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전 시구자로 나선 3代 삼성팬
‘한화 전도문’ 전파하는 한빠 남희석
선수보다 유명한 ‘연안부두 아저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회원 시절의 박용현씨. ⓒphoto 박용현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회원 시절의 박용현씨. ⓒphoto 박용현

지난 3월 28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대구구장 개막전. 이날 시구자는 한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었다. 할아버지 박창기(81)씨-아들 박용현(43)씨-손자 박성호(10)군. 1982년 프로야구 원년(元年)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회원이었던 박용현씨가 포수 자리에 앉았고, 그를 야구장에 데리고 다녔던 아버지 박창기씨가 타석에 섰다. 투수는 박용현씨의 아들 박성호군. 3대가 개막전에 나와 시구, 시타, 시포를 한 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2016년 신축 구장으로 홈구장을 이전한다. 대구구장 개막전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개막전을 앞두고 삼성 측은 시구 희망자와 그 사연을 공모했다. 여기에 3대(代) 삼성팬 사연이 선정되어 이날 할아버지-아버지-손자 3대가 경기장에 나서게 되었다.

대구에 사는 박용현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박씨는 현재 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남산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삼성 라이온즈와 삼미 수퍼스타즈의 경기를 본 게 프로야구와의 첫 인연이었다. 부친 박창기씨는 2남2녀의 늦둥이로 태어난 용현을 야구장에 데리고 다니길 좋아했다. 용현은 그런 아버지를 따라 대구에서 벌어지는 고교야구 경기를 여러 번 관전했다. 박씨는 첫 프로야구 경기를 본 느낌을 이렇게 전했다.

“고교야구는 토너먼트제로 운영되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프로야구가 리그전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분명 어제 서울에서 MBC 청룡에 졌는데 왜 대구에서 경기를 또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프로야구는 리그전을 통해 승수를 쌓아 가는 제도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 개막전이라 여러 가지 이벤트가 많아 꼭 축제 같았습니다. 이만수의 쇼맨십도 기억에 남았고요.”

박씨는 직후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회원으로 가입한다. 그의 앨범에는 어린이회원 시절 집안에서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 지금 장년층 프로야구 매니아들은 박씨처럼 MBC 청룡,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 삼미 수퍼스타즈 어린이회원 유니폼을 입어본 사람들이 많다.

박씨는 어린이회원으로 아버지를 따라 일 년 평균 5번 이상 삼성 경기를 관전했다. 박씨가 집중적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관전한 것은 군에 입대하기 직전이었다. “1993년에 126경기를 할 때였는데, 이 중 홈경기 63게임의 60경기를 관전했습니다.”

박씨가 잊지 못하는 포스트 시즌은 LG와 플레이오프 3~4차전을 벌일 때다. “대학 다닐 때였는데, 마침 플레이오프 일정이 중간고사와 겹쳤습니다. 저는 그때 시험은 안 쳐도 다음에 다시 보면 되지만 플레이오프는 안 보면 다시는 기회가 없겠다 싶어 야구장으로 갔지요.(웃음)”

그해 삼성은 코리안시리즈에 진출해 해태와 맞붙게 된다. 특히 코리안시리즈 3차전에서 선동열과 맞대결한 삼성 투수 박충식은 181구를 던졌다. 삼성 라이온즈 키드 박용현씨에게도 힘들고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1987년 삼성은 김시진·장효조를 롯데에 내주고, 롯데로부터 김용철·최동원을 받았다. “저는 장효조 선수가 고교생일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그런 장효조 선수가 하루아침에 롯데로 간 겁니다. 어린 내게 너무 큰 충격이었고, 그래서 한동안 야구를 일부러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야구를 보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박씨는 아들만 둘을 두고 있다. 큰아들 성호를,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야구장에 데리고 다닌다. 오직 삼성 라이온즈만을 응원하는 그에게 삼성 라이온즈 야구를 정의해 달라고 했다.

“시스템 야구죠. 그렇게 되기까지 아픔이 많았죠. 라이온즈가 포스트시즌에 연거푸 나가지 못할 때는 아예 가을이 싫어지기까지 했고요.(웃음) 김응용식 야구가 삼성에 잘 접목됐다고 봅니다. 지금 SK와 한화가 조금씩 시스템 야구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더군요.”

한화 이글스 구단 홍보실에 ‘이글스에 죽고 못 사는 팬’을 한 명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1순위가 개그맨 남희석(44)씨였다. 한화 팬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남희석씨는 열혈 이글스 팬이다. 요즘 프로야구가 워낙 인기이다 보니 큰 경기 때만 인기관리용으로 테이블석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일부 있다. 하지만 열혈팬이라고 할 정도면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에만 얼굴을 비치는 게 아니라 주중 경기에도 경기장 일반석에 나타나야 한다. 남씨는 응원석에 올라가 직접 응원을 지휘하기도 한다.

남씨의 고향은 충남 보령이다. 대부분의 팬들처럼 프랜차이즈 팀인 한화의 팬이 되었다. 이글스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한화를 응원했다. 그의 한화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그는 자동차에 한화 이글스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이뿐이 아니다. 여행가방에도, 노트북에도, 책상에도 이글스 스티커를 붙였다. 만천하에 나는 한화 팬이라는 걸 자랑하고 다닌다. 이글스 전도사를 자처하며 ‘한빠 남희석’으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2005년 한화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때 대전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남희석이 시구를 했다. 포스트시즌 때 시구의 영광을 누린다는 건 정규시즌의 시구와는 무게감이 다르다.

그래서 2008년에는 한화 팬북에 ‘야구 전도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남씨는 ‘야구 전도문’에서 일곱 살 난 딸 보령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딸은) 발레를 하겠다고 하더니 2주 만에 그만두고 바이올린 한다고 하더니 곧바로 집어던진다. 그래도 나는 뭐라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보령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영리한 아이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하나, 좋아하는 야구팀은 오직 한화 이글스이기를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내 아이와 야구장에서 응원하며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또 패배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야구 전도문’의 백미는 뒷부분에 나온다. 남씨는 딸 보령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아빠의 딱 한 가지 바람은 ‘네 엄마처럼 남자 때문에 팀을 바꾸지 말아라’는 것이다. 세상에 제일 불쌍한 아빠를 만들지 말아라. 지금도 남자친구 때문에 적진에 앉아 있는 수많은 한화 여성팬이여. 당당히 밝히시라. ‘한화 응원 안 할 거면 날 떠나라’고. 끝으로 우리 모두 한화로 야구 전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전도만이 살길입니다.”

(왼쪽부터) 대구구장에 들어서고 있는 박용현씨. LG 트윈스의 통합원정응원단장 박준삼씨. SK 와이번스의 인기스타 ‘연안부두 아저씨’ 안봉수씨.
(왼쪽부터) 대구구장에 들어서고 있는 박용현씨. LG 트윈스의 통합원정응원단장 박준삼씨. SK 와이번스의 인기스타 ‘연안부두 아저씨’ 안봉수씨.

한화 팬들은 ‘보살’ 혹은 ‘부처’로 불린다. 2005년 이후 지난 9년간 잠자리처럼 꼴찌권을 맴돌았는데도 한화팀을 떠나지 않았다는 데서 연유한 말이다. 다른 팀들이 한화를 승수 쌓기의 제물로 삼으며 ‘찌질이팀’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때도 남씨는 한화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남씨는 “이글스는 광어 같아 바닥에서 안 올라와”라고 유머를 날렸다. 2013년 1월 5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는 한화 주최로 ‘류현진 선수 MLB 진출 기념 환송회’가 열렸다. 염홍철 대전시장까지 참석한 이날 행사의 사회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빠’ 남희석이 맡았다.

남씨는 지난해 10월 26일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뉴스가 뜨자마자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선수들도 앞으로 뜨겁게 훈련할 생각에 기뻐 잠 못 이룰 듯^^ 본좌님!!! 드디어 김성근 감독이 오셨습니다~~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파워블로그 ‘윤석구의 야구세상’을 운영하고 있는 윤석구(40)씨 역시 원년 타이거즈 팬이다. ‘윤석구의 야구세상’에 들어가 보면 야구 지식의 깊이와 넓이가 보통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블로그는 한국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미국 MLB와 일본 NPB를 모두 망라한다. 특히 ‘타격이론’ 항목은 그 정교함과 깊이에 입이 벌어질 정도다.

윤씨는 한글을 깨우치기 전부터 야구를 봤다. 1970~1980년대는 지상파 방송에서 야구중계를 했을 때다. 고향이 호남이다 보니 이유도 없이 무조건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는 친척집에 가면 해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윤씨의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해는 1996년이었다. 군복무 중 한국시리즈는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가 맞붙었다. 윤씨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격훈련 복귀 행군하는 날 한국시리즈 1차전이 벌어졌습니다. 고참 중 일부는 미니 카세트를 휴대하면서 이어폰으로 야구중계를 듣고 있었습니다. 한참 행군을 하고 있는데 정준영 병장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관등성명 대고 앞으로 갔더니 ‘최해식이 누구냐? 그놈 3점 홈런 쳤다. 오늘 해태 이기겠다. 좋겠네’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미칠 만큼 행군이 힘들었지만 속으로 너무 좋아 날아갈 듯했습니다. 근데 내무반에선 왕고참이 현대 팬이었습니다. 괜히 해태 팬 네 명을 불러놓고 기합을 주었지요. TV중계에서 마지막 현대 타자가 타석에 섰는데 조금 뒤에 캐스터가 ‘삼진’하는 거예요. 저는 심장이 타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기합받은 해태팬 4명이 화장실에 가서 담배 피우며 울었습니다. 너무 기뻐서요.”

윤씨가 ‘타격이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 하지만 국내에 타격이론서가 전무해 큰 애를 먹었다. 그래서 독학으로 타격이론을 터득했다. 프로선수들도 그의 타격이론에 대해 인정을 한다. 윤씨는 선수와 타격이론을 놓고 5시간 통화를 한 일도 있다.

LG트윈스 통합원정응원단장 박준삼(49)씨. 야구팬이 아닌 사람은 통합원정응원단이 뭔 소린가 할 것이다. LG 트윈스의 경우 공식 응원단은 지역 한계선을 두고 있다. 대전광역시 아래로는 공식응원단을 보내지 않는다. 그러면 부산, 대구, 광주, 창원에서 경기가 열릴 경우는 응원단의 함성 없이 맨숭맨숭 경기를 하나. 바로 자발적인 통합원정응원단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다른 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박준삼씨는 서울 태생이다. 1976년 부모가 부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지금까지 부산에 살게 되었다. 박씨는 현재 부산에서 합성수지 도소매업을 하고 있다. 언뜻 ‘그렇다면 롯데 자이언츠 팬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는 한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일본에서 뛰던 백인천 선수를 좋아했습니다. 유일하게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한국인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MBC 청룡에 입단해 감독 겸 선수로 뛰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무작정 MBC 청룡을 응원하게 된 게 지금까지 흘러왔습니다.(웃음)”

박씨에게 부산에 사는 사람이 왜 한 번도 응원팀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짓궂은 질문을 했다. “다른 건 다 바꿔도 (프로야구) 팀은 못 바꿉니다. 40 넘은 사람은 바꾸기 힘들어요.(웃음) 쉽게 설명하면 저는 한번 사랑을 주면 바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박씨에게 잊을 수 없는 해는 1994년 우승이다.

“그때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이등병 시절 고참 눈치를 보며 프로야구 스코어를 확인하면서 일희일비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행정반에만 신문이 들어왔죠. 신문 스포츠면 보고 스코어 확인하고, 운이 좋으면 스포츠 뉴스에서 경기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 행정반에 들어가곤 했지요. 한번은 행정반에서 신문을 통해 LG 트윈스가 우승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하도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가 중대 선임하사에게 혼난 적도 있었죠.(웃음)”

그에게 LG를 대표하는 선수로 누구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영구 결번된 김용수 투수, 정삼흠 투수, 하기룡 투수, 이상훈 투수, 유지현 내야수 정도가 아닐까요?”

개그맨 남희석씨가 딸 보령과 함께 한화를 응원하고 있다. ⓒphoto 한화이글스
개그맨 남희석씨가 딸 보령과 함께 한화를 응원하고 있다. ⓒphoto 한화이글스

TV로만 프로야구를 시청하는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통합원정응원단의 비용이 궁금해진다. 박씨에 따르면 구단의 공식적인 경비 지원은 없다. 통합원정응원단은 평일 40~50명, 주말 원정응원의 경우 지역과 날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소 200명에서 많게는 1000명 선이다. 박준삼씨는 LG 팬들 사이에선 명사로 꼽힌다. 한 번 TV중계를 할 때마다 몇 번씩 화면에 클로즈업되기 때문이다.

SK 와이번스의 전신은 삼미 수퍼스타즈다. SK 와이번스 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연안부두 아저씨’ 안봉수(53)씨. SK 구단 역시 인터뷰 대상으로 안씨를 추천했다. SK 경기 때마다 최소 몇 번씩 중계카메라에 잡혀 프로야구팬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씨는 ‘연안부두’라는 아이디로 응원 팬 카페를 운영한다. SK의 대표 응원가는 조운파 작사·작곡의 ‘연안부두’. 안씨는 경기 때마다 요란한 복장의 응원복과 배를 그린 모자를 쓰고 나온다. SK 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연안부두 아저씨’로 불리게 되었다. 이쯤되면 누구나 안씨가 인천 토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건축업을 하는 안씨는 경남 진주가 고향이다. 고향에서 살다가 2002년 인천으로 이사를 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안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SK와 인연을 맺은 이야기를 밝혔다.

“월드컵이 막 끝난 시점이었는데, 그때 문학구장을 처음 봤어요. 무엇보다 시설에 놀랐지요. 경기장에 반해 한 경기 두 경기 야구를 보기 시작하다가 그만…. 이후 4~5년은 모든 경기를 봤습니다.”

10개 구단의 열혈 팬들은 저마다 눈에 띄는 의상과 모자, 그리고 피켓을 들고 경기장에 나온다. 어떤 사람은 촌철살인의 응원문구로, 어떤 사람은 기발한 복장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눈에 띄기’라는 면에서 누구도 안씨의 응원복을 능가하지 못한다.

안씨가 대단한 것은 원정경기에서도 똑같은 복장으로 응원에 나선다는 점이다. 장거리 이동도 쉽지 않은데 응원복이 든 가방을 들고 다닌다. 비록 상대팀 응원단에 뒤덮여 있어도 안씨의 SK 응원복장은 두드러진다. 이런 이유로 안씨는 초기에는 미움의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심지어는 ‘너 내려오면 죽는다’는 협박성 문자메시지까지 받기도 했다. 응원가 ‘연안부두’를 부를 때 상대팀 응원석에서 먹다 남은 족발·빈 깡통·떡볶이 세례를 받기도 했다. 안씨가 야구팬들에게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은 도쿄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였다. 안씨는 도쿄돔까지 가서 대형 태극기를 들고 한국대표팀을 응원했고 이 모습이 TV중계 카메라에 잡혀 야구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공식응원단이 가지 못하는 지역에서 경기가 열릴 때 안씨는 응원단을 모집해 원정응원을 간다. SK 구단의 경우 원정응원단의 경비 중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SK에 대한 원정응원의 공로를 인정받아 안씨는 문학구장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원년 팬을 추천하지 않았다. 롯데 팬들은 지난해 말 구단의 퇴행적 운영을 놓고 구단주 퇴진을 요구하는 등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롯데 팬들은 올해 초에는 부산 시민들이 롯데 구단을 인수하자는 시민구단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여전히 롯데 팬들은 롯데 구단에 감정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보였다.

지난 4월 25일 두산 베어스 시구자는 배우 한정수(43)씨였다. 조연급으로 활동 중인 한정수씨는 연예계에서 야구 매니아로 알아주는 사람이다. 연예인 야구단에서 활동할 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도 야구 유니폼을 입고 출연할 정도다. 한씨 역시 어렸을 때 두산 베어스 어린이회원으로 시작했다. 한씨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받은 빨간 점퍼를 굉장히 소중히 여겨 소풍 갈 때만 입곤 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는 2015년부터 10개팀으로 늘어났다. 지금 원년 프로야구 키드들은 중년이 되었고, 그들의 자녀가 야구장에서 함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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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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