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메이저리그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바티스타가 홈런을 친 뒤 날아가는 타구를 보며 배트를 던지고 있다. ⓒphoto montreal gazette.com
지난 10월 14일 메이저리그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바티스타가 홈런을 친 뒤 날아가는 타구를 보며 배트를 던지고 있다. ⓒphoto montreal gazette.com

지난 5월 16일 MLB 텍사스 레인저스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파크는 2015년 플레이오프 디비전 시리즈의 상대였던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방문으로 한층 달아올랐다. 이날 경기는 다시 포스트시즌에서 만나지 않는다면 올 시즌 두 팀 간의 마지막 대결이었다. 앞서 두 팀 간의 여섯 번의 대결에서는 토론토가 네 번의 승리를 가져갔다.

3-6으로 끌려가던 텍사스 레인저스는 7회 말 대거 4득점에 성공하며 한 점 차의 역전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바로 돌아선 8회 초에 발생한다. 텍사스의 투수 매트 부시는 토론토의 간판 타자인 호세 바티스타를 맞혔고, 잠시 후 후속 타자의 땅볼이 나왔을 때 바티스타는 병살을 막기 위해 2루에 강한 슬라이딩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텍사스의 2루수 루그니드 오도어와 약간의 충돌이 이뤄지고 두 선수는 잠깐의 설전을 벌인다. 하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오도어가 강력한 라이트 훅(?)을 바티스타의 얼굴에 날렸고 이 시점부터 양측 더그아웃 클리어링이 벌어지며 그라운드는 난장판으로 변한다.

언뜻 이 광경은 2루 슬라이딩을 하면서 흔히 발생하는 충돌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배경은 작년 디비전시리즈 5차전의 감정이 앙금처럼 남아 있다가 폭발한 것이라는 걸 팬들은 잘 알고 있다. 지난해 텍사스는 이 시리즈에서 먼저 2승을 거두었지만 토론토의 맹반격에 3연패를 당하며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당시 마지막 5차전에서 토론토 승리의 주역은 역전 홈런을 날린 바티스타였다. 이 부분까지는 멋진 명승부로 치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전 홈런을 터뜨린 바티스타가 날아가는 타구를 바라보며 거만하게 배트를 던져버린 행위가 문제가 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규약집에 적혀 있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해주어야 하는 불문율, 즉 ‘코드(Code)’가 존재한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와 함께하는 선수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새겨진 하나의 약속이다. 그런데 바티스타의 ‘배트 플립(Bat flip)’은 이런 ‘코드’를 깨뜨린 것이다. 이같은 행위는 비록 패했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상대팀을 자극하는 행동으로 간주되어 시간이 얼마가 흘러가든 언젠가는 보복을 당한다는 규칙 아닌 규칙이 발동된 행위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홈런을 친 타자가 베이스를 일주하기 전에 자신의 타구를 서서 감상하거나, 바티스타처럼 일반적인 형태로 배트를 던지는 모습이 아닌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거만한 모습을 보이거나, 지나치게 천천히 베이스를 돌아도 문제가 된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확정지었을 때 현지 언론에서 KBO리그 당시 박병호의 배트 플립 영상을 올리며 ‘코드’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했었다. 심지어 진출 이후 인터뷰에서 홈런을 친 후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이냐는 질문까지 던지기도 해 그쪽에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지난 5월 16일 텍사스 2루수 오도어가 토론토의 바티스타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다. ⓒphoto montreal gazette.com
지난 5월 16일 텍사스 2루수 오도어가 토론토의 바티스타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다. ⓒphoto montreal gazette.com

크게 앞선 팀은 도루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지켜야 할 ‘코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에 언급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을 때 그날 던지고 있는 투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여기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팀의 일원으로 자신만 뒷전으로 물러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불문율이다. 심지어 여기서 강 건너 불 구경한 선수들에게 이기적이라며 자체 벌금을 부과하는 팀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상대 투수가 어떤 이유건 고의성이 엿보이며 우리 선수를 맞힌다면 우리 쪽 투수는 상대 타자, 그것도 몸 맞은 우리 쪽 타자와 비슷한 레벨의 선수를 맞히는 경우는 흔하다. 우리 투수가 이런 설욕 투(投)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선수 역시 팀원들을 보호하지 않는 선수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 그날 경기가 아니라면 다음 경기까지 이런 설욕전은 이어진다. 과거 플로리다(현재 마이애미) 말린스의 투수 브래드 페니는 플로리다주 라이벌인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전날 몸 맞은 공을 설욕하기 위해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초구를 타자의 몸쪽으로 바짝 붙이는 위협구를 던졌고, 그날 경기에서 단 한 개의 공만 던지고 퇴장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도 있다. 투수에게 노히트 노런 경기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최고의 기회이다. 이런 경기가 진행되면 더그아웃의 어느 누구도 노히트가 진행 중인 투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한마디로 좋은 일에 마(魔)가 끼면 안 된다는 일종의 미신도 작용하고 투수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행동을 피하는 현실적 이유도 된다. 또한 상대팀도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경기 후반에 접어든 이후 노히트를 깨기 위해 번트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그것이다. 순전히 상대 대기록의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는 목적으로 기습 번트를 대는 것은 비겁한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번트를 대며 기록 저지 행동을 했다면 이 선수는 분명히 다음 타석 혹은 다음 번 경기에서 몸 맞는 공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그 선수가 그리 거물(巨物)이 아니라면 우리 팀을 대표하는 타자 누군가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잘 알려진 ‘코드’ 중의 하나는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서 이미 승부가 갈린 상황인데 앞서가는 팀의 선수가 도루를 시도하는 경우이다. 이는 복싱처럼 수건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삼척동자도 다 알 정도로 승부가 갈린 상황에서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위한 도루까지 한다는 것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무방비로 쓰러진 상대를 한 번 더 확인사살하는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보기 때문에 순식간에 그라운드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는 상대 투수가 던진 공에 타자가 맞았을 때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거나 머리나 얼굴 쪽을 맞지 않았다면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1루로 나가는 것도 불문율의 하나로 꼽힌다. 메이저리그 타자가 투수의 공을 맞고 아픈 표시를 내는 것은 자신이 약하거나 상대 투수의 공이 그만큼 위력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동으로 비쳐진다. 사실 150㎞의 빠른 공을 맞으면 맞은 부위가 어디냐에 따라 약간 덜 아프고 더 아픈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오죽하면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메이저리그 야구 서적의 바이블과 같은 책에서 첫마디로 ‘야구의 시작은 두려움이다’라는 말로 투구와 타구에 대한 무서움을 정의하기도 했다.

야구도 스포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스포츠맨십이 요구된다. 단체 프로 스포츠에서 한 시즌에 가장 많은 162경기를 치르며 자주 얼굴을 맞대는 이들에게 ‘코드’란 자칫하면 거칠어지고 큰 부상을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게 만드는 안전장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이런 행동을 당연히 지켜야 하는 불문율로 철저히 따르려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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