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리본 연기를 펼치는 손연재. 손연재는 처음으로 탱고 음악에 맞춰 연기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2016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리본 연기를 펼치는 손연재. 손연재는 처음으로 탱고 음악에 맞춰 연기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2009년 3월 30일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 다목적체육관에서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그때 현장에 있던 대한체조협회 관계자들은 주니어부 우승을 차지한 손연재(22·연세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대로만 성장하면 3~4년 안에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15살 소녀였던 손연재의 인상 깊은 점은 다양한 표정 연기였다. 선배 언니들보다 끼가 풍부했고 각종 동작의 연결도 자연스러웠다. 많은 이들의 기대대로 그는 한국 리듬체조의 기둥이 됐다. 김지희(47)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코치는 “(손)연재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고 리듬체조를 익힌 신체 기술도 좋다”며 이렇게 평가했다. “연재는 착실하게 계단을 오르며 잘 발전해왔다. 체형도 좋지만 단지 아쉬운 것은 키가 비교적 작다는 점이다. 그러나 연재는 주니어 선수로서 최상의 단계에 진입해 있고 재능도 매우 뛰어나다. 지금까지 성장한 대로 꾸준하게 발전한다면 장래가 매우 기대되는 선수다.”

손연재는 2010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2010년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 야심 차게 도전했지만 개인종합 예선 32위에 그치며 24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세계의 높은 벽을 경험한 그는 마음을 새롭게 먹었다. 이듬해인 2011년 전 세계 상위 랭커들이 모여서 훈련하는 러시아 노보고르스크 훈련장에 둥지를 틀었다. 노보고르스크 훈련장은 선수에게 필요한 3가지 환경을 갖췄다. 이곳은 겨울에도 따뜻하게 난방이 되고 선수들이 뛰는 매트의 탄력이 좋다. 러시아의 명성 있는 지도자 밑에서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밟고 성장에 자극을 주는 최고 선수들과 훈련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노력파였던 손연재는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개척했다. 팔다리가 자신보다 길고 유연성도 뛰어난 유럽 선수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손연재는 경쟁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장점을 살렸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음악을 자연스럽게 타며 연기했다. 표정 연기도 뛰어났고 난도의 동작은 정확했다.

러시아의 엘레나 니표르도바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손연재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때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다. 상위권에 진입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런던올림픽에서 손연재는 기대 이상의 경기를 펼쳤고 5위에 올랐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손연재는 2013년부터 FIG 리듬체조 월드컵에서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14년 터키 이즈미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에서는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그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경쟁자 덩센유에(24·중국)를 따돌리며 금메달을 땄다. 이듬해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는 개인종합과 후프, 볼 종목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리듬체조의 역사는 모두 손연재의 움직임에 따라 새롭게 쓰였다. 지난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종합 11위에 그쳤다. 대회 막바지에 나타난 체력 저하로 무너졌다. 손연재는 이 대회에서 얻은 쓴 경험을 약으로 생각했다. 지난 겨울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하며 근력을 키웠다. 약점인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노력은 올 시즌 열매를 맺었다. 손연재는 올해 FIG 월드컵 대회에 6번 출전해 금메달 1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를 땄다.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제8회 리듬체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종합을 비롯해 후프, 볼, 곤봉, 리본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손연재는 올해 한국에 두 번 들어왔다. 지난 1월 열린 국가대표 1차 선발전과 5월 진행된 2차 선발전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앞둔 그는 철저하게 훈련 이외 일정을 피하며 수구(手具)와 씨름했다. 2차 선발전을 마친 손연재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까지 카운트다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스스로 하루하루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리듬체조 금메달 후보는 야나 쿠드랍체바(19)와 마르가리타 마문(21·이상 러시아)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리듬체조 세계 최강을 대표하는 이들이 금메달을 다툴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남은 메달 한 자리다. 손연재는 안나 리자트디노바(23·우크라이나), 멜리티나 스타니우타(23·벨라루스)와 시상대에 올라가기 위해 물러설 수 없는 경쟁에 나선다. 손연재는 “메달 색깔은 0.05점에서 0.1점 차로 결정된다. 0.1점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송희(42) 리듬체조 국가대표 코치는 “세 명(손연재·리자트디노바·스타니우타)의 선수는 전부 개성이 강하고 정신력도 뛰어나다. 중요한 것은 (손)연재가 올림픽 때까지 프로그램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남은 메달 하나 놓고 물러설 수 없는 경쟁

리듬체조 국제대회는 그동안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개최됐다. 손연재는 처음으로 남미 브라질에서 경기한다. 지카바이러스와 현지 적응 문제에 대해 그는 “그런 문제도 있지만 습도도 높다고 들었다. 현지 적응에 신경 써야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 손연재는 발목에 테이핑을 하고 경기에 나섰다. 고질적인 발목 부상은 늘 따라다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다. 어느덧 시니어 무대에서 7년 동안 뛴 그는 베테랑이 됐다. 런던올림픽과 다르게 이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리우데자네이루 무대 끝자락에 시상대에 오르는 것이다.

손연재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겨냥해 리본 프로그램 곡을 ‘탱고’로 정했다. 열정의 대륙 남미에서 탱고로 많은 이들에게 인상 깊은 연기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손연재는 7월 말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들과 리우데자네이루로 간다. 손연재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리듬체조 경기가 열리는 8월 19일까지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와 함께 움직인다. 러시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캠프는 상파울루다. 리듬체조 경기는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 동안 진행된다.

손연재는 자신을 ‘행복한 리듬체조 선수’라고 정의했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 리우데자네이루 매트 위에서 펼쳐지는 손연재의 ‘마지막 탱고’는 어떤 모습일까.

조영준 스포티비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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