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올림픽을 44일 앞둔 지난 7월 22일 서울 태릉선수촌 펜싱장에서 열린 펜싱 대표팀 미디어데이 및 공개훈련에서 김지연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44일 앞둔 지난 7월 22일 서울 태릉선수촌 펜싱장에서 열린 펜싱 대표팀 미디어데이 및 공개훈련에서 김지연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가 미쳤나 봐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 펜싱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미녀 검객’ 김지연(28·익산시청)이 당시 꺼내 놓은 소감이다. 당시 김지연은 개인전 준결승에서 ‘세계 최강’ 마리엘 자구니스를, 결승에서 소피아 벨리카야를 꺾고 세계 최고의 검객이 됐다.

당시 아테네와 베이징올림픽을 2연패한 자구니스와의 준결승전은 올림픽 여자 펜싱의 명승부 중 명승부로 꼽힌다. 1 대 6, 5 대 12로 밀리던 스코어를 순식간에 15 대 13으로 돌려놓은 대역전극을 이끌어내며 펜싱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를 원하는 지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 펜싱의 ‘미친 선수’가 바로 김지연이었다. 당시 한국 펜싱은 김지연의 ‘미친’ 활약에 힘입어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내는 기적을 일궈냈다. 펜싱 종주국 유럽의 강호들을 줄줄이 꺾으며 ‘칼의 노래’를 불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지연이 이제 두 번째 리우올림픽에 도전한다. 김지연은 리우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여자 사브르 대표팀에서 유일한 올림픽 유경험자다. 2년 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후배 황선아(27·세계 랭킹 13위)와 윤지수(23·세계 랭킹 16위), 서지연(23·세계 랭킹 14위) 등 절친한 후배들과 함께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꿈꾸고 있다.

김지연은 부산 재송중학교 시절 체육교사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처음 플뢰레로 시작했지만 몸통만 찌르는 종목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부산디자인고에 진학하며 사브르로 전향한 후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단아한 외모의 ‘미녀 검객’ 김지연은 피스트에 들어서 검을 잡는 순간 돌변한다.

런던올림픽 이후 김지연은 2013년 벨기에 겐트월드컵 단체전 1위, 미국 시카고월드컵 개인전 1위,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개인전 3위에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2014년에도 프랑스 오를레앙 그랑프리 개인전 2위, 베이징 그랑프리 개인전 3위 등 꾸준히 메달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왼쪽 고관절 부상을 당하며 세계 랭킹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싱가포르아시아선수권을 제외하면 국제대회 4강권에 들지 못했다. 슬럼프! 펜싱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혹독하게 재활에 매달렸다.

그런 김지연은 리우올림픽이 가까워지며 보란 듯 부활했다. 지난 2월 벨기에 생니클라스 사브르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동메달 이후 8개월 만의 메달이었다. 지난 5월 중국 포산 국제월드컵에서도 2위에 올랐다.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랭킹을 7위까지 끌어올렸다. 자신감도 함께 돌아왔다. 김지연은 “1년 가까이 메달이 안 나오면서 더 간절함이 생겼다”며 “올림픽의 해라는 간절함이 더해지면서 변화가 온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지연에게 리우올림픽은 도전자로서 깜짝 금메달을 따냈던 4년 전 런던올림픽과는 상황이 다르다. 2연패에 대한 주변의 큰 기대와 노출된 전력, 또 더욱 심해진 경쟁자들의 견제가 따라붙고 있다.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김지연은 “부담은 내려놓고,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다”며 “그런 생각을 하면 오히려 실력 발휘를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펜싱 코리아’를 바라보는 경쟁국들의 눈빛이 다르다. 태릉선수촌으로 전지훈련을 오려는 나라들도 늘었다. 판정도 까다로워졌다. 국제펜싱연맹(FIE) 회장이 러시아인인 데다 러시아계 선수들이 유독 강세인 사브르에서 판정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김지연은 초연하다. 물러서지 않고 정면승부를 말하고 있다. “판정에서 불리할 수 있는 애매한 동작은 피하고, 확실한 포인트를 찌르면 된다”며 “한국 선수들은 다리가 좋기 때문에 한 발 더 움직이면서 확실한 기회를 만들고, 쉽게 포인트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펜싱 대표팀의 훈련도 과학적으로 진화했다. 지난해 8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직후 본격적으로 ‘무브먼트 펜싱’ ‘스텝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무브먼트 펜싱’은 한국스포츠개발원의 정진욱 박사가 고안한 것으로 현대무용과 펜싱 동작을 접목해 리듬감을 키우는 훈련이다. 4분20초간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일종의 펜싱 체조다. 정 박사는 “펜싱은 결국 상대의 리듬감을 뺏어오는 종목”이라며 “근력과 체력 훈련에 리듬감을 가미했다”고 밝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연속동작인 콩포제 등에는 취약점이 있었다”며 “연결성을 높이고 온몸에 펜싱의 리듬감을 심어주기 위한 훈련이 바로 무브먼트 펜싱”이라고 했다.

스텝 트레이닝은 펜싱의 손과 발 기술을 조합해 만들어낸 훈련이다. 정 박사는 이를 “단순한 달리기 근육이 아닌 펜싱에 맞는 펜싱 근육과 리듬감을 키우기 위한 맞춤형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단체전 금메달이 더욱 욕심난다”

리우에서 김지연의 목표는 런던에 이어 2연속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개인전과 단체전, 두 번의 기회가 있다. 후배들과 함께할 단체전 금메달은 더욱 욕심이 난다. 김지연은 “올림픽 단체전은 처음이라 더욱 각별하다”고 했다.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선 여자 사브르 단체전이 없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선 남자 사브르와 여자 플뢰레 단체전이 빠졌다. 런던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여자 에페 단체전 은메달, 여자 플뢰레 단체전 동메달을 지켜보며 내심 부러움도 있었다. 지난 4년간 동고동락한 후배들과 함께하는 메달을 꿈꾼다. 노련하고 가장 침착한 김지연이 마지막 주자로 나설 듯싶다. 그는 “리우에선 개인전 메달도 중요하지만, 단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동료들과 함께 단체전 메달을 꼭 따고 싶다”고 했다.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세계 랭킹 1위), 올가 카를란(우크라이나·세계 랭킹 2위), 마리엘 자구니스(미국·세계 랭킹 3위) 등 4년 전의 경쟁자들이 여전히 건재하다. 특히 ‘천적’인 올가 카를란을 넘어서야 한다. 카를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금메달과 런던올림픽 개인전 동메달리스트다. 런던올림픽 당시 시상대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낸 김지연에게 진한(?) 키스 세례를 퍼붓는 ‘우정’으로 화제가 됐지만, 피스트에서는 천적이다.

김지연은 국제대회에서 카를란과 8번 맞붙어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한국은 단체전 8강 토너먼트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의 카를란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김지연은 “카를란은 스텝이 좋고, 상대를 압박하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김지연과 여자 사브르 대표팀은 8월 9일(한국시각) 여자 사브르 개인전을, 8월 14일 단체전을 치른다. 리우로 떠나기 전인 7월 24일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만난 김지연의 표정은 평온했다.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의 스마트폰 메신저엔 영화 ‘도둑들’에서 ‘예니콜’ 전지현이 발목에 새겼던 ‘해피엔딩은 나의 것(Happy ending is mine)’이라는 문구가 타투처럼 또렷했다.

전영지 스포츠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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