 시 선집이고, ‘외로우니까…’는 정호승씨가 2011년 1월 펴낸 시집이다. 5월 셋째 주 교보문고 시 베스트셀러 20위권에 든 시집 중에는 정호승씨(5위 ‘외로우니까…’, 9위 ‘내가 사랑하는 사람’)와 신현림씨(6위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16위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2’), 문태준씨(11위 ‘먼 곳’, 19위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2:애송시 100편’)의 시집이 두 권씩 올라 있다. 류시화씨는 물론이고 도종환·정호승·문태준씨도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꼽힌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서정시인들 몇몇이 쓴 시들만 반복해서 읽히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많고 독자는 없다”

출판사 측에서 정확한 통계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시집 판매량 역시 과거에 비하면 크게 왜소해졌다. 서정윤씨의 ‘홀로서기’와 도종환씨의 ‘접시꽃 당신’ 등 1980년대 100만부 넘게 팔려나간 시집은 이제 ‘전설’이 돼버렸다. 지금은 1만부만 팔아도 스타 시인 대접을 받는 시대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지난 20년간 시 출판시장 규모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똑같은 시인의 신작 시집이 7년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 복귀한 것이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허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시대 시의 위상과 관련해 문학평론가 정과리 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는 “시인은 많은데 독자는 없다”고 말한다. 극소수의 시인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인들이 독자의 관심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협회에 등록된 공식 시인은 2만여명이지만, 집계되지 않은 ‘자칭’ 시인까지 합하면 국내에 시를 쓰는 사람은 5만명이 넘는다”며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창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시가 ‘사적인 공간’으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YES24, 시집 판매 전체의 5%도 안 돼

정 교수에 따르면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가 올해 초 프랑스 문학 전문 잡지 ‘마가진 리테레르(Magazine littraire)’에서 읽은 글 ‘시, 프랑스적 열정’에 따르면 프랑스의 ‘자칭’ 시인은 약 10만명에 달한다. 프랑스에서도 읽는 이가 없는 시를 창작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시는 소규모 그룹 등 협소한 공간에서 주로 유통된다. 정 교수는 “시를 읽기보다 씀으로써 마음에 위안을 얻는 사람이 늘어났다”며 “시가 읽는 것이 아닌, 쓰는 것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 최근의 추세”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를 가리켜 ‘독불장군 시인들의 시대’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역시 “시인은 많은데 개성 있는 시는 없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시인이 많아졌기 때문에 출간되는 시집의 수도 단순히 숫자만 비교하면 지금이 ‘시의 시대’로 불렸던 1980년대보다 많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전산화가 시작된 1989년 출간된 시집의 발행 종수는 776종, 부수는 약 107만부다. 이듬해인 1990년에는 753종의 시집이 96만여부 발행됐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2010년에는 940종이 약 103만부 발행됐으며, 지난해에는 930종의 시집이 97만부가량 세상에 나왔다. 문학과지성사는 주간조선에 “연간 15종 내외의 시집을 꾸준히 펴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20종의 시집을 13만8000여부 출간했다”고 밝혔다. 1980년대처럼 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발행량이 특별히 줄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매량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시집을 출간하는 한 출판사의 사장은 “류시화씨, 안도현씨 등 일부 시인을 제외하고는 판매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형 출판사에서는 5쇄까지 인쇄한다고 하지만 1쇄에 보통 500부, 많아야 1000부를 인쇄하기 때문에 판매량 자체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는 못해도 1쇄에 1500부가량을 찍는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인터넷 서점 YES24의 판매량 분석 결과를 보면 2006~2010년 시집 판매 비율은 전체 문학 분야의 2.7~5%에 불과하다. 100만부 이상을 판매한 류시화씨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시집을 제외하면 1만부를 넘긴 시집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시인 문태준씨의 2006년작 시집 ‘가재미’ 역시 판매량이 2만6000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커피 한 잔 값이 30년 감정의 자양분”

대중이 시를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 안도현씨는 “현란하고 감각적인 영상문화에 비해 시는 케케묵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종이책의 구매가 줄어든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정과리 교수는 “일반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시가 안 읽히는데 그것은 현실 자체가 역동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격변 속으로 휩싸여 들어가면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데 급급해 자기 성찰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권영민 교수 역시 “민주화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생겨나면서 독자들이 문학보다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의 전성기는 1980~1988년이었다. 정 교수는 “한마디로 어딜 가나 시가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학가 대자보에도 시가 쓰였고 노동 현장과 정치 집회에서는 물론, 결혼식에서도 시가 낭송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독재정권 아래 있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은 진실과 본질을 추구했고, 그것이 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기를 반성하고 참된 삶을 꿈꾸도록 하는 시의 계도(啓導) 기능이 빛을 발했던 것이다. 1980년대의 대표작인 서정윤씨의 ‘홀로서기’는 300만부, 도종환씨의 ‘접시꽃 당신’은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김초혜씨의 ‘사랑굿’ ‘어머니’ 등도 수십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정 교수는 “1980년대 시의 주 독자층은 대학생이었다. 1990년대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대학생들이 독자층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감과 동시에 고학력 여성이 많아지면서 그들이 주 독자층이 됐다. 20~30대 여성이 주요 독자가 되다 보니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들이 활발하게 양산되기 시작했다. 현재 여성 독자가 시 소비량을 많이 차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서양의 경우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시의 침체는 서양에서 더 빨리 찾아왔다. 서양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70년대부터는 대다수 시인들이 수면 위에서 사라졌다. 권영민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유명 시인을 제외하고는 상업출판사에서 시집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시의 전성기는 갔지만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는다. 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본질적인 문학이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의 최동호 교수는 “시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보편적 공동선을 일깨우고, 궁극의 인간정신을 표현한다”고 강조했다.

시인 안도현씨에게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그가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언젠가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오규원 시인의 시집 ‘사랑의 기교’는 1977년에 찍은 것이다. 고등학생 때 서점에서 700원을 주고 샀다. 그 무렵 커피 한 잔 값이 천원쯤 했을까? 우리는 커피 한 잔으로 혀끝의 달콤한 순간을 소비하고 만다. 그렇지만 이 시집은 삼십 년 넘게 내 옆에 아주 가까이 머무르고 있다. 감동의 두께도 변하지 않고 말이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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