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유로2016 16강전 아이슬란드 vs 잉글랜드, 동점골을 넣은 후 기뻐하는 아이슬란드 선수들. ⓒphoto AP
지난 6월 28일 유로2016 16강전 아이슬란드 vs 잉글랜드, 동점골을 넣은 후 기뻐하는 아이슬란드 선수들. ⓒphoto AP

외로운 동토(凍土)의 섬, 아이슬란드(Iceland). 그곳이 2016년 여름, 축구로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201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이하 유로2016)에 참가한 24개국 중 최약체로 평가받으며 ‘승점 자판기’나 ‘동네북’으로 불리던 아이슬란드가 본선 뚜껑이 열리자 모두의 예상을 뒤엎으며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먼저 탈락할 것’이라던 아이슬란드는 보란 듯 조별 예선을 통과했고, 심지어 축구 종가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잉글랜드를 16강에서 격파하며 8강에 진출했다. 1960년 첫 대회 이후 15회를 맞은 유로 대회 역사상 최대 파란의 주인공이 되었다.

유로2016 B조 예선 1차전부터 아이슬란드의 이변이 시작됐다. 예선 1차전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팀 포르투갈을 당혹스럽게 만들며 1-1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마자르 전사 헝가리와도 1-1로 비겼다. 그리고 최근 유럽에서 가장 핫한 팀으로 불리며, 유로2016 B조의 가장 유력한 16강 후보였던 오스트리아를 2-1로 침몰시켜 버렸다. 그렇게 유로2016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6월 28일, 일을 저질렀다. 웨인 루니와 제이미 바디, 해리 케인 등 EPL 스타들이 나선 축구 종가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2-1, 그것도 역전승으로 판을 끝냈다. 아이슬란드가 유럽 축구판을 진짜 뒤집어 버린 것이다.

아이슬란드 돌풍은 사실 지난해부터 예고됐던 것이다. 유로2016 예선부터 파란을 예고했다. 지난해 본선 진출권을 놓고 아이슬란드는 자신보다 모두 월등한 네덜란드·체코·터키를 상대했다. 이들의 발목을 잡으며 보란 듯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두 차례 예선전에서 ‘홈 2-0, 네덜란드 원정 1-0’으로 모두 승리하며, 네덜란드를 유로2016 무대에서 아예 지워버리는 일대 사건까지 연출했다. 유럽은 경악했다.

네덜란드·잉글랜드 저격한 3류 축구

그럼에도 유로2016 본선 시작 직전까지, 아이슬란드는 ‘예선 탈락 1순위 팀’으로 꼽혔던 게 사실이다. ‘축구 불모지’나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할 만만한 팀’으로 분류됐다. 그런 아이슬란드가 유로2016 본선 조별 예선에서 오스트리아 등 강팀들을 침몰시키며 16강에 올라, 우승 후보 잉글랜드까지 격파해버린 것이다.

유로2016 시작 전,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참가팀별 우승 확률을 계산해봤다. 1958년 이후 열린 총 4700번이 넘는 국가대항전 데이터를 기초로 통계를 산출했고 최근 10번의 A매치 결과, 홈과 원정 경기별 가중치, 선수 구성 등 각종 변수를 바탕으로 경기 시뮬레이션까지 실시해 우승 확률을 계산했다.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아이슬란드의 우승 확률은 불과 0.2%. 아이슬란드가 1%도 안 되는 0.2%의 확률을 깨며 16강을 넘어 8강까지 진출한 것이다.

유로2016에서 아이슬란드를 ‘기적의 팀’으로 만든 첫 번째 요인은 전술이다. 냉정히 말해 아이슬란드에는 상대가 두려워할 스타선수가 없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과 잉글랜드 첼시·토트넘,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에서 뛰었던 아이두르 구드욘센 정도가 가장 유명한 선수다. 현재 노르웨이 몰데 소속의 38세 노장 구드욘센도 이번 대회에 출전은 했다. 하지만 체력과 경기력 등의 문제로 실제 경기에서 그의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세계 3대 빅리그인 잉글랜드 EPL,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아A에서 활동하는 선수라고 해봐야, EPL 소속 스완지시티의 길피 시구르드손과 세리아A 소속 우디네세의 에밀 할프레드손 단 두 명뿐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의 알프레드 핀보가손과 프랑스 리그앙 낭트의 콜베인 시그도르손까지 포함해도, 유럽 주요 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4명밖에 안 된다.

이들 외에 잉글랜드 2부 리그 카디프시티의 아론 군나르손과 독일의 2부 리그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욘 다디 뵈드바르손, 그리고 스위스와 벨기에, 러시아 리그에 각 1명이 활동 중이다. 나머지가 스웨덴 리그(7명)와 노르웨이 리그(3명) 등에서 뛰고 있는 정도다.

‘텐백’ 극단적 수비와 극강의 활동량

이런 전력의 아이슬란드가 강팀을 상대로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은 많지 않다. 그중 가장 확실한 전술이 결국 수비다. 아이슬란드가 보여주고 있는 수비는 사실 극단적이다. 최전방 공격수까지 중앙선 아래 배치하는 ‘극단적 전원 수비’가 아이슬란드 전술의 핵이다.

예선 1차전이 끝난 직후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아이슬란드는 골대 앞에) 버스를 세워놓은 수비축구였다”며 “(아이슬란드의) 모든 선수들이 공을 뒤로 숨겼다”고 불만을 말했을 만큼 극단적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수비는 흔히 텐백(10back)으로 불리는 극단적 전술이다. 페널티지역을 중심으로 9~10명의 수비진이 공간을 없애는 밀집수비가 바로 아이슬란드의 텐백이다. 포르투갈과 헝가리전, 또 잉글랜드와의 16강 후반전은 이들이 완벽한 텐백을 보여준 경기다.

그런데 수비만으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잉글랜드를, 그것도 역전승으로 격파했다. 한두 번 기회가 생겼을 때 시도한 빠른 역습, 특히 ‘킥 앤드 러시’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

잉글랜드전, 먼저 1점을 뺏긴 후 약 1분30초 뒤 수비수까지 동원된 빠른 역습으로 동점골을 뽑아낸 상황은, 아이슬란드가 수비만 하는 팀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했다. 예선 3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오스트리아를 침몰시킨 역전골 역시, 빠른 킥 앤드 러시의 결과다.

북유럽 특유의 강인한 체격과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상대를 압도한 아이슬란드 선수들의 엄청난 활동량(경기에서 뛴 거리)도 주목해야 한다. 조별 예선과 16강전, 총 4경기에서 아이슬란드 선수들은 441㎞를 뛰었다. 1경기당 110.25㎞를 뛴 셈이다. 1인당 평균 10㎞ 이상 뛴 것이고, 골키퍼를 빼면 1인당 무려 평균 11㎞를 뛴 셈이다. 통상 1경기에서 한 선수가 10㎞를 뛰면 ‘많은 활동량’으로 평가한다. 아이슬란드 선수들이 4경기 연속해 이를 넘어서는 활동량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슬란드 축구는 2012년 이전만 해도 FIFA 랭킹이 110위에서 130위권을 오르내렸다. 유럽 국가의 FIFA 랭킹이라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초라했다. 그런 아이슬란드가 달라지기 시작한 게 2011년부터다. 스웨덴 출신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을 영입하면서부터다. 라예르베크 감독과 함께 자국 출신 헤이미르 할그림손을 공동감독으로 임명했다. 국가대표팀을 공동감독 체제로 운영하는 독특한 형태이지만, 두 감독의 역할과 위상은 차이를 두고 있다.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은 팀 전술과 훈련, 경기 운영에, 헤이미르 할그림손은 선수 관리와 경기 분석에 주력했다. 특히 스웨덴과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을 지낸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이 헤이미르 할그림손 감독에게 전술과 경기 운영 노하우를 이전해주며, 공동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끌어올려주고 있다.

결국 분업화된 듯 보이는 두 감독이 사실은 절묘한 협업을 통해 팀 전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이 두 공동감독 체제 이후 30위권으로 수직 상승했다. 올 6월 2일 기준 아이슬란드의 FIFA 랭킹은 34위다.

아이슬란드의 실내축구장.
아이슬란드의 실내축구장.

돈 많고 행복한 사람들 축구에 빠지다

아이슬란드는 북극과 그린란드에 가까운 북위 64도에 위치한 나라다. 면적은 한국과 비슷한 약 10만3000㎢. 하지만 국토 대부분이 눈과 얼음, 화산지대로 인간이 살기에는 척박한 땅이다. 인구도 33만2500여명(2016년 1월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노르웨이와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강인한 바이킹과 켈트족의 후예답게 척박하고 거친 땅을 일구며 기적 같은 부(富)를 키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먼저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지만 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국가 부도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현재 1인당 GDP가 세계 6위에 해당하는 5만6114달러(2016년 4월 IMF 기준)에 이른다.

‘돈 많은 나라’라는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꼽을 때 아이슬란드가 빠지지 않는다. UN과 OECD(세계경제협력기구)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행복지수’ 순위에서 아이슬란드는 늘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UN이 작성한 ‘세계행복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는 1인당 GDP·사회적 지원망·삶의 건강도·삶의 선택에 대한 자유와 사회적 관용·부패 정도·반사회적 지수 등 7개 항목을 평가해, 이 결과를 바탕으로 ‘행복의 정도’를 지수화한 것이다. 신뢰를 높이기 위해 국가별로 조사 대상을 평균 3000명 이상 선정해, 이들의 응답을 토대로 행복지수를 산출하고 있다.

올해 UN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아이슬란드의 행복지수는 덴마크(1위)와 스위스(2위)에 이어 총 157개 나라 중 3위에 올랐다. 2015년 발표된 2014년 행복지수에서는 스위스에 이어 2위였다. 참고로 2015년 한국의 행복지수는 58위다.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친 바이킹과 켈트족의 후예임에도 아이슬란드인은 뼛속 깊이 평화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군대’가 없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 유일한 군대 없는 나라다. 경찰과 해안경비대가 있긴 하지만 치안 서비스를 벗어난 무력은 행사하지 않는다. 평소 총기류를 휴대하지 않을 정도다.

풍족한 경제적 배경도 이들의 행복감을 높이는 이유다. 앞서 말했지만 아이슬란드의 1인당 GDP는 5만6114달러에 이른다. 참고로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5990달러(세계 28위·2016년 IMF 기준)다.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세금이 소득의 40%나 될 만큼 높지만, 그만큼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일례로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4000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6030원에 불과한 한국의 두 배보다도 많다. 실업 수당도 최대 30개월 동안 원래 받던 급여의 80%를 지원받는다.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아이슬란드인의 행복지수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기적의 주역 인도어 키즈의 탄생

이런 아이슬란드가 2000년대부터 축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과 아이슬란드인의 축구에 대한 애정 역시 유로2016에 불고 있는 아이슬란드 돌풍의 비밀이다.

연평균 기온 3도, 강한 바람과 눈보라가 수시로 몰아치며 얼어버린 땅, 그나마 지형의 80%가 화산과 빙하지대다. 이런 환경은 실외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기간을 길어야 4~5달밖에 안 되게 만들었다. 2000년대 이전까지 아이슬란드 축구가 뒤처져 있던 이유다.

2000년대 들어서 이런 환경적 약점을 극복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바로 실내축구장을 만든 것이다. ‘인도어(Indoor) 시스템’을 통해 축구 활성화에 나선 것이다. 2000년부터 정식 규격의 실내축구장인 ‘풋볼하우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열을 이용한 정식 규격의 실내 천연잔디 축구장이 전국에 생기며 1년 내내 축구 경기가 가능해졌다. 현재 아이슬란드에는 정식 규격의 실내축구장인 풋볼하우스가 20개(천연잔디와 인조잔기 구장 합계)에 달한다. 이런 인도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미니축구장 역시 100여개나 된다.

2000년 이후 실내축구장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선수들이 현재 유로2016에서 연일 파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실내축구장에서 성장해 최근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선수들에게 ‘인도어 키즈(Indoor kids)’란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실내운동장만 만들어준 게 아니다. 아이슬란드는 정책적으로 축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축구 지도자 육성에도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축구 코치 교육을 원하는 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아이슬란드 축구협회에 따르면 10년 전인 2005년 아이슬란드의 축구 지도자는 330명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850여명으로 증가했다. 이들 대부분은 유럽축구연맹(UEFA)이 승인한 프로와 A·B레벨의 지도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축구 지도자가 전체 인구 390여명당 1명인 셈이다. 특히 골키퍼 등 전문 포지션 전담 지도자와 피지컬 코치 등의 육성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이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축구를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축구 강국 스웨덴과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스웨덴인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과 치과의사 출신으로 아이슬란드 아마추어팀 감독 경험을 가진 헤이미르 할그림손을 국가대표팀 공동감독 체제로 운영하는 것 역시, 큰 틀에서 아이슬란드가 추진해온 축구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축구에 대한 아이슬란드인의 열정도 유로2016에서 아이슬란드가 이변을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이다. 일례로 유로2016 직후 전체 인구의 6%쯤 되는 2만여명이 프랑스로 건너왔다. 16강전이 벌어진 6월 28일에는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만명 이상의 아이슬란드인이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 니스로 몰려들었다. 축구 응원을 위해 민족 대이동을 한 것이다. 지난 6월 26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귀드니 요하네손 대통령 당선자와 그의 부인, 또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현 대통령과 그의 부인도 16강 직전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 니스로 날아왔다.

2016년 5월 기준 제주도 인구가 63만2800여명이다. 또 서울 서대문구 전체 인구가 약 32만명이다. 제주도의 절반에 불과하고, 서울 서대문구와 비슷한 인구 33만명의 아이슬란드가 대서양 건너 프랑스에서 유럽 축구판을 뒤집어놓고 있다. 아이슬란드에 2016년은 그 어떤 해보다 뜨거운 해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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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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