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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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올림픽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리우올림픽(8월 5~21일)은 120년 올림픽 역사상 남미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이다. 지금까지 북중미에서는 모두 여섯 번의 하계올림픽이 열렸다. 미국 4회, 멕시코와 캐나다가 각각 1회.

한국은 최근 올림픽 종합성적에서 아테네올림픽 9위, 베이징올림픽 7위, 런던올림픽 5위를 기록했다. 세계 10위권 스포츠강국으로서 리우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그 어떤 올림픽보다 크다. 리우올림픽은 골프와 럭비가 새롭게 종목으로 채택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정행(73) 대한체육회장은 2013년 대표선수 출신으로 첫 대한체육회장이 된 인물이다. 1964년 말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에 의해 태릉선수촌이 세워졌을 때 김 회장은 선수로서 1호로 입촌했다. 52년 후 김 회장은 태릉선수촌, 관계당국 등을 분주히 오가며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김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 13층 회장실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회장실에서는 올림픽공원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터뷰를 시작할 즈음 창밖은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런던올림픽에서 5위를 기록해 국민의 기대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회장으로서 성적에 부담을 느끼지 않나. “그렇다. 부담이 굉장히 크다. 그런데 리우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중에서 한국에는 가장 여건이 나쁘다. 시차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24시간 이상을 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아시아권에서 열린 올림픽 때 성적이 좋았다, 12시간의 시차가 있는 유럽에서도 성적이 좋았다. 지금은 완전 반대쪽에서 올림픽이 열리니까 선수들이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이 많이 된다.”

- 1월 말 현재, 출전권을 딴 종목 수는 회장의 기대에 비해 어떤가. “현재까지는 지난 대회보다 못하다. 특히 구기종목이 부진하다. 축구는 내일 아침에 카타르와 해봐야 한다. 남자 핸드볼과 남자 하키가 전부 예선에서 탈락했다. 6월에 여자 배구와 여자 농구가 남아 있다. 그런데 남자들은 농구와 배구에서 모두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남은 건 여자들이 통과해 주는 수밖에 없다. 내일 축구가 이겨야 하는데.”

한국 축구대표팀은 1월 27일 새벽 카타르와의 4강전에서 3 대 1로 이겨 올림픽 출전권을 땄다.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에 진출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 선수 출신 회장으로서 시차적응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보통 국내에서 훈련하는 시간은 국내에서 경기하는 시간에 맞춰 해왔다. 그걸 다시 맞춰야 한다. 중량 빼는 시간도 중요하다. 보통 다른 종목들이 유럽을 많이 간다. 그런데 남미는 생소하다. 시차가 그렇게 뒤바뀌는 건 굉장히 생소하기 때문에 특히 체급 경기는 굉장히 민감하다. 예를 들어 몇 ㎏ 빼는 건 쉽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100~200g 빼는 건 굉장히 큰 문제다. 선수들이 잘 적응할까 걱정이 앞선다. 적응훈련은 각 연맹마다 알아서 하고 있다. 양궁은 벌써 리우로 떠났다. 출전권을 딴 선수들은 이미 남미 인근 국가에 가서 적응훈련을 하고 있다.”

- 특별전세기로 이동하나.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쿼터(출전권)를 얼마만큼 따느냐에 달려 있다. 규모는 선수단과 임원진을 포함해 300명 안팎으로 본다. 본단 및 선수단장과 지원팀은 7월 말에 현지로 출발할 예정이다.”

- 브라질 리우까지 가는 선수단의 경로는 정해졌나. “대략 세 가지 루트를 생각하고 있다. 미국을 거쳐서 가는 방법, 두바이를 거쳐 가는 방법, 파리를 거쳐 가는 방법이다. 미국은 보안검색이 엄격해서 선수들이 굉장히 힘들어 할 수 있다. 그래서 두바이를 통해서 가는 것과 파리를 거쳐 가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파리테러 이후 파리도 보안검색이 강화되었다고 하는데. “공항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선수들이 굉장히 예민하다. 시간이 있으니까 파리 경유의 장단점도 검토할 것이다.”

- 현지 적응에는 음식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태릉선수촌 주방팀이 그대로 옮겨가게 되나. “런던올림픽이나 베이징올림픽 때 주방시스템이 그대로 현지로 갔다. 앞으로도 그대로 갈 생각이다. 남미는 계약을 해도 수시로 바뀌어서 계약하기가 어렵다. 다각도로 선수촌 근방에 한국 식당을 수배하는 중이다. 선수들이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같이 갈 계획이다.”

우리는 베이징·런던올림픽을 통해 한국이 스포츠 분야에서도 선진국이라는 걸 확인했다. 펜싱·수영과 같은 선진국형 종목에서 메달을 만들어냈다. 과거에 메달밭으로 불렸던 격투기에서는 메달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 리우올림픽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나. “그렇다. 리우에서도 같은 양상이라고 본다. 과거 공산주의를 경험한 동부 유럽 국가들이 체급경기, 격투기 종목에서 강세를 보인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금메달 하나에 포상금으로 6억원을 준다. 은메달 3억원, 동메달 2억원을 준다. 그러니 죽자사자 메달에 매달린다. 이제 우리나라는 격투기 종목은 기본적인 자원이 없다. 그런 운동을 애들이 안 하려고 한다. 체중을 줄이고 몸을 부딪치는 경기를 안 하려고 한다. 프로로 갈 수 있는 골프나 축구나 야구 같은, 소위 돈이 되는 종목, 언론의 조명을 받는 종목으로 간다. 힘들고 어렵고 체중 빼는 종목은 안 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해야 한다. (우리 국민 중에는) 10위권 안에 들어가니까 가만히 있어도 따는 거 아니냐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 격투기 종목의 전반적인 약세 속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체급경기는 뭐가 있나. “지금 남자 유도가 7체급이 다 메달권이다. 여자는 한두 개가 랭킹권이다. 레슬링은 여자는 약하고 일본이 강세고, 그레코로만형에서 한두 개 생각한다. 복싱은 워낙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한두 체급에서 이변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이다. 이성배 감독한테 물어보니 ‘일 한번 내겠다’고 하더라.(웃음) 나는 무조건 훈련만 시켜서도 안 된다는 얘기를 강조한다. 선수들이 심리적·정서적으로 잘 준비해자기가 가진 실력을 백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체육회장이 유도협회 회장 출신이기 때문에 유도선수들은 더욱 책임감을 느낄 것 아닌가. “나는 (그걸) 느끼고 있다. 용인대 교수로 있을 때 대표선수를 발탁했고, 용인대 총장에 있을 때 메달리스트들에게 학생을 가르칠 기회를 줬다. 전기영 선수라든가 장성호 선수는 다른 대학에 있었지만 내가 학교로 데리고 왔다. 나는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는 반드시 보상을 해준다.”

-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냉정히 손연재 선수의 메달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손연재 선수는 워낙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흡한 곤봉에서 노력하면 메달권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본다.”

리우올림픽 엠블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정행 회장.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리우올림픽 엠블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정행 회장.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골프가 리우올림픽에서 100년 만에 첫 정식종목이 됐다. 특히 여자 골프는 메달 가능성이 높지 않나.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높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박세리 선수가 국민들에게 용기도 주고 희망도 준 게 골프다. 이번에도 그걸 기대한다.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이 미국 가서 좋은 성적을 내니까 미국 애들이 겁을 내기도 한다. 여자 대표팀 감독은 박세리가 맡고, 남자 대표팀은 최경주가 맡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다. 우리 동포지만 뉴질랜드의 리디아 고 때문에 걱정이 되긴 한다. 뉴질랜드 리디아 고만 안 나오면 충분히 금·은·동 다 타지 않겠느냐 싶다.(웃음)”

- 국가대표 출신 첫 체육회장인데, 선수촌에 갈 때마다 아무래도 선수들이 회장을 보는 눈빛이 다를 것 같다. “친근감을 보인다. 나를 보는 눈이 다르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면 나도 저 회장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겠나. 그동안 선수들의 애로사항이라든가 선수 끝나고 난 다음에 뭘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정부에서 도움을 줘서 격투기 대표 출신 선수들을 경찰 공채로 50명을 특채했다. 지금 충주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 특채된 대표선수 출신 50명은 종목별로 나누면 어떻게 되나. “이전 회장들은 그런 적이 없다. 런던올림픽 금메달 황희태 선수를 비롯해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올림픽 3위 이내 입상 선수들이 본인이 원할 경우 대개 특채가 되었다. 태권도가 25명, 유도가 15명, 검도가 10명이 특채됐다. 일본 같은 경우도 경시청에 가면 선수 출신 경찰이 많다. 경시청에 가면 이런 운동을 한 경찰이 많다는 걸 홍보한다. 지난해 8월에 교육을 들어갔다. 그전에는 50명이나 뽑은 경우가 없었다. 각 연맹 단위에서 움직인 적이 있었지만 체육회에서 움직인 건 처음이다.”

- 지금 선수들이 회장이 선수생활 할 때와 완전히 다르다. 풍요의 시대에서 태어난 2030세대와 대화하면서 무엇을 느끼나. “요즘 애들은 감독이나 코치를 위해서 운동하는 게 아니고 자기 스스로 판단해서 운동한다. 스스로 깨달아가면서 운동을 하는 추세다. 옛날에는 솔직히 말해서 재능이 있으면 감독 코치들이 스파르타식으로 시켰다. 요즘은 그게 안 통한다.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자란 환경이 다르다. 사회 여건도 달라졌고, 스스로가 적응하면서 훈련에 임하고 선수생활을 한다.”

- 태릉선수촌 프로그램도 과거와는 굉장히 다르겠다. “그렇다. 상담과 교육을 중시한다. 내가 체육회장이 되고 첫 번째로 추진한 게 교육센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선수로서 지켜야 할 일, 심판으로서 지켜야 할 일 등을 교육시킨다. 교육을 통해서 성범죄 예방을 포함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느낄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게 중요하다.”

- 체육회장 출마하면서 체력장을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하지 않았나. “요즘 한 집에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끝이다. 영어 공부나 하라고 하지 운동하라고 하나. 그래서 체력장 얘기를 한 거다. 뜀박질도 한번 해보고 자기가 어느 정도 운동에 대해서 실제로 느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체력장이라도 운동을 해봄으로써 운동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 들면 고혈압과 같은 각종 성인병이 생긴다. 그러니 스스로 어릴 때부터 운동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게 중요하다. 체력장 부활을 주장하고 있지만 나 혼자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웃음)”

- 브라질이 중국 경제가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올림픽 개최를 걱정하기도 한다. “브라질은 올림픽을 통해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려고 개최를 결정했다. 아마 브라질도 120년 만에 남미에서 처음 열린 대회라 국가가 신경을 쓰고 국민이 합심하면 잘 치를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대통령도 이게 업적인데 국민들이 힘을 합해서 대회를 잘 치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리우올림픽은 런던이나 베이징과 달리 선수단의 안전 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나도 리우를 몇 번 가봤다. 밤에는 아예 못 나간다. 아주 위험하다. 밤에 범죄지역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특별히 교육을 시키고 우리 임원들이 그 점을 신경을 써야 잘하고 돌아올 수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안전이다. 만반의 준비를 우리 스태프들이 하고 있다.”

올림픽 메달 집계 방식이 나라별로, 대륙별로 조금 차이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메달 총수를 따지는 반면 한국, 중국, 프랑스 등은 금메달만을 최고로 친다. 특히 우리나라는 금메달만 지나치게 우대해 동메달을 딴 선수는 고개도 못 들고 귀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우리는 금메달만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닌가. 동메달 따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그게 종이 한 장 차이다. 은메달 딴 사람이 금메달보다 못한 경우도 있지만 동메달 선수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기록 경기는 아니지만 토너먼트가 특히 그렇다. 한국, 중국, 프랑스 등이 금메달을 강조한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메달 수를 가지고 순위를 매긴다. 금메달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동메달만 따도 영웅으로 부각할 수 있도록 주위의 시선 변화가 필요하다. 동메달을 딴 선수는 맨날 무슨 죄를 진 것처럼 고개 숙이며 들어온다.”

김 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직접 고개를 떨구고 힘없는 제스처를 취했다. 영락 없는 동메달리스트였다. 계속 말이 이어진다.

“아차 하는 순간 동메달로 떨어져서 아쉬운 선수들이 많은데, 그냥 메달을 따면 다 같이 취급해 줘야 한다. (금메달만 높게 평가하는 모습을) 잘못된 풍토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동메달을 따도 금메달 딴 것처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게 중요하다. 귀국할 때 고개 숙이며 들어오지 않도록 많은 격려 부탁한다.”

리우올림픽과 관련해 준비해 간 질문이 다 바닥났다. 평소 궁금했던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회장은 1943년생인데도 가슴둘레와 허벅지가 웬만한 현역 유도선수 못지않다.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받았기 때문일까.

- 좋은 체격은 선천적인가. “아니다. 후천적이다. 육남매 중에 외동아들이다. 내 손을 만져봐라. 여자 손이다. 어려서부터 남한테 지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고무줄을 남이 한 번 당기면 난 열 번 당겼다. 1950~1960년대 영양보충 개념도 별로 없던 시절에 남이 달걀 하나 먹을 때 난 두 개 먹었다. 이기려고 그랬다. (손을 보여주며) 손도 조그마하지 않나. 그래도 잡히면 못 빠져나갔다. 내가 현역 시절 라이트헤비급이었다. 키가 작은 사람은 큰 사람한테 불리하다. 붙여주면 내가 넘어간다. 그걸 떼어내기 위해서 벤치프레스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한참 하다 보면 숨이 가쁘고 힘들어지는데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했다. 나는 어디에서도 내가 강해지려고 어마어마한 노력을 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내 분야에서 남한테 지는 거 자체를 싫어했다. 지금의 나는 노력의 결과다.”

- 1960년대 대한민국 대표선수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나. “태극기 달린 유니폼을 입고 명동을 돌아다녔다.(웃음) 그만큼 대표선수 자부심이 굉장했다. 내가 세계선수권 메달을 땄을 때 고향 포항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다. 나는 선수로서 운이 없었다. 내가 선수 한창 시기인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는 유도가 빠졌다.(웃음)”

한 시간의 인터뷰가 끝났을 때 눈이 그쳤다. 그는 다음 일정을 위해 올림픽회관을 떠났다.

조성관 편집장 / 인터뷰 녹취·정리= 김태형 기자, 봉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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