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을 상징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 ⓒphoto AP·연합
EPL을 상징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 ⓒphoto AP·연합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축구 리그이자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리그다. 어느 나라 축구 리그도 따라오지 못할 천문학적 자금이 몰려드는 리그이기도 하다. EPL은 현재 총 212개 나라에서, 약 47억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시청하고 있다. 유럽 이적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가 계산한 EPL 20개 구단의 자산 가치는 42억6000만유로(약 5조4762억원)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구 리그 중 하나다.

최근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등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EPL 소속 팀들은 열세에 있다. 그럼에도 EPL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독일 분데스리가, 그리고 이탈리아 세리에A 등 유럽 빅리그들을 제치고 가장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크게 다섯가지다.

첫째, 글로벌화 전략을 꼽을 수 있다. EPL은 적극적으로 세계화를 추진하는 리그다. EPL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국적이 99개에 이른다. 이들은 자국에서 축구 영웅 대접을 받으며 EPL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역시 박지성을 통해 EPL 팬이 급증했다. 박지성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EPL을 알린 역할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따르면 전 세계 3억3000만명의 맨유 팬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에 있다고 한다.

극성스러운 언론·화려한 중계

둘째, 미디어의 발전도 EPL의 팬을 세계로 넓히고 있다. 잉글랜드의 언론은 유럽에서도 극성맞을 정도로 발달해 있다.

이 같은 잉글랜드 언론은 선수와 감독들에게 부담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면에서 극성맞은 잉글랜드 언론은 EPL 선수들의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팬들의 관심을 키우고 있다. 첼시의 주장 존 테리가 과거 팀 동료였던 웨인 브리지의 애인과 저지른 불륜 사건을 언론이 소개하고, 이후 이들이 맞대결을 펼칠 때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두 선수에게 쏟아졌던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셋째, 화려한 중계 기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스카이캠(카메라)은 물론 다이아몬드캠과 스테디캠, 수퍼 슬로모션 카메라에 초고속 카메라까지 다양한 형태의 TV 중계 카메라 수십 대가 동원돼 화려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 미국 할리우드에서까지 EPL의 중계 기술을 극찬할 정도다. EPL이 다른 리그에 비해 더 역동적이고 스피디한 축구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이유가 바로 중계 기술 덕분이다.

넷째, EPL이 영어로 소개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독일어의 경우 언어적 진입장벽이 높다. 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나라 사람들이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한다. EPL 정보를 쉽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다른 리그보다 더 치열한 순위 경쟁 역시 EPL의 매력이다. 기존 빅4(맨유·아스널·리버풀·첼시)로 분류되던 상위권 팀들이 최근 세대교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중·하위권 팀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EPL 중계권료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 리그 상위권 팀 못지않은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이 자금을 통해 전성기가 조금 지났거나 다른 리그 상위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스타급 선수들을 데려오고 있다. 중·하위권 팀들의 전력이 자연스레 상승해 그 어떤 리그보다 치열한 순위 경쟁이 벌어지는 EPL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EPL 특유의 거친 상남자 축구 스타일, 또 2~3일 간격으로 경기를 하는 살인적 일정 등이 팬들의 관심을 키우는 이유다.

박지성 출전 경기 시청하다 축구앱 제작

EPL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뜨겁다. 이 뜨거운 EPL의 매력에 빠져 인생 진로까지 바꾼 이들이 한국에도 꽤 있다. 먼저 2005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엠파스’에 ‘맨유 스토리’라는 제목의 웹툰을 그렸고, 국내 최초의 축구 웹투니스트가 된 김익수(익뚜)씨를 꼽을 수 있다. 김익수씨는 “데이비드 베컴에 빠지면서 EPL과 맨유를 처음 알게 됐다”며 “이후 박지성이 맨유에 입단하며 자연스럽게 맨유를 더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축구 웹투니스트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 일러스트 관련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러브사커’라는 축구 카페에 취미 삼아 그림을 그렸지요. 그때 서형욱씨(현 MBC 축구해설위원)의 소개로 2005년부터 축구 웹툰을 연재하게 됐습니다. 이후 축구 웹툰을 그리는 게 제 직업이 된 것이지요.”

‘오늘의 해외축구’와 ‘오늘의 축구’ 앱을 제작해 배포하는 ‘YAM Studio’ 이동준 대표도 EPL을 통해 진로가 바뀐 사람이다. 그는 “1990년대 월드컵에서 활약한 스타 선수들이 뛰는 유럽 리그를 보며 자연스럽게 해외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인터넷이 보급된 1999년 이후 외국 선수들의 경기를 더 많이 찾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외국 선수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맨유의 미드필더였던 라이언 긱스의 팬이 됐다.

이동준씨는 ‘위닝 일레븐’이라는 게임 시리즈에 심취한 것이 EPL에 더 빠져들게 된 이유라고 했다. “현실과 게임을 오가면서 선수와 팀 그리고 EPL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2005년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하면서 그해부터 몇 년간 맨유의 전 경기를 시청했지요.” 그는 “EPL을 시작으로 해외 축구 리그와 국내 리그 모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축구를 보는 것에 더 빠져들었다”며 “이것이 축구 애플리케이션 사업에 직접 뛰어들게 된 계기”라고 했다.

아이들미디어 스포츠PD로 K리그 챌린지 중계에 참여하는 임정빈씨 역시 EPL이 직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데니스 베르캄프에 빠져 아스널 팬이 됐다”며 “이후 하이버리(과거 아스널 홈구장)의 독특한 카메라 워크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는 “EPL의 박진감 넘치는 중계가 스포츠PD로 진로를 정하는 데 상당 부분 영향을 줬다”고 했다.

지금은 폐간된 축구 주간지 ‘풋볼 위클리’의 기자였던 이승민씨(현재 호주에서 기술영업)도 진로 결정에 EPL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축구에 빠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코틀랜드 축구 영웅 케니 달글리시의 축구에 반해 리버풀과 셀틱을 좋아합니다. 예전 영국 여행을 하다가 셀틱의 현지 팬들과 만나면서 광적인 셀틱 팬이 됐어요. 이후 현지 팬들과 포럼을 통해 계속 교류했고, 서울에서는 셀틱 서포터스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전 세계 셀틱 서포터스 클럽 컨벤션에 서울 셀틱 서포터스 클럽 창립인 자격으로 참가했을 정도지요.” 2015 아시안컵 당시엔 호주 공영방송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라디오에 패널로 출연하는 등 그는 여전히 축구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K리그 연맹에서 발간한 ‘프로축구 30년사’ 집필에 참여한 작가 김현정씨도 EPL에 빠지며 많은 것이 달라진 사람이다. 그는 “2010년 월드컵을 보며 뒤늦게 축구의 매력을 알게 됐다”며 “가장 쉽게 방송에서 접할 수 있던 리그가 EPL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EPL로 축구를 보게 됐다”고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프로축구 3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까지 참여하게 됐다.

EPL은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 중 하나다.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박지성이라는 스타가 있었고, 지금도 기성용과 이청용 등이 활약하며 한국인에게 그 어느 리그보다 친숙하다. 주말이면 밤낮이 바뀌어야만 즐길 수 있는 EPL. 그 EPL의 성공요인과 EPL에 빠진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속에서 한국 축구 리그가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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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 골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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