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박정진
한화 박정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일반 사람들만 힘든 것이 아니다. 이런 폭염에 KBO 프로야구 순위 경쟁의 판이 흔들리고 있다.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전반기 순위를 살펴보면 한국시리즈 5연패에 성공했던 삼성 라이온즈가 1위를 지켰지만 2위 두산 베어스와 불과 한 경기 차, 3위 NC 다이노스와는 1.5경기 차, 4위 넥센 히어로즈는 4경기 차, 5위 한화 이글스와는 5.5경기 차였다.

하지만 올스타 휴식이 끝나고 불과 3주가 안 되는 사이 순위 경쟁은 요동을 치고 있다. 일단 삼성이 2위 그룹인 두산, NC, 넥센과 4경기에서 4.5경기 차로 승차를 점점 벌리고 있다. 5위를 지키며 돌풍을 일으켰던 한화는 무더위에 함께 흔들리며 8월 5일 현재 SK 와이번스에 반 경기 차지만 5위 자리를 내주고 1위 삼성과 승차가 10경기 차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기아 타이거즈에도 반 경기 차로 맹추격을 당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올 시즌 프로야구는 10구단 KT 위즈가 참가하며 역대 한 시즌 최다 경기인 144경기의 대장정에 돌입해 있다. 이는 시즌 경기 수가 가장 많은 메이저리그의 팀당 162경기에서 불과 18경기가 적은 것이고 일본 프로야구와는 같은 경기 수이다. 일단 지난해 128경기에서 16경기가 늘어났다. 프로야구 원년과 비교하면 팀도 4개가 늘어났고 경기 수는 무려 64경기가 늘어난 것이다. KBO의 아마추어팀 창단 노력으로 늘어났지만 현재 고교 야구팀은 60개에 그치고 있다. 용병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한마디로 프로에서 뛸 자원들이 부족하고 선수층이 생각처럼 두껍지 못한 것이다.

야구는 9명이 뛰는 스포츠지만 긴 시즌과 타 프로 종목과 비교하면 많은 경기 수로 주전을 받쳐주는 두꺼운 후보군이 필수이다. 주전과 후보와의 실력 격차가 적고 불의의 부상 등에 대비를 할 수 있는 팀이 시즌이 흐를수록 강점을 보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더위를 이겨내는 노하우가 있는 베테랑들이 많은 팀이라면 더더욱 유리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삼성이 페넌트레이스에서 근래 수년간 강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한화 권혁
한화 권혁

게다가 올 시즌은 비로 순연된 경기가 역대 최다인 67경기에 달한다. SK는 가장 많은 18경기가 연기됐고 가장 적은 롯데조차 11경기가 밀려 있다. 게다가 8월 4일부터 2연전 체제에 돌입하며 기존의 3연전 체제보다 더 많은 이동을 해야 한다. 팀 스케줄에 따라 4번이나 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미 많은 경기가 순연되어 있어 향후 주말 경기가 비로 연기되면 선수들에게 정기 휴일인 월요일도 쉬지 못하고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야말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때까지 강행군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야수도 힘들겠지만 남은 시즌 일정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마운드가 버텨줄 수 있느냐다. 특히 지난 시즌부터 KBO리그는 극명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2015시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낮은 평균 자책점을 보이는 팀이 SK이지만 팀 평균 자책점이 4.40에 달하고 2위 삼성이 4.41이다. 막내팀 KT는 5.82로 치솟아 올라 있고 롯데도 5.05의 성적이다.

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을 투구하고 3자책점 이하로 막아내는 퀄리티 스타트(QS)의 경우는 한화가 단 18번에 그쳐 신생팀 KT보다도 5경기가 적고, 그 다음인 LG 트윈스보다 14경기나 떨어진다. 선발이 오래 버텨주지 못하는 상황은 불펜의 과부하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선발투수보다 짧은 이닝과 적은 투구수를 던지지만 불펜 투수들은 훨씬 더 자주 경기에 투입된다.

NC 임정호
NC 임정호

결국 누적된 이닝과 피로도는 더운 날씨와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구위의 저하와 부진한 성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문제는 한번 떨어진 체력을 시즌 중반에 회복하는 데는 많은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갈수록 뜨거워지고 치열해지는 페넌트레이스 중반에 주축을 이루는 불펜 투수에게 체력과 구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을 만큼의 두꺼운 투수층을 갖춘 팀은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

8월 5일 현재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팀은 롯데로 99경기, 가장 적은 경기 수의 팀은 SK의 94경기이다. 10개 구단 투수 중 팀이 치른 경기의 절반 정도인 47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는 모두 10명에 달한다. 가장 많은 선수는 한화의 좌완 박정진으로 무려 64경기에 출장했다. NC의 최금강과 임정호가 공동 2위로 58경기 출장이다. 4위 권혁도 57경기에 출장했다.

경기 출장 수가 많은데 이닝 소화마저 많다면 인간인 이상 극심한 체력 저하는 피하기 어렵다. 최금강이 68이닝, 임정호가 38이닝을 소화한 반면 박정진은 83이닝, 권혁은 86이닝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이들이 한화 마운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후반기 들어 승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앞서 지적한 것처럼 선발투수의 퀄리티 스타트와 평균 이닝이 가장 짧은 팀의 입장에서는 불펜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팀보다 더 클 수밖에 없어 이런 폭염 속의 일정상 강행군은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삼성 윤성환 ⓒphoto 연합
삼성 윤성환 ⓒphoto 연합

야구의 페넌트레이스는 마라톤에 비교된다. 초반의 지나친 스퍼트는 체력의 급격한 저하를 불러와 초반 선두권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선수를 마라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역할이 우승 후보를 도와주는 페이스 메이커가 아니라면 무리한 질주는 너무 뻔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모든 팀이 같은 조건이다.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경기를 치르는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막판 스퍼트를 위해 힘을 아끼고 관리를 한 팀이 뒷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시다발적으로 포스트 시즌을 치르는 메이저리그와는 다르게 페넌트레이스 1위 팀이 절대 유리한 우리의 포스트 시즌 시스템을 감안하면 힘을 아낀 팀이 유리할 것이다. 과연 지옥의 일정을 이겨낸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시간만이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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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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