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롤디스 채프먼 / 생년월일: 1988년 2월 28일 / 출생지: 쿠바 / 키: 193㎝ / 체중: 97.5㎏ ⓒphoto AP·뉴시스
아롤디스 채프먼 / 생년월일: 1988년 2월 28일 / 출생지: 쿠바 / 키: 193㎝ / 체중: 97.5㎏ ⓒphoto AP·뉴시스

지난 7월 20일 뉴욕의 양키스타디움. 양키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1점 차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무리투수인 쿠바 출신 아롤디스 채프먼을 마운드에 올렸다. 채프먼은 볼티모어의 JJ 하디를 상대로 105.1마일(169.14㎞)의 직구를 뿌렸다. 이 구속은 자신이 2010년 기록한 메이저리그 최고 구속 기록과 타이였다. 잠시 후 채프먼은 19번째 세이브를 거두고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야구팬들은 강속구 투수에 열광한다. 그리고 스카우터들은 빠른 볼을 던질 수 있는 투수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왜?

선수들의 체격이 커지면서 몸이 뻣뻣해진다는 이유로 기피했던 웨이트 트레이닝이 이제는 필수가 되었다. 그러면서 투수들의 구속은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모든 투수의 꿈의 구속인 100마일(161㎞) 이상을 던진 투수는 모두 24명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 시즌에 100마일 이상을 던지는 투수는 3~4명에 불과했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구속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구속은 92.5마일(148.9㎞)로 작년보다 0.1마일이 빨라졌다. 2013년 평균 구속은 92마일(148㎞), 지금부터 8년 전인 2008년에는 90.9마일(146.3㎞)이었다.

국내에서는 빠른 볼 투수로 통하던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부상당하기 전인 2014년 포심 평균 구속이 바로 90.9마일이었다. 최소한 구속에 있어서 류현진의 당시 구속은 6년 전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과 같은 속도로 2014년에는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에도 미치지 못한 스피드를 보인 것이다.

물론 스피드가 투수의 실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컨트롤, 볼 배합, 수비, 심리적 강점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들이 실제로 아마추어 드래프트나 스카우팅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설령 이들의 컨트롤이 불안하고 변화구 구사력이 떨어지며 거친 면이 부각된다고 해도 위험 부담을 안고 이들을 상위 라운드에 지명하는 경우는 흔하다.

‘사이 영’ 등 대투수는 모두 강속구 투수

메이저리그 역사상 시대를 호령했던 투수들, 특히 통산 300승 이상을 거둔 대투수들을 살펴보면 빠른 볼 투수들이 주류를 이룬다. 511승으로 1위에 올라 있는 사이 영은 당시 최고 강속구 투수로 ‘사이클론’에서 온 별명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2위 월터 존슨은 당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던 기차에서 따온 ‘빅 트레인’이 별명이었다. 그 외에도 로저 클레멘스, 랜디 존슨, 스티브 칼튼, 놀란 라이언, 톰 시버 등 당대의 투수들은 모두 강속구 투수였다. 마치 3할 타자보다 홈런 타자의 연봉이 높은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팬들은 시원한 빠른 볼로 타자를 압도하고 삼진을 잡아낼 때 환호를 보낸다.

여기서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투수가 100마일을 던졌을 때 타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은 3.5/100초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눈에서 공을 보고 뇌가 인지하는 시간은 5/1000초가 필요하다. 그리고 친다 기다린다를 결정하는 데 125/1000초가 요구된다. 그리고 근육이 회전하는 데 150/1000초가 소요된다. 그리고 팔이 움직이는 데 200/1000초가 다시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배트가 공을 칠 수 있는 위치로 가는 데 300/1000초가 소요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배트가 공을 맞히기 위해서는 거의 8/100초가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이 공을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마일의 공을 쳐내는 타자들이 있다. 이들은 어떻게 공을 쳐낼까? 바로 투수의 습관을 추정하고 예상하여 미리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여도 100마일의 공을 제대로 맞히기는 쉽지 않다. 이런 스윙 때문에 때론 타자들이 느린 변화구에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겉에서 보기에 어이없는 헛스윙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는 95마일 이상의 투구를 빠른 볼로 생각한다. 타자들은 95마일 이상의 투구면 워낙 빠르기 때문에 95마일이나 100마일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96마일에서 100마일까지 구속이 1마일씩 오를 때 헛스윙률은 지속적으로 올라간다. 여기에 공이 들어오는 각도와 공의 스핀까지 좋다면 이 공은 더욱 치기 어려운 구종이 된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똑같은 140㎞의 공이 홈플레이트까지 도착하는 데 분당 2400번의 스핀을 하는 경우와 1800번을 스핀하는 경우의 움직임 차이를 구분했다. 2400번 스핀을 할 때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면서 70㎜가 더 높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야구공의 지름이 75㎜ 전후이기 때문에 거의 공 하나 정도의 높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빠른 공에 스핀율까지 높다면 이 투수의 공은 흔히 말하는 공의 움직임이 좋기 때문에 더욱 치기 어렵다는 말을 하게 된다.

최고 구속 99마일을 던지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맥스 시어저는 공이 빠르고 평균 스핀율이 2510에 달한다. 메이저리그 평균 빠른 볼의 스핀율이 2200 정도이니 평균보다 훨씬 높다. 그의 평균 구속도 94마일을 웃돈다. 그의 빠른 볼 헛스윙률은 13.4%에 달한다. 반면 비슷한 구속에 스핀율이 2000 이하면 헛스윙률이 5.5%밖에 되지 않는다.

90마일을 던지지만 스핀율이 좋은 투수와 93마일을 던져도 스핀율이 떨어진다면 타자들에겐 덜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스핀율을 가진 선수가 더 빠른 볼을 던진다면 당연히 이 투수가 스카우터들의 눈을 더욱 사로잡고 영입에 군침을 흘리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느린 볼을 던지는 투수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컨트롤의 마법사’로 불렸던 그렉 매덕스나 역시 면도날 컨트롤과 체인지업의 달인이었던 톰 글래빈 같은 투수 모두 300승 이상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스타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빠른 볼을 가진 투수가 컨트롤을 갖추고 진정한 에이스로 우뚝 섰을 때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상대 타자들은 빠른 볼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게 되고 강속구 투수들은 이를 역이용해 다른 변화구를 더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경기를 쉽게 풀어간다.

빠른 볼은 투수와 팬의 영원한 로망이다. 오늘도 스카우터들은 이런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한다. 10년을 버틸 수 있는 강속구의 에이스, 이들이 야구의 또 하나의 주인공인 것이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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