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지젤 번천이 런웨이를 걷고 있는 가운데 젊은 시절의 조빙이 웃고 있다. 왼쪽에 조빙의 손자가 노래하는 모습이 보인다.
리우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지젤 번천이 런웨이를 걷고 있는 가운데 젊은 시절의 조빙이 웃고 있다. 왼쪽에 조빙의 손자가 노래하는 모습이 보인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지젤 번천(Gisele Bundchen)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 은빛 롱드레스 차림으로 훤칠한 수퍼모델 지젤의 워킹은 경쾌하고 세련되고 느긋했다. 그런데 꽤 긴 시간 런웨이를 활보하면서 어찌 저렇게 앞만 볼까. 2016 리우올림픽의 개막을 보기 위해 세계인들이 브라질 리우를 찾아 경기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들을, 지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워킹이 끝난 직후 워킹을 이끌던 노래가 페이드아웃될 즈음에야 “아~!” 했다. 지젤의 걸음과 똑같은 템포로 경쾌하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던 멜로디…. 그 위에 얹힌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의 가사는 새침했다.

늘씬하고 그을린, 젊고 사랑스러운/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걸어가네.// 그녀가 지나가면 모두들 아~!/ 걸을 때 그녀는 삼바 같아.// 쿨하고 부드럽게 하늘거리는/ 그녀가 지나가면 모두들 아~!// 하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그는 슬퍼…// 바닷가로 걸어가는 소녀는 언제나/ 앞만 볼 뿐, 그를 쳐다보지 않아.

지젤은 앞만 볼 뿐 그녀를 쳐다보는 수많은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야 했다. 그렇게 초연한 런웨이를 통해서만 지금까지의 여신 이미지를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의 이미지로 쇄신할 수 있었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녹음됐다는 전설적 노래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지젤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몇 분간의 워킹으로, 그렇게 오랫동안(정확히는 52년간이다!) 뭇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늘씬하고 그을린, 젊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실물이 됐다. 세계적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의 모델로 시절을 풍미했고, 할리우드 배우 리어날도 디캐프리오의 연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젤은 리우올림픽을 통해 뜻밖의 이미지를 하나 더 얻게 됐다. 바로 보사노바(Bossa Nova)의 아이콘.

그런데 리우올림픽 개막식을 술렁이게 만든 보사노바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어떤 음악 장르일까?

1964년 미국에서 ‘게츠/질베르토’라는 음반이 발매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음악을 좋아한 사람들에겐 꽤나 익숙한 음반이다. 색소폰과 기타와 피아노 연주에, 어리숙한 영어를 쓰는 신인 여성 보컬이 등장하는 재즈풍의 음반이었다. 감미롭고 경쾌하지만, 지적이며 세련된 음악과 노래들이 음반에 담겨 있었다.

언뜻 보기에 생소한 이 음반은 그해 빌보드 2위에 오르더니 이듬해(1965년)까지 미국에서만 50만장이 팔렸다. 같은 해 그래미상까지 거머쥐었다. ‘게츠/질베르토’의 성공을 두고 전 세계 사람들이 ‘보사노바의 승리’를 외쳤는데, 그 음반의 대표곡이 바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였다.

(왼쪽부터)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주앙 질베르토. / 스탠 게츠.
(왼쪽부터)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주앙 질베르토. / 스탠 게츠.

‘보사노바’는 사실 별다른 뜻을 담고 있지도 않다. ‘보사(Bossa)’는 ‘경향·트렌드’란 뜻이고, ‘노바(Nova)’는 ‘새롭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보사노바는 뉴웨이브, 뉴트렌드 정도가 된다. 그래서 보사노바에 대해 알려면 앨범의 이름에 등장하는 게츠와 질베르토에 대해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름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조빙이란 사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세 명에 대해서만 알면 끝이다. 게츠·질베르토·조빙이란 세 명의 사내에 대해 알면 보사노바의 전모가 드러난다.

먼저 주앙 질베르토(Joao Gilberto·85). 기타 연주자이면서 보컬인 질베르토는 아주 예민한 사내였다. 그는 희한하게도 며칠 동안을 욕실에 박혀 기타를 연주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벽면 타일의 울림을 느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다가 에어컨 소리가 거슬린다고 중단해버리기도 한다. 그런 예외적 민감함으로 그는 무언가 기존 음악과는 다른 리듬과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가 탈피하려던 ‘기존 음악’은 당시 브라질 대중음악의 주류였던 ‘삼바 캉성’이었다. ‘노래하는(cancao) 삼바(samba)’란 뜻이다. 브라질 음악의 대명사인 삼바는 카니발 축제 때 보면 알 수 있듯 빠르고 강하다. 기본적으로 흥이 많은 음악이다. 삼바의 템포를 잡고 우아한 선율의 멜로디를 끌어내면 그게 삼바 캉성이다. 그러나 삼바 캉성은 젊은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질베르토는 그러니까 욕실에서 처박혀 혼자 흥얼거리며 삼바 캉성의 리듬과 멜로디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그건 결과적으로 보면 재즈와 삼바의 결합이었다. 질베르토가 알고 있던 재즈는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해 브라질로 건너와 있던 쿨 재즈(cool jazz)였다. 그 결합은 세상에 없던, 지적이고 세련되면서도 느긋한 리듬을 만들어냈는데, 그게 바로 보사노바다. 그러나 한 고독한 천재에 의해 리듬이 창조됐을 뿐, 보사노바의 ‘작품’이 만들어지진 않았다. 이때가 1957년 즈음이다.

이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1927~1994)이 등장한다. 조빙은 질베르토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알아봤고, 민감한 그를 오랫동안 지원할 만큼 눅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리듬에 주목하고 그의 기타 연주에 기대 ‘셰가 지 사우다지’란 노래를 작곡한다. 삼바 캉성으로 이미 유명세를 떨치던 여가수가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가 보사노바 스타일의 첫 곡으로 기록된다. 1958년의 일이다.

모던재즈를 끌어들여 삼바(또는 삼바 캉성)를 넘어선 보사노바는, 그러니까 그 기원이 아주 뚜렷한 음악 장르다. 1958년 질베르토와 조빙이라는 두 천재가 합심해 만들어낸 브라질 태생의 대중음악인 것이다. ‘셰가…’를 포함한 조빙의 보사노바 곡들은 50여년 후 수퍼모델 지젤의 걸음에 어울릴 만큼 경쾌하고도 섬세했다. 그리고 미국의 재즈를 수용하며 탄생한 보사노바는 브라질 젊은이들의 열광을 기반으로 미국으로 역수출됐다.

스탠 게츠(Stan Getz·1927~1991)의 차례다. 주로 조빙의 노력으로 미국 음악계에도 보사노바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1962년엔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보사노바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그만 해도 작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보사노바의 세계화’는 색소폰 연주자 게츠의 동참으로 이뤄졌다. 게츠는 이미 1950년대 초반 이름을 날린 재즈색소폰 연주자였지만 1950년대 중반 이후엔 활동이 주춤했다.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1962년, 이미 미국에 상륙했던 보사노바를 접하고는 ‘재즈 삼바’란 이름의 앨범을 내며 활로를 찾는다. 그리고 내친김에 보사노바의 창시자들인 조빙·질베르토와 함께 합작 앨범을 낸다. 그게 바로 ‘게츠/질베르토’다. ‘게츠/질베르토’의 대성공으로 보사노바는 세계적 음악 장르가 된다.

이제 다시, 보사노바의 아이콘이자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된 지젤 번천의 리우올림픽 개막 무대로 돌아와 보자. 지젤이 런웨이에 나타나기 전 40대의 한 연주자가 중절모를 쓴 채 피아노를 치면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그야말로 보사노바풍으로 흥얼거리듯 불렀다.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하게 웃던 그는 다니엘 조빙(Daniel Jobim·43), 바로 보사노바의 선구 안토니우 조빙의 손자다. 안토니우의 애칭인 통(Tom)이 2016 리우 올림픽의 마스코트 이름인 것까지 확인하고 나면, 보사노바에 대한 브라질의 자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이지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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