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지원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사회복지법인이 진화하고 있다. 장애인 근로작업장을 운영하는 일부 법인은 독자 브랜드를 가진 생산품을 만들어 일반 업체와 경쟁하는가 하면 틈새시장을 공략해 수익모델을 창출해 내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소재 사회복지법인 ‘양혜원’(이사장 오경국)과 제주지역 사회복지법인 ‘춘강’(이사장 이동한)이 그런 곳이다. 사회복지법인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는 두 곳의 법인을 소개한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양혜원’의 근로작업장.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이천에 있는 ‘양혜원’의 근로작업장.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처음에는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이걸 왜 시작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애인 근로자와 사회복지사를 채용했는데 아무것도 못해 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고심 끝에 LED램프를 생산해 차별화를 시도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양혜원의 오경국(48) 이사장은 2007년부터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서 장애인 근로작업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LED조명기기를 생산한 지 3년 만에 매출 52억원(2012년)을 올렸다. 전국에서 운영 중인 사회복지법인 소속의 근로작업장은 총 50여개 안팎. 이 가운데 가장 놀라운 신장세다.

2002년 설립 직후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근로작업장에서 처음 수주한 일감은 스테이플러 철침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케이스를 만들면 1개당 12원을 받는 계약조건이었다. 장애인 근로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루 종일 풀칠을 해도 근로자 35명의 인건비는커녕 식비도 벌기 어려웠다. 오 이사장은 궁리 끝에 몇 년 전 자신이 급식사업을 할 때 알고 지낸 조명업체 사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철침 포장하는 일로는 직원들 식자재 비용도 조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아는 조명업체 사장님을 찾아가 근로작업장에서 할 수 있는 일감을 좀 달라고 요청했는데 퇴짜를 맞았어요. 장애인이 만들면 불량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지요. 전구와 LED를 생산하는 다른 기업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며칠을 사무실에 앉아 고민하던 오 이사장은 생면부지인 대진디엠피 공장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장장님 아는 분 소개로 전화를 드렸다. 한번 찾아봬도 되겠느냐”고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공장장이 결국 허락했다. 오 이사장을 대진디엠피 공장장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LED조명 생산공장을 찾아가 임원진을 만났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장애인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도 전구를 생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렸다. 정말 어렵게 임원의 승낙을 받아 낸 다음 날부터 3개월간 이 회사 영업부 대리를 쫓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양 이사장은 2009년 초 LED조명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구매하고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박스 포장 등 단순 업무는 복지시설 박점숙 원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LED 전문가를 고용해 연구를 시작했다. 자본과 인력, 모두 부족했지만 가능하면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 뒤 LED조명에 수반되는 컨버터(변환기)도 자체 기술로 완성했다.

양혜원 근로작업장에서 생산하는 ‘엑설런트 라이팅(Excellent Lighting)’ 브랜드의 LED조명기기는 이제 13종으로 늘어났다. 해당 제품은 고효율·친환경·KS인증 등 총 10가지 이상의 품질인증서를 확보하고 있다. 양혜원은 전국 최초로 LED조명기기를 장애인 생산품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엑설런트 라이팅은 올해 6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LED엑스포에 출품돼 건설업체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이라도 일반 회사 제품과 견줘 품질이 비슷하고 AS(사후관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생산품이니까 무조건 사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무엇보다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LED 생산능력을 갖춘 뒤 이제는 판로개척이 문제였다. 오 이사장이 LED조명에 주목한 건 정부가 2020년까지 전체 조명의 60% 이상을 친환경 조명기구인 LED로 교체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책에 따라 정부나 공공기관은 조명 설치 시 LED조명기기를 구매해야 한다.

게다가 정부나 지자체는 장애인 생산품을 전체 구매량의 약 1% 수준까지 구매하도록 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오 이사장은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 인증도 받아냈다. 지자체는 사회적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전체 구매물품 중 3% 이상 구입하도록 방침이 정해져 있다.

‘양혜원’ 오경국 이사장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양혜원’ 오경국 이사장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오 이사장은 전국의 공공기관, 발전소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양혜원은 장애인 근로자의 인건비를 제하고 약 3억원의 흑자를 냈다. 1억원은 기술개발비에 재투자했고 2억원가량의 생산 자재도 확보했다. 개인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오 이사장은 단순 임가공 물량에 의존하는 다른 근로작업장과 달리 경영마인드를 토대로 양혜원만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올해 근로작업장 소속 직원들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교대로 여름휴가를 갈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전체 직원이 일률적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업무는 늘었지만 장애인 근로자들의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직원들이 일하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생산한 LED를 설치한 곳으로 견학을 갔는데, 그걸 보고 ‘이게 진짜 우리가 만든 거냐’며 자기 눈을 의심하는 식구들이 많았다. LED조명기기는 예민하기 때문에 모든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작업장 내에서 단순가공을 하는 친구들은 LED 공정에 참여하는 동료를 부러워한다. LED전구의 라벨 붙이는 일이라도 주면 신이 나서 일한다. LED는 친환경제품이기 때문에 먼지가 많은 다른 작업장과 달리 분위기도 쾌적하다.”

오 이사장은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장애인들은 한 번에 여러 차례 공정을 맡기는 게 어렵다. 복수 공정이 진행되면 실수가 많아지고 불량률도 높아진다. 공정을 하나씩 쪼개 맡김으로써 이런 핸디캡을 극복했다. 장애인의 일터인 만큼 그들의 특성에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일 잘하는 장애인만 고용할 수는 없다. 그러면 장애인 사이에서도 다시 소외받는 사람이 생긴다. 단순가공을 하는 장애인도 직장이 필요하다. 양혜원은 LED조명기기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단순가공 업무도 계속하고 있다. 수익이 커지면 직원의 급여를 올리기보다 더 많은 장애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오 이사장이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하게 된 건 개인적 인연에서 비롯됐다. 양혜원은 2002년 이양호 전 국방장관이 설립허가를 받은 법인이었다. 이양호씨가 건강악화로 법인 운영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오 이사장이 법인을 인계받았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평소 사회복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부동산 등의 재산을 경기도 광주의 도척성당에 기증하는 등 사회사업에 열심이었다. 오 이사장은 원래 급식사업을 했지만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버섯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솔직히 사회복지사업은 그 어떤 사업보다 어렵다. 내가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들에게 무리한 노동을 주문할 수도 없다. 그냥 봉사하는 보람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정부 지원과 관심이 적기 때문에 자립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은 내가 이 일을 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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