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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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 박병호(30)가 빠른 적응력으로 메이저리그에 한국인 거포의 힘을 보여주며 ‘박뱅’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 시즌 개막 후 5월 2일까지, 한 달 동안 20경기에서 69타수·16안타·타율 2할3푼2리·6홈런·9타점·6볼넷·23삼진·OPS 0.849. 타율은 낮지만 홈런과 장타율(0.551)이 빼어나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 빠르게 적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빠른 공을 밀고 나가는 탁월한 힘”이라고 평가했다. 보통의 타자라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강속구에 배트가 휘청하는 것이 보이는데 박병호는 다르다. 한국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메이저리그에서도 강하게 공을 밀어낼 만큼 힘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라앉는 공을 끌어올릴 만큼 힘을 바탕으로 스윙을 하기 때문에 홈런 생산량이 높아지고 있다. 허 위원은 “박병호가 시범경기 첫날 삼진 3개를 먹고 난 뒤 스윙의 폭을 줄였다”며 “배트가 돌아 뒤에서 나오는 동작을 줄이고, 오른쪽 팔꿈치를 배꼽 쪽으로 바짝 붙였다”고 했다. 박병호의 스윙 궤적은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어깨 뒤, 포수 마스크 쪽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은 홈플레이트 앞쪽에서 배트가 나온다. 스윙의 폭을 간결하게 줄이며 보다 빠른 스윙이 가능해진 것이다.

타격 폼 수정해 MLB No2 장거리 타자로

메이저리그 투수들에 맞춰 스윙 궤적을 살짝 바꾸면서 타격 폼이 진화한 것이다. 한국 투수들의 구속보다 10㎞쯤 빠른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투구에 빠른 배트 스피드를 만들어내며 적응한 것이다. 140㎞로 날아오는 공을 치려다 150㎞대 공을 치려면 스윙이 달라야만 한다. 박병호가 이 부분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된 큰 이유가 홈런 비거리다. 같은 홈런이라도 다른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압도하는 비거리를 보이고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인 ESPN의 홈런 트래커에 따르면 박병호의 1~6호 홈런 평균 비거리는 429.2피트(약 130.8m)에 달한다. 홈런 4개 이상을 친 타자 중 최고의 타자로 불리는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의 431.8피트(131.6m)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지난 4월 17일 LA 에인절스전에서 친 466피트(141m)짜리 시즌 2호 홈런은 미네소타 홈구장 타깃필드 개장 이후 최장거리 홈런으로 기록됐다. 좌측 103m, 좌중간 115m, 중앙 125m, 우중간 111m, 우측 100m, 펜스 높이 7m나 되는 타깃필드에서만 홈런 5개를 터뜨릴 만큼 장거리 타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병호의 홈런은 비거리만 먼 게 아니다. 타구의 속도 역시 빠르다. 지난 5월 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친 홈런 속도가 112.8마일(약 180㎞)이었다. 현역 시절 최정상급 타자였던 MBC스포츠플러스 양준혁 해설위원은 “박병호는 공을 때리는 순간, 들어올리는 스윙을 하면서 손목으로 공을 누른다”며 “공을 제대로 눌러 주면 타구에 회전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손목 힘을 타고난 박병호가 타격 기술에서도 공에 회전을 더하는 타법까지 구사하며 빨랫줄 같은 타구가 많이 나온다는 게 양준혁 해설위원의 설명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벤치프레스 150㎏을 들 만큼 일찍 웨이트트레이닝에 눈을 뜬 게 박병호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힘이 이 같은 타격을 가능케 한 이유다.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로 불렸던 미네소타 폴 몰리터 감독은 박병호를 두고 “배트 스피드가 빠르고, 배트를 내미는 반응 속도가 뛰어난 게 사실”이라면서도 “박병호는 게스히터(Guess Hitte·투수가 어떤 구질을 던질지 미리 예측해 타격에 임하는 타자)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감독으로서 박병호의 예측 타격 능력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박병호는 아직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특성을 조금 더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노림수 타격만큼은 이미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마쓰이 히데키 넘어설 잠재력

MBC 허구연 위원은 한국에서의 박병호와 미국에서의 박병호를 비교하며 “한국 투수들은 박병호를 만나면 집요하게 몸쪽으로 공을 붙였고, 박병호가 이것을 쳐내기 위해 몸통을 회전시키는 타격을 했다”며 “하지만 몸쪽 스트라이크존이 미국은 한국보다 넓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런 공을 안 쳐도 되기 때문에 박병호로서는 더 편한 공략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했다. 여기에 변화구 대응능력이 향상된 것이 메이저리그 신인임에도 타격에서만큼은 돋보이는 부분이라는 평을 했다.

물론 약점도 있다. 허 위원은 “박병호의 스윙 궤적은 스트라이크존 위로 들어오는 빠른 공에는 약점을 갖고 있다”며 “어퍼스윙(들어올리는 형태의 스윙)을 하는 박병호가 빠르고 높은 공에는 손을 덮는 동작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득점권 상황에서의 타격에 대한 부분도 짚었다. 허 위원은 “득점 상황에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하지만 상대팀이 위기에 몰렸을 때 박병호를 만나면 볼 배합 등 어려운 승부를 가져간다”고 했다. 이것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나아질 부분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지난 5월 2일 디트로이트전에 첫 득점권 안타를 치기 전까지 박병호는 득점권에서 16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미네소타 폴 몰리터 감독은 실제 시즌이 시작되고 4월을 보낸 뒤 “박병호가 대단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며 “공격적으로 타격하는 모습이 돋보일 만큼 자신감을 얻었고, 투수들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알아서 적응해 나가고 있다”며 그에 대한 믿음을 보이고 있다. 야구 외적인 언어에 있어서도 단답형에서 벗어나 여러 단어를 조합해 말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제 개막 한 달이 지났다. 박병호에 대한 진짜 평가는 시즌이 끝난 뒤 이뤄진다. 박병호를 향한 기대치는 점점 더 높아져간다. 4월 한 달 동안 아메리칸리그 신인 타자 중에서 최다 홈런을 터뜨리며 거포 본능을 과시했고, 신인왕 레이스까지 기대케 하고 있다. 비교 대상은 2003년 뉴욕 양키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일본인 거포 마쓰이 히데키다. 마쓰이는 2004년 아시아 타자들 중 메이저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홈런 31개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 박병호의 홈런 페이스라면 충분히 마쓰이를 넘어설 수 있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 스승이던 염경엽 감독도 “박병호가 140경기에서 450타석 정도 들어서면 홈런 30개도 가능할 것”이라며 “홈런은 경기 수보다 타석 수에 비례하기 때문에 병호가 주전으로 계속 나설 수 있다면 30홈런도 충분히 칠 수 있다”고 말한다.

허구연 위원은 “타율은 낮지만 아직 시즌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 상당히 잘하고 있는 것”이라며 “적응을 완전히 마치면 타율도 2할5푼에서 2할6푼까지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허 위원은 이 정도만 해도 대성공이지만, 여기에다 홈런을 30개쯤 치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신인왕에 도전해 볼 수도 있음을 말했다.

1986년생, 만 30살인 박병호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이제 첫 시즌을 보내고 있는 신인이다. 그는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나이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했다”며 “메이저리그는 경력이 긴 선수들이 베테랑 대접을 받는 곳이니 나는 당연히 진짜 신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 왔다. 타격 기술에서는 이미 신인의 티를 상당 부분 벗은 게 사실이다. 힘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통한다는 것도 증명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그의 투수들도 쉽게 상대하지 못하는 강타자이자 껄끄러운 타자 박병호의 이미지가 빨리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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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학 osen 야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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