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photo 뉴시스

오는 8월 6일 개막하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제전, 리우올림픽에는 한국 스포츠와 세계 사격의 새 역사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37·KT)다. 남자 10m 공기권총과 50m 권총 등 두 종목에 출전하는 진종오가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세계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진종오는 처음 출전한 2004 아테네올림픽 50m 권총 은메달을 시작으로 2008 베이징대회 50m 권총 금메달·10m 공기권총 은메달을 수확했고, 2012 런던대회에서는 50m 권총과 10m 공기권총 모두 정상에 올랐다. 세 번의 올림픽에서 5개의 메달(금3·은2)을 수집한 것이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사격에서 그동안 3개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오랫동안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진종오가 이번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두 종목에서 최소 1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사상 최초의 ‘3연속 사격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3연속 금메달은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하계 종목에서는 ‘신궁’으로 불렸던 여자 양궁의 김수녕(금4), 동계 종목에서는 여자 쇼트트랙의 전이경(금4)이 진종오보다 1개 더 많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3번의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내진 못했다.

이렇게 위대한 기록에 도전 중인 진종오는 누구인가. 기자는 지난 4월 실제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ISSF(국제사격연맹) 리우월드컵 사격대회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에게 “사격을 잘하는 비결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저 당장의 한 발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대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진종오의 사격 인생을 돌아보면 한걸음 한걸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려한 기록의 이면에는 굴곡이 있었다. 사격선수로는 치명적인 어깨 부상을 딛고 일어선 선수가 진종오이기 때문이다.

좌우 밸런스 잡으려 역도화 신어

진종오는 고교 시절 교통사고로 왼쪽 쇄골이 골절됐고, 경남대 시절엔 축구를 하다 넘어지며 오른쪽 쇄골이 골절됐다. 특히 오른쪽 쇄골을 다쳤을 땐 어깨에 금속핀을 박는 수술까지 했다. 이때 박은 금속핀 때문에 국제대회에 나갈 때 종종 공항 검색대에서 경고음이 울린다고 해서 ‘터미네이터’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시련은 진종오를 오히려 강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어깨통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노력으로 핸디캡을 극복했다. “여전히 어깨가 아프다”는 그의 머릿속엔 온통 사격밖에 없는 듯했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훈련하다 보니 대학 시절 1.5였던 시력이 0.6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잘하니까 안경 회사에서 협찬도 해주지 않느냐”고 웃어넘기는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가 바로 진종오다.

진종오의 경기를 봤을 때 눈에 띈 것이 역도화였다. 그는 “좌우로 밸런스를 잡는 데 최적화돼 있고 오랜 시간 신기에도 편하다”고 했다. 2009년 미국 사격 대표팀의 전지훈련에 갔을 때 한 미국 선수가 역도화를 신은 것을 본 것이 계기였다. 당시 귀국하자마자 역도선수 사재혁에게 신발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진종오는 이 역도화를 신고 처음 출전한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다. 이제는 진종오를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도 역도화를 따라 신는다.

경기를 마치고 총기를 수입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선수도 진종오였다. 그만큼 그는 사소한 장비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챙긴다. 그가 요즘 애지중지하는 총기는 지난해 스위스 총기회사 모리니가 특별제작한 권총이다. 총열을 빨간색으로 물들인 이 총은 모리니가 2년여에 걸쳐 오직 진종오만을 위해 제작했다. ‘No.1(넘버원)’이라는 글자도 새겨져 있다. 총의 색상과 디자인은 F1(포뮬러원)의 전설적 드라이버인 미하엘 슈마허(독일)의 레이싱카를 참고했다고 한다.

진종오는 자신의 경쟁자로 중국의 팡웨이와 스페인의 파블로 카레라를 꼽는다. 팡웨이는 자국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10m 공기권총에서 진종오를 2위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던 선수다. 카레라는 올림픽 메달은 아직 딴 적이 없지만 올해 50m 권총과 10m 공기권총에서 각각 월드컵 1위에 한 번씩 오르는 등 기세가 등등하다.

그러나 한국 사격 관계자들은 “진종오 최대의 적은 바로 자신”이라며 “자신의 기량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정상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기록이 진종오의 실력을 증명한다. 진종오가 출전하는 2개 종목은 본선을 거쳐 결선을 진행한다. 수십 명이 출전하는 본선에서 상위 8명이 결선에 오르고, 결선에선 본선 성적과 관계없이 결선 기록만으로 최종 순위를 가린다. 진종오는 10m 공기권총과 50m 권총에서 본선·결선 세계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4개의 세계기록을 갖고 있는 진종오가 평소 실력대로만 쏜다면 당연히 금메달은 그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진종오는 ‘최종 모의고사’에서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리우올림픽 전망을 밝혔다. 마지막 ISSF 공인 국제대회였던 바쿠월드컵(6월)에서 메달 2개(50m 권총 금메달, 10m 공기권총 동메달)를 목에 걸었고, 마지막 국내대회였던 한화회장배대회(7월)에서 50m 권총·10m 공기권총 개인·단체전을 싹쓸이하며 4관왕에 올랐다.

진종오는 한국 사격의 살아 있는 레전드나 다름없다. “현역 세계 최고의 선수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영광”이라는 후배들은 그의 모습을 본받으려 취미까지도 따라할 정도다. 훈련이 없을 때 낚시를 즐기며 안정을 찾는 진종오를 따라 후배들도 낚시를 한다.

진종오는 올해는 빠듯한 국내 선발전 일정 때문에 낚싯대를 좀처럼 잡기 어려웠다. 대신 틈틈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최근에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대기록에 대한 부담감이 그에게도 아예 없을 리가 만무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12 런던대회 때도 4권의 책을 들고 가서 읽었다.

오유교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