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매리너스의 이대호 ⓒphoto AFP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대호 ⓒphoto AFP

최근 코리안 메이저리거를 둘러싼 논쟁 중에 가장 뜨거운 감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에 대한 기용 여부이다. 시범 경기 23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며 마이너 강등의 위기를 맞았지만 간신히 위기를 면했다. 시즌 초반 그의 기용도는 미미했고 일주일에 한두 경기 출장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현수는 자신의 실력을 서서히 드러냈다. 마침내 5월 25일을 기점으로 주전으로 낙점을 받았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상대팀에서 예고한 선발투수가 좌투수일 때이다. 좌타자 김현수는 7월 3일 현재 선발투수가 좌투수일 때 단 한 경기에만 선발 출장했다. 좋게 말하면 좌우 타자를 갖추어놓고 상대투수가 좌투수냐 우투수냐에 따라 반대편 타석에 서는 속칭 ‘플래툰(platoon) 플레이어’로 시즌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현수는 지난 7월 6일 현재 137타석을 기록하고 있는데 좌투수를 상대로는 단 10타석에 그치며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김현수가 KBO리그에서 뛸 당시의 성적을 참고로 살펴보자. 김현수는 우투수 상대 통산타율은 .318로 리그 최정상급이었다. 좌투수 상대 통산타율도 .296로 역시 큰 편차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는 상대한 투수와 구장, 스트라이크존 등 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좌타자란 이유로 좌투수를 상대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는 단순히 김현수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나라건 야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좌투수를 상대로 좌타자를 기용하지 않는 것은 거의 상식화되어 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올 시즌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이 좌투수를 상대로 기록한 타율은 .257이다. 반면 우투수를 상대로는 .255로 오히려 좌투수를 상대로 한 경우보다 2리가 더 높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신시내티 레즈의 조이 보토는 좌투수를 상대로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 수치가 무려 1.009에 달했고 브라이스 하퍼는 .986에 이르렀다. 메이저리그 평균 선수의 OPS가 0.7대가 주류를 이룬다면 이들은 좌타자지만 좌투수에 전혀 개의치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는 결론이다. 이들 말고도 좌투수 공략에 능숙한 좌타자들은 상당수이다. 그럼에도 좌타자와 좌투수의 대결을 기피하는 것은 야구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위에서 좌우 타자 가리지 않고 좌투수를 상대한 6월까지의 타율은 .257로 나타났다. 하지만 좌타자들이 좌투수를 상대로 기록한 타율은 .240에 그치고 있다. 반면 우타자가 좌투수를 상대한 타율은 .260이다. 즉 우타자와 좌타자가 각각 좌투수를 상대한 타율의 편차는 2푼에 이른다. 문제는 이런 편차가 거의 예외 없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140년에 달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공식기록이 도입된 이후 좌타자가 좌투수를 상대로 우타자보다 잘 쳤던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좌완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연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거의 25%에서 30% 사이를 오간다. 일단 우완보다 희소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좌완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타자의 입장에서는 우완보다 좌완을 상대하는 빈도 수가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희소가치가 있는 좌완을 상대로 생소함이 더할 수밖에 없다.

좌투수의 공이 시속 3㎞ 더 빠르게…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 ⓒphoto AFP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 ⓒphoto AFP

그리고 ‘야구의 물리학’이란 저서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타자의 입장에서 좌완투수가 던지는 구속이 우완투수가 같은 속도로 공을 던지는 것보다 평균 시속 3㎞ 정도 더 빠르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좌투수가 147㎞의 공을 던지면 타자의 체감속도는 150㎞ 이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적으로 적은 좌투수가 좌타자를 상대로 이런 공을 던지면 많이 상대해보지 않은 좌투수의 공이 더욱 생소하고 구위가 더 좋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1980년대 후반 당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감독이었던 토니 라루사 감독은 메이저리그 최초로 ‘좌완 스페셜 리스트’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략으로 경기 중반 이후 불펜투수가 동원될 때 상대타자가 좌타자이면 이 좌완 스페셜 리스트를 투입하고 연속으로 좌타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단 한 타자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개념이었다. 지금 LA 다저스의 릭 허니컷 투수코치가 바로 최초의 ‘좌완 스페셜 리스트’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좌타자가 좌투수 공을 잘 못 치는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두었다. 오늘날 메이저리그에서 좌투수가 좌타자 한두 명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모습은 흔하다.

이 모든 분위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감독이 속칭 ‘좌우놀이’를 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맹점이 있다. 바로 김현수와 같은 경우이다. 만약 김현수가 야구를 미국에서 시작했고 마이너를 거친 누적된 데이터가 있다면 그리고 한국에서와 같이 좌투수를 효율적으로 공략했다는 검증만 거쳤다면 지금과 같은 철저한 플래툰 플레이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감독들이 몇몇 유망주를 제외하고는 메이저리그에 막 오른 선수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마이너 시절 성적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KBO리그 성적은 이들에게 참고 사항일 뿐이다.

김현수뿐 아니라 이대호도 한·일 양국에서 이미 검증을 모두 거쳤지만 6월 중순까지 철저하게 좌우 플래툰 플레이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이대호와 김현수는 결정적인 순간의 적시타와 꾸준한 활약으로 이제는 당당히 상대투수가 누가 나오건 주전으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아직 그들에게 김현수는 좌투수 상대로 검증이 끝나지 않은 메이저리그 시각에서 신인선수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김현수가 현재와 같은 꾸준함이 이어진다면 더 이상 ‘좌우놀이’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날은 그리 머지않은 느낌이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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