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선수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열린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 결승전에서 헝가리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순간. ⓒphoto 조선일보
김현우 선수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열린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 결승전에서 헝가리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순간. ⓒphoto 조선일보

“맨 얼굴로 다니면 사람들이 잘 못 알아봐요.”

남자 레슬링의 김현우(28)는 얼굴이 훤칠하게 잘생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두덩이 심하게 부어오른 ‘런던올림픽 때의 김현우’를 기억하고 있다. 상체만 공격할 수 있는 그레코로만형 경기 특성상 얼굴 부상은 자주 생긴다. 시종일관 상대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굴의 흠집은 치열한 경기의 결과다. 충분히 너스레를 떨 만하다. 김현우의 4년 전 멍든 얼굴은 그야말로 영광의 상처였고, 대한민국 투혼의 상징이었다. 김현우는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잘생긴 얼굴이 망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영광의 상처를 위해서 지난 4년을 준비했다.

운명의 라이벌

그런데 이번에는 체급이 다르다. 4년 전 런던올림픽 때는 66㎏ 이하급이었는데, 이번 리우에서는 75㎏ 이하급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런던올림픽 이듬해인 2013년에 체급을 올렸다. 매번 겪어야만 했던 살인적인 체중 감량 때문이었다. 경기 전 10㎏ 이상을 감량하는 과정은 김현우에게 죽을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는 일과 같았다. 또 나이를 한두 살씩 먹어가면서 감량의 폭(幅)도 한계에 부딪혔다.

“런던 때 10㎏ 이상을 감량하는 것이 심리적·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체중 감량이 워낙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경기 걱정보다 감량에 대한 걱정이 더 컸고, 그러다 보니 레슬링을 즐길 수 없었죠.”

그는 그렇게 체급을 올렸다. 그런데 또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66㎏급에서는 힘이 센 편이었지만 75㎏급에서는 힘에서 압도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의 장기(長技)가 사라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위기 극복 방법은 결국 훈련이었다. 체급에 걸맞은 힘을 기르기 위한 또 한 번의 지옥 훈련. 김현우는 극한 감량의 고통에서는 해방됐지만, 극한 훈련의 고통을 다시 맞닥뜨려야 했다.

김현우는 이번 리우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폴승으로 리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체급을 올리고 나서 잠시 잃었던 자신감을 확실하게 다시 찾았다. 체급을 올렸으니 상대해야 하는 선수들의 덩치가 커진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큰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술 개발에 신경을 쏟았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기술적인 면에서만은 자신이 있다”는 말은 김현우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의 주무기는 측면들기. 그라운드 공격에서 이 기술을 구사하면 거의 성공한다. 또 상대 공격도 기술적으로 잘 막아내는 편이어서 큰 실점이 없는 것도 김현우의 장점이다.

김현우의 ‘새 체급’ 그레코로만형 75㎏급에는 로만 블라소프라는 러시아 선수가 있다. 런던올림픽 74㎏급(현 75㎏ 이하급) 금메달리스트다. 김현우보다 키가 4㎝ 더 크고 탄탄한 수비가 강점이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김현우를 위협할 선수다. 그런데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 범죄가 발각됐다. 러시아가 국가보안위원회(KGB)까지 동원해 소변 샘플을 바꿔치는 수법으로 지속적으로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제공해왔던 것이다. 관련자의 폭로로 밝혀진 이번 스캔들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러시아에 대한 중징계를 천명했다.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 금지 등 사상 최대의 강력 조치가 전망됐다. 하지만 IOC가 막판에 꼬리를 내렸다. 각 종목 단체들에 러시아의 출전 문제를 일임했고, 레슬링협회는 러시아의 출전을 허용했다. 김현우와 블라소프의 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김현우는 블라소프를 2013년 헝가리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결과는 2-1, 김현우의 승리. 김현우가 블라소프의 아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김현우는 이후 2년 동안 75㎏급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2014년 루마니아 오픈에서 블라소프에 4-7로 패했다. 수비를 잘하는 김현우였지만 상대의 측면들기 공격 한 번에 4점을 내줘버렸다. 김현우의 2년간 불패 기록이 블라소프에 의해 깨졌다.

현재 김현우와 블라소프 간의 역대 전적은 1승1패. 우열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가려진다. 그런데 이번 리우올림픽의 레슬링 종목은 시드 배정이 없고 경기 당일 조 추첨으로 대진이 결정되기 때문에, 김현우와 블라소프의 대결이 예상보다 빨리 벌어질 수도 있다. 또 이번 대회는 기존의 2분 3라운드, 3판 2선승제에서 3분 2라운드, 점수 합산제로 방식이 바뀌었다. 점수 합산제 도입으로 경기 초반부터 박진감이 넘치는 경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체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됐다. 김현우의 강점 중의 하나가 바로 체력이다. 이번 대회 레슬링 75㎏급 경기는 우리 시각으로 8월 15일 새벽에 치러진다. 어쨌든 김현우나 블라소프 모두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려면 상대를 제압해야만 한다.

제2의 심권호

김현우는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8강 탈락이라는 고배를 들었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 리우올림픽에 앞서 “힘든 시간이 오히려 강한 선수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극복했다. 긍정 마인드가 새로운 계기를 만든 것 같다”며 최근의 부진이 약이 됐다고 강조했다. 대회에 임박해서는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금메달을 200% 자신한다”고 얘기했다. “대회에 임하기 전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자신이 없으면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부상이 있거나 준비에 아쉬움이 남으면 경기에 자신이 없게 됩니다. 결국 자신감을 얻기 위해 힘든 순간들을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김현우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다면 그는 심권호의 뒤를 잇게 된다. 심권호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그레코로만형 48㎏급 금메달에 이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 54㎏급에서 우승을 했다. 심권호는 레슬링에서 체급을 올려 또다시 금메달을 따낸 유일한 한국 선수다. 체급을 올리면 힘이 달리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일을 심권호가 해냈고, 김현우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레슬링은 한국의 대표적인 올림픽 효자 종목이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레슬링 종목에서 따냈고, 이후 레슬링은 언제나 우리 선수단의 금맥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로 침체기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러다 2012년 런던에서 다시 금메달 명맥을 이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김현우였다. 김현우는 이어 세계선수권대회와 2014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제패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저는 패하지 않는 레슬링을 추구합니다. 화려하게 이기는 것보다 1점도 내주지 않는 경기를 하겠다는 게 목표예요. 후회를 남기는 것은 두렵습니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냈어요.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을 겁니다.” 리우올림픽을 향한 김현우의 멋진 출사표다.

김관 TV조선 스포츠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