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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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턱걸이 도사예요.”

태권도 이대훈(24)은 지난해까지 턱걸이를 한 개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 10개씩 10세트는 거뜬하다. 최근에는 무게 15㎏짜리 추를 몸에 매달고도 한다. 1년 만에 확 달라졌다. 태권도와 턱걸이는 잘 어울리는 운동은 아니다. 턱걸이는 팔과 등 근육 중 잡아당기는 부위의 근육을 많이 쓰는 운동이다. 반면 태권도에는 잡거나 끌어당기는 동작이 없다. 이대훈이 작년까지 턱걸이를 하나도 하지 못했던 충분한 이유다. 그런 이대훈이 턱걸이 삼매경에 빠진 이유. 바로 힘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달라진 전자호구 때문이다.

달라진 전자호구, 힘을 키워라

전자호구의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양말에 내장된 7개의 센서가 호구를 타격할 때, 그 충격을 전자신호로 바꿔 수신기에 전달한다. 체급별로 그 감도가 다르다. 당연히 중량급일수록 감도의 크기는 더 높아진다. 그런데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사용할 전자호구가 4년 전 런던올림픽 때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타격해야 한다. 기존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점수를 뽑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감도 값이 따로 설정돼 있다. 특히 헤드기어가 많이 달라졌다. 헤드기어의 경우 몸통 공격의 25% 수준을 감지해야만 점수로 계산된다. 갖다 대는 동작만으로도 쉽게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4년 전 런던올림픽과는 확연한 차이다. 이대훈의 턱걸이 훈련은 이런 변화에 맞춘 준비였다. 턱걸이 훈련 등으로 구성된 ‘파워 트레이닝’ 결과 이대훈의 발차기 동작의 강도가 15%포인트 향상됐다.

이대훈은 고교생 신분이었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남자 63㎏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찌감치 한국 태권도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큰 뜻을 품고 도전한 2012년 런던올림픽.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나라별 4명으로 출전 선수의 수가 제한된 규정에 따라 63㎏급 선수였던 이대훈은 58㎏급으로 출전해야 했다. 대회 직전 체중 감량의 고통이 상당했다. 당시 63㎏급 세계선수권자였던 이대훈의 경기력은 압도적이지 못했다. 16강, 8강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는 접전을 벌이는 등 힘겹게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당시 58㎏급 세계 최강 스페인의 호엘 곤살레스 보니야였다. 상대는 아주 빠르고 강했다. 이대훈은 연거푸 얼굴 공격을 허용한 끝에 8-17로 패했다. 심지어 코피까지 흘렸다. 이대훈은 이후 4년 동안 절치부심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는 선수의 세계 랭킹 순위에 따라 출전권을 부여하는 랭킹제가 도입돼, 우리나라는 5명의 선수가 출전하게 됐다. 이대훈은 68㎏급. 힘이 좋은 상대를 자주 만나야 하지만 4년 전처럼 체중 감량의 고통에서는 어느 정도 해방됐다.

스페인 보니야가 최대 난적

런던올림픽 결승 상대 이대훈과 스페인 보니야는 올림픽 이후에도 인연이 계속 이어졌다. 서로 체급을 올려가며 자주 만났다. 먼저 2013년 세계선수권 63㎏급에서 만났다. 이때는 이대훈이 런던의 패배를 설욕했다. 그러나 2014년 그랑프리 파이널 68㎏급과 지난해 세계선수권 63㎏급에서는 이대훈이 연속으로 졌다. 하지만 이대훈은 지난해 그랑프리 시리즈 68㎏급에서 보니야를 두 번 상대해 모두 이겼다. 올림픽 이후 둘의 상대 전적은 이대훈이 3승2패로 근소하게 앞서 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두 선수 모두 68㎏급에 출전한다. 둘 모두 안면 공격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대훈은 유연성을 앞세운 돌려차기가 강력하고, 보니야는 몸통과 얼굴 공격 동작의 차이가 없어 위력적이다. 리우올림픽에서 이대훈과 보니야가 기복 없이 경기를 풀어간다면, 둘은 준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이대훈은 “이번 올림픽에서 준결승이 가장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다”며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4년 전 런던 은메달의 아쉬움을 리우에서 씻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훈이 만약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그랜드슬램’(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기록도 세울 수 있다. 이대훈은 이미 2010·2014 아시안게임 2연패, 2011·2013 세계선수권 2연패, 2012·2014 아시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태권도 종주국 대한민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금메달 10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거둬들인 태권도 강국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출전 선수 4명 전원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올림픽 효자 종목이 아닌 것 같다.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로 역대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 그만큼 세계 태권도가 평준화됐다. 한국 선수라고 해서 국제무대의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종목이다. 이번 리우올림픽 출전 자격이 나라별 4명에서 랭킹제로 바뀐 것도 이를 반영한다. 최근 미국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한국이 이번 리우올림픽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리우올림픽 68㎏급에 출전하는 이대훈에게는 스페인 보니야가 최대의 난적이지만, 이 체급에는 다른 강호들도 꽤 포진해 있다. 세르베트 타즈굴(터키), 알렉세이 데니센코(러시아), 사울 구티에레즈(멕시코), 자우드 아찹(벨기에)도 역시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미국 방송사 NBC는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지켜봐야할 주요 종목 중 하나로 태권도 남자 68㎏급을 선정했다. 그만큼 여러 명의 강호가 포진해 있는 흥미진진한 양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국 태권도는 변화의 기점에 서 있다. 예전 국제대회에서는 한번 리드를 잡으면 점수를 지키기에 급급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전자호구, 세계 태권도 전력의 평준화 등으로 이제 그런 전략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리우올림픽 태권도에서는 공격적인 경기 운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대훈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공격이다. 이번에 상대를 더 세게 공격하기 위해서 힘든 ‘파워 프로그램’도 소화했다. 한국 태권도가 이대훈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다. 강호가 즐비한 68㎏급에서 이대훈이 4년 전 아픈 기억을 딛고 일어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관 TV조선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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